[박수남의 폴리코노미] 4,700조 AI 반도체 잭팟, 정작 '전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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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남의 폴리코노미] 4,700조 AI 반도체 잭팟, 정작 '전기'가 없다?

폴리뉴스 2026-07-01 13:22:06 신고

이재명 대통령이 30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서남권 첨단산업 발전비전 국민보고회에서 관계자로부터 AI반도체 관련 전시물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30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서남권 첨단산업 발전비전 국민보고회에서 관계자로부터 AI반도체 관련 전시물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반도체 전쟁터에 폭풍이 몰아치고 있다. 챗GPT로 촉발된 인공지능(AI) 혁명은 글로벌 산업 지형을 뿌리째 뒤흔들며 각국의 명운을 건 산업전쟁이 가속화하고 있다. 기술 패권의 분수령에서 승패를 가를 핵심 무기는 단연 '전력'이다. 아무리 뛰어난 초미세 공정 기술을 갖추고 천문학적인 자본을 쏟아부어도, 공장을 돌릴 전기가 없다면 반도체 클러스터는 거대한 고철 덩어리에 불과하다. 지금 글로벌 패권 경쟁에서 전력망은 곧 국가 첨단 산업의 혈맥 그 자체다.

그러나 2026년 현재, 대한민국의 혈맥은 곳곳에서 막혀 괴사 직전에 놓여 있다. 그 기저에는 "송전탑은 표가 되지 않는다"는 얄팍한 정치적 셈법과 포퓰리즘이 만들어낸 나비효과가 도사리고 있다. 체감 물가 상승으로 인한 유권자의 불만과 표심 이탈을 두려워한 정치권이 주택용 전기요금을 수년째 억누르는 동안 국가 전력을 책임져야 할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는 천문학적인 적자의 늪에 빠졌다.

빚더미에 짓눌린 전력망, 한전발 동맥경화

한전의 재무 상태는 이미 정상적인 기업의 범주를 아득히 넘어섰다. 2024년 상반기 연결기준 한전의 부채는 202조 원을 돌파했으며, 2024년 말 기준 부채는 206조 원, 부채비율은 무려 457%에 달할 것으로 기획재정부는 전망했다. 더 나아가 2025년 말 기준 한전의 총부채가 200조 원을 상회하며 매일 114억 원에서 120억 원에 이르는 막대한 이자를 갚아야 하는 벼랑 끝에 서 있다. 매일 중견기업 하나를 세울 수 있는 자본이 허공의 이자로 증발하는 셈이다.

문제는 이 거대한 부채의 쓰나미가 단순히 한 공기업의 파산 위기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장기간 지속된 역마진 구조 즉 전기를 사오는 도매가보다 싸게 파는 소매가는 한전의 투자 여력을 완전히 앗아갔다. 가장 먼저 희생양으로 전락한 것은 '미래를 위한 인프라', 즉 전력망 확충 사업이었다.

한전이 송·배전망 구축에 당장 2028년까지 지출해야 할 투자비는 52조 6,000억 원(연평균 10조 5,000억 원)에 달한다. 나아가 제11차 장기 송·변전 설비 계획에 따르면 반도체 등 첨단산업의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2038년까지 무려 72조 8,000억 원의 투자가 필요하다. 이는 이전 10차 계획(56조 5,000억 원)보다 28.8%나 급증한 규모다. 하지만 현재의 재무 상태로는 이를 정상적으로 집행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한전이 적자를 이유로 송배전 투자를 연기하거나 축소하는 것은 곧 국가 전력 품질 저하와 인프라 붕괴라는 치명적인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한전의 재무 위기 못지않게 국가 전력망 확충을 가로막는 또 다른 거대한 장벽은 바로 극심한 사회적 갈등과 지역 이기주의(NIMBY)다. "내 앞마당에는 절대 송전탑을 세울 수 없다"는 지역 주민들의 격렬한 반발과, 이들의 표심을 의식해 인허가를 무기 삼는 지방자치단체의 비협조가 맞물려 대한민국 곳곳의 전력망 건설이 올스톱 상태에 빠졌다.

이 과정에서 정치권의 민낯도 여과 없이 드러난다. 지방선거 등 표심에 극도로 민감한 지역 정치인과 지자체장들은 국가적 대의보다는 당장의 악성 민원을 피하는 데 급급하다. 전북 지역의 경우 전국에서 송전선로 밀집도가 가장 높음에도 불구하고, 지역구를 둔 여야 국회의원들이 표심 이탈을 우려해 단 한 차례의 공식 입장도 내지 않으며 갈등을 방조한다는 시민사회의 거센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지역 발전과 첨단 산업 유치를 부르짖으면서도, 그 기초가 되는 송전 시설에 대해서는 철저히 눈을 감는 위선적 태도다.

국가 기간망인 전력 인프라가 선출직 지자체장의 인허가권과 표심을 좇는 지역 정치의 희생양이 되는 순간, 국가 에너지 정책의 예측 가능성은 철저히 붕괴된다. 22대 국회에서도 인허가 특례와 보상책 확대를 담은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안(전력망 특별법)'이 발의되어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하지만 여야의 끝없는 정쟁 속에 기약 없이 표류하며 법제화는 요원한 실정이다. 심지어 기획재정부조차 송전사업자(한전) 원인자 부담 원칙을 핑계로 전력기금 투입에 난색을 표하는 등, 부처 간 칸막이마저 국가 비상사태를 외면하고 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와 메가 프로젝트

송전망 부족이 낳은 비극의 절정은 현재 대한민국 국가 미래 전략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첨단 반도체 클러스터 거점들에서 현실화하고 있다. 정부와 대기업이 주도해 수천조 원의 천문학적 자본을 쏟아붓고 있지만, "이 거대한 공장을 돌릴 전기가 존재하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여전히 비관적이다.

현재 핵심 사업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성공적인 가동을 위해 필요한 전력 수요는 15GW에서 최대 16GW에 육박한다. 삼성전자의 남사 국가산단이 9GW, SK하이닉스의 원삼 일반산단이 6GW를 삼킬 예정이다. 이 15GW라는 숫자는 결코 단순한 수치가 아니다. 2024년 우리나라 전체 최대 전력 부하의 16.5%에 해당하며, 수도권 전체 전력 수요의 4분의 1을 단일 지역에서 빨아들이는 그야말로 '전력 블랙홀'이다. 대한민국에서 가동 중인 원전 26기의 전체 설비 용량이 26GW라는 점을 감안하면 용인 클러스터 하나를 위해 원전 15기 분량의 전기가 통째로 필요한 셈이다.

문제는 이 막대한 전력을 조달할 방법이 전무하다는 점이다. 현재 용인 클러스터 내 자체 발전(LNG 등)으로 충당 가능한 전력은 4.5GW에 불과하다. 나머지 10.5GW~11.5GW 이상의 대규모 전력을 외부에서 무조건 끌어와야 한다. 정부는 강원도 동해안의 발전소와 호남권의 재생에너지를 끌어오겠다는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하며 전력을 차질 없이 공급하겠다고 호언장담하고 있다. 그러나 강원, 충청, 호남에 집중된 발전원들을 수도권으로 연결할 송전망은 이미 꽉 막혀 포화 상태이거나 아예 건설 첫 삽조차 뜨지 못한 상태다.

화려한 4,700조 '메가 프로젝트'의 역설

이러한 전력망의 뼈아픈 부재는 최근 정부와 대기업이 야심 차게 발표한 초대형 투자 계획마저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2026년 6월 29일, 정부는 삼성전자, SK와 함께 반도체, 피지컬 AI, AI 데이터센터를 아우르는 '3대 메가 프로젝트'를 선포하며, 장기적으로 무려 4,700조 원대에 달하는 천문학적 투자 계획을 내놓았다. 정부는 신규 반도체 산단에 원전 6기 규모인 6.3GW의 전력을 우선 공급하겠다며 '전기국가'라는 새로운 전략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러나 화려한 청사진 이면을 들여다보면 아찔할 정도로 텅 비어 있다. 이 거대한 공장들을 돌리려면 2040년까지 국가 전체적으로 무려 27.7GW의 막대한 추가 전력이 필요하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동 중인 원전 26기의 전체 설비 용량(26GW)을 통째로 쏟아부어도 모자라는 그야말로 '전력 블랙홀'이다.

전문가들과 학계가 이를 '공염불'이라 일축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국회입법조사처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전력 공급 리스크 진단' 보고서는 이 메가 프로젝트의 물리적, 재무적 불가능성을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서울 및 남서울 변전소 피상전력(약 35GVA)의 60%에 달하는 21GVA의 막대한 전력을 서울 면적의 1.9%에 불과한 좁은 클러스터 지역에 쑤셔 넣어야 한다. 과연 이것이 물리적으로 가능한지 근본적인 타당성 검토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게다가 반도체 팹(Fab)은 극도로 민감한 설비로 단 1분의 정전만으로도 수십, 수천억 원의 손실이 발생한다. 이를 막기 위해 송전선이나 변전소 2개가 동시에 고장 나도 끄떡없는 'N-2' 수준의 극단적인 전력망 신뢰도 확보가 필수적이다.

정부는 이를 타개하고자 호남과 수도권을 잇는 2GW급 해저 초고압직류송전망(HVDC) 4개 루트를 2038년까지 깔겠다는 이른바 '서해안 백본' 구상을 내놓았다. 하지만 국회입법조사처는 동해와 호남에서 전력을 끌어올 핵심인 이 HVDC망이 고장 날 경우 복구 시간이 치명적으로 길다는 리스크를 안고 있어, 단일 공용망에 의존하는 방식은 반도체 공장의 생명줄로 삼기엔 매우 취약하다고 경고한다.

정부는 천문학적인 4,700조 원대 투자 유치를 자랑하며 "임기 내 완공", "완공 시점 앞당기기"라는 속도전만 부르짖을 뿐 그 거대한 공장을 돌릴 에너지 공급의 구체적 액션 플랜과 수십 조 원에 달하는 재원 조달에 대해서는 명확한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김성재 교수의 일침은 날카롭고 절망적이다. "반도체 팹과 데이터센터는 전력 사용이 막대하기 때문에 건설 계획이 나오기 10, 15년 전부터 전력 수급 계획을 세우고 그에 발맞춰 진행해야 하는데, 정부에선 공장 완공 시점만 앞당기는 속도전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지금이라도 국가 차원의 전력 수급 계획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가 필요하다."

국회미래연구원이 제안한 '전력감독원'과 같은 에너지판 금융통화위원회를 즉시 신설해야 한다. 국가 에너지 안보와 첨단 산업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서는 전력 요금 결정권을 선거에 목매는 선출직 권력의 손에서 완전히 떼어내 독립적인 전문가 기구에 맡겨야 한다. 한전의 소매 독점을 깨고 시장 기능에 의한 공정한 가격 신호가 작동하도록 구조 개혁을 단행하는 것만이 200조 원 부채의 늪에서 빠져나올 유일한 출구다.

또한 기약 없이 상임위 문턱을 맴돌고 있는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을 즉각 통과시켜야 한다. 국가의 명운이 걸린 전력망 구축을 더 이상 빚더미 공기업 한전과 지자체 그리고 지역 주민 간의 지루한 진흙탕 싸움으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범정부 차원의 강력한 권한을 가진 전담 조직(DSO)을 구성하고, 지자체의 몽니를 무력화할 인허가 패스트트랙과 기재부의 곳간을 여는 파격적인 보상책을 입법화하여 꽉 막힌 국가적 핏줄을 뚫어내는 데 초당적 국력을 집중해야 한다.

시간이 없다. 판은 이미 바뀌었다. AI 패권 경쟁이라는 전대미문의 전쟁터에서 영원한 승자란 존재하지 않으며, 단 한 번의 실기가 곧 국가의 몰락으로 이어진다. 전기 요금의 현실화, 무너진 한전의 재무 건전성 복구, 그리고 국가가 전적으로 책임지는 전력망 고속도로의 적기 건설이 시급하다.

[폴리뉴스 박수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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