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상완 기자] ‘운수 좋은 날’을 읽은 독자는 대개 비 오는 거리의 인력거꾼 김 첨지를 떠올린다. 아내가 기다리는 집, 설렁탕 냄새, 손에 잡힌 돈, 너무 늦게 찾아온 행운의 비극까지 기억한다. 하지만 현진건(玄鎭健·1900년 9월 2일~1943년 4월 25일)의 문학은 한 작품의 반전 안에 묶일 수 없다. 가난한 방 안의 부부, 술잔 앞에서 무너지는 지식인, 신문 지면에 비친 식민지 조선, 검열에 찢긴 역사소설까지 그의 펜은 시대가 감춘 상처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호는 빙허(憑虛). 허공에 기대 선다는 뜻의 이름은 한 청년 작가의 감상적 표식처럼 보인다. 하지만 작품을 따라가면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빈곤과 모멸, 식민 권력의 압박, 민족 감각의 훼손이 그의 문장 안에서 차갑게 살아난다. 현진건은 김동인, 염상섭과 더불어 한국 근대 단편의 형식을 세운 인물로 꼽힌다. 문학사 안의 평가보다 강한 힘은 독자가 이미 알고 있는 몇 줄의 기억에서 나온다. ‘운수 좋은 날’ 마지막 순간의 먹먹함, ‘빈처’ 속 가난한 남편의 부끄러움, ‘술 권하는 사회’의 술기운 어린 절망이 아직도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가난한 방에서 태어난 근대의 문장
1900년 대구에서 태어난 현진건은 개화기 관료 집안의 분위기 속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 한학을 배웠다. 일본과 중국 상하이를 오가며 근대 학문과 외국어를 접했다. 셋째 형 현정건은 독립운동에 몸담았다. 가족사의 비극과 식민지 청년의 불안은 훗날 작품 안에서 지식인의 부끄러움과 사회적 무력감으로 되살아났다. 문단 출발은 1920년 ‘개벽’에 발표한 ‘희생화’였다. 문학사적 평가는 냉혹했다. 진짜 출발점은 이듬해 나온 ‘빈처’에 가깝다. 가난한 작가와 아내가 살아가는 좁은 방은 거창한 사건 없이도 근대 조선의 균열을 보여준다. 부유한 처가와 궁핍한 신혼살림 사이에서 남편은 초라해진다. 아내는 원망을 삼킨다. 가족 내부의 침묵은 식민지 지식인의 처지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술 권하는 사회’도 비슷하다. 유학까지 다녀온 남편은 사회를 탓하며 술잔에 기댄다. 아내는 남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핵심은 술버릇보다 깊다. 배운 말은 많지만 현실을 움직일 힘은 없는 청년의 허약함이다. 작가는 인물에게 변명의 통로를 허락한 적이 없다. 아내의 답답함, 남편의 울분, 시대의 막막함을 좁은 집 안에 앉혀 놓는다. 생활의 사소한 마찰이 거대한 현실의 압력으로 커지는 방식이 현진건 초기 작품의 힘이다.
◇술과 비, 인력거가 남긴 시대의 얼굴
현진건의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한 작품은 1924년 발표한 ‘운수 좋은 날’이다. 인력거꾼 김 첨지는 비가 오는 날 뜻밖의 돈을 번다. 아픈 아내의 부탁을 외면한 채 거리로 나선 하루가 기묘하게 잘 풀린다. 행운은 갈수록 불길하다. 독자는 그의 손에 쥔 돈보다 집 안에서 기다리는 죽음의 기척을 크게 듣는다. 작품의 반전은 차가운 계산에 가깝다. 설렁탕 한 그릇은 사랑의 표시이자 늦어버린 속죄다. 돈을 벌수록 죄책감도 커진다. 제목의 ‘좋은 날’은 행복한 하루와 거리가 멀다. 비극을 더욱 잔혹하게 드러내는 아이러니의 껍질이다.
‘B사감과 러브레터’에서는 웃음이 칼처럼 쓰인다. 여학교 기숙사의 엄격한 사감은 학생들의 연애편지를 미워한다. 밤이 되면 혼자 연애편지를 읽으며 상상 속 사랑에 빠진다. 희극처럼 보이는 구조 안에 부족과 억압이 박혀 있다. 현진건은 인물 조롱보다 깊은 곳을 겨냥했다. 근대적 규율, 성적 욕망의 억제, 체면의 폭력까지 짧은 단편 안에 밀어 넣는다. 웃음 뒤끝이 서늘한 까닭이다.
◇신문 지면에 새긴 식민지의 균열
현진건은 작가이기 전에 오랜 시간 신문사에서 일한 언론인이었다. 조선일보를 거쳐 시대일보, 동아일보에서 활동했다. 사회부장까지 맡은 경력은 작품에도 깊은 흔적을 남겼다. 사건을 보는 눈, 인물의 말을 포착하는 감각, 현실의 모순을 한순간에 응집하는 능력은 신문 현장에서 단련됐다.
1926년 발표한 ‘고향’은 기자적 감각과 소설적 공감이 만난 작품이다. 짧은 분량 속에 한 사내의 떠돌이 삶이 담긴다. 고향을 잃고 만주와 일본을 떠돈 인물의 사연은 개인의 불운에 머물 수 없다. 식민지 경제 구조, 토지 상실, 유랑민의 비애가 한 사람의 말투 속에서 솟아난다. 서술자는 멀리서 관찰하다가 점차 흔들린다. 타인의 고통을 듣는 행위가 곧 조선의 얼굴을 마주하는 일이 된다. ‘신문지와 철창’도 언론인의 감각이 짙다. 제목부터 종이와 감옥을 나란히 세운다. 기록하려는 손과 막으려는 권력이 충돌한다. 신문은 세상을 알리는 매체였다. 하지만 식민 권력 아래 늘 검열의 칼날을 의식해야 했다. 현진건의 소설에는 그래서 문장 뒤의 침묵까지 들린다. 말할 수 없는 시대였기에 더 날카로운 우회가 필요했다.
◇일장기 지운 손… 침묵을 강요한 권력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손기정이 금메달을 땄다. 조선인 청년의 승리였지만, 유니폼 가슴에는 일본 국기가 붙어 있었다. 동아일보는 손기정 사진에서 일장기를 지운 채 신문에 실었다. 현진건은 당시 사회부장으로 재직 중이었다. 사건 뒤 연행과 구속, 고초가 따랐다. 신문은 무기 정간 처분을 받았다. 언론 참여 금지와 시말서 제출을 강요하는 서약도 뒤따랐다.
한 장의 사진에서 작은 깃발을 지운 일은 식민 권력에 대한 공개적 저항이었다. 총칼 대신 인쇄 지면 위에서 벌어진 싸움이었다. 현진건에게 언론은 밥벌이만 뜻하지 않았다. 조선어로 현실을 기록하는 노동이었다. 민족의 자존을 지키는 실천이었다. 감옥 이후 신문계 복귀는 막혔다. 생활은 어려워졌다. 양계와 미두에 손댄 말년은 순탄하지 못했다. 하지만 침묵을 강요받은 뒤에도 펜은 완전히 꺾일 수 없었다. 작가 현진건과 언론인 현진건은 따로 갈라 세울 수 없다. ‘운수 좋은 날’의 거리, ‘고향’의 유랑민, 일장기 말소 사건의 지면은 서로 다른 경로를 지난 듯 보인다. 조선인은 식민지에서 어떤 얼굴로 살아가야 하는가. 문학은 무엇을 기록해야 하는가. 언론은 어느 순간까지 저항할 수 있는가.
◇무영탑과 흑치상지… 역사로 향한 저항
말년의 현진건은 역사소설에 몰두했다. ‘무영탑’은 신라 석공 아사달과 아사녀, 주만의 비극을 다룬 장편이다. 사랑 이야기의 외피를 가졌다. 하지만 식민지 말기의 독자에게 고대의 예술과 민족적 기억을 환기한 작품이었다. 사라진 왕국과 탑, 남겨진 이름들은 현실 발언이 어려웠던 시대에 또 다른 언어가 됐다. ‘흑치상지’는 직접적인 선택이었다. 백제 멸망 뒤 부흥운동을 벌인 장수를 내세운 서사는 검열 권력의 압박을 피하기 어려웠다. 연재는 강제로 중단됐다. 역사 속 패배와 항거를 호출한 작품이 식민지 당국에 불편했기 때문이다. 현진건은 현재를 말할 수 없을 때 과거를 불러냈다. 오래전 전쟁과 망국의 서사 속에 당대 조선의 감정을 실었다.
1943년 현진건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 작품 ‘선화공주’도 미완으로 남았다. 생애는 길지 않았다. 남긴 작품 수도 방대하다고만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무게는 작지 않다. 짧은 단편 안에 식민지 조선의 냄새와 소리, 빈곤과 모욕, 지식인의 자책을 담았기 때문이다. 기자의 눈으로 현실을 보고, 소설가의 문장으로 상처를 새긴 인물이었다. 현진건을 다시 읽는 일은 교과서 속 사실주의 작가를 확인하는 절차와 거리가 멀다. 가난한 방에 앉은 부부, 비 오는 거리의 인력거꾼, 고향을 잃은 사내, 사진 속 일장기를 지운 신문인, 검열에 막힌 역사소설가를 차례로 만나는 시간이다. 빙허의 문장은 가장 아픈 현실을 오래 울리게 했다.
뉴스컬처 이상완 prizewan2@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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