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성향이 우세한 미국 연방대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국정 과제에 잇달아 제동을 걸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이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 보수 성향 대법관들까지 일부 반대 의견에 합류하면서, 보수 우위 대법원도 행정부의 권한 확대에는 분명한 한계를 제시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30일(현지시간) 부모의 신분과 관계없이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출생 시민권(Birthright Citizenship)’을 제한하려 한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존 로버츠 대법원장을 비롯해 진보 성향 대법관 3명과 보수 성향 대법관 3명이 다수 의견에 합류하면서 6대 3으로 내려졌다.
다수 의견은 미국 수정헌법 14조가 미국에서 태어난 거의 모든 사람에게 시민권을 보장하고 있으며,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은 이를 정면으로 위반한다고 판단했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판결문에서 “시민권은 우리 정치 공동체에 자유롭게 참여할 권리”라며 “수정헌법 제14조 제정자들은 이 땅에서 자유롭게 태어난 모든 사람에게 그 약속을 확대했고, 우리는 오늘날에도 그 약속을 지키고 있다”라고 밝혔다.
반면 클래런스 토머스, 새뮤얼 앨리토, 닐 고서치 대법관 등 보수 성향 3명은 반대 의견을 냈다. 앨리토 대법관은 “대법원이 심각한 실수를 저질렀다”며 “이번 해석은 출산 관광객의 자녀까지 시민권을 인정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비판했다.
대법원 판결로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 이민 정책은 상당한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출생 시민권 금지는 트럼프 행정부 이민 정책의 상징적인 조치였던 만큼 정치적 타격도 적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판결 직후 자신의 트루스소셜을 통해 “우리나라에 큰 불행”이라며 “의회는 출생 시민권을 끝내기 위한 작업을 오늘 시작해야 한다”고 반발했다. 그는 또 “시진핑 주석과 위대한 나라 중국이 출생 시민권 문제에서 거둔 엄청난 승리를 축하한다”며 대법원 판결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이번 판결은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정책이 대법원에서 잇달아 제동이 걸린 또 하나의 사례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 2월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부과한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 역시 대통령에게 관세 부과 권한이 명시돼 있지 않다며 위법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법 122조를 근거로 새로운 10% 글로벌 관세를 도입하며 대응에 나섰다.
이 밖에도 대법원은 선거일 이후 도착한 우편투표를 유효표로 인정하는 일부 주의 제도를 합법으로 판단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패소한 성추행 사건의 재심 요청도 기각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해임을 추진했던 리사 쿡 연방준비제도(Fed) 이사의 직무도 소송이 끝날 때까지 유지하도록 결정했다.
다만 대법원이 모든 사안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거리를 둔 것은 아니다. 최근 독립기관 소속 인사에 대한 대통령의 해임 권한을 폭넓게 인정했고, 트랜스젠더 학생의 여자 스포츠팀 참여를 제한한 일부 주 법률도 합헌으로 판단하는 등 보수 성향 판결도 이어졌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1기 재임 시절 직접 임명해 6대 3의 보수 우위를 만든 대법원이 출생 시민권과 상호관세 등 핵심 정책에서는 잇달아 제동을 걸었다는 점은 의미가 크다.
법조계에서는 대법원이 이념적 성향과 별개로 헌법과 법률의 한계를 넘어선 행정부 권한 확대에는 분명한 선을 긋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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