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한스경제 김창수 기자 | 국제유가가 중동발 공급 차질 우려 완화로 급락한 가운데 하반기 국내 정유화학업계 표정이 엇갈리고 있다. 정유업계는 저렴해진 원유와 높은 정제마진, 윤활기유 수급난이 맞물리며 실적 방어 기대가 커진 반면 석유화학업계는 원료인 납사 가격 하락에도 주요 제품 가격이 더 밀리며 회복세가 제한되는 분위기다. 같은 유가 하락 국면에서도 정유는 마진 지속성이, 석화는 구조조정 실행력이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는 분석이 나온다.
▲ 중동 긴장 완화에 원유가 지속 하락…정유-석화업계 영향은
최근 업계와 증권가 분석에 따르면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69.23달러로 전주보다 9.6% 하락했다. 두바이유는 64.69달러로 12.1% 떨어졌다. 호르무즈 해협 통항 증가로 공급 차질 우려가 완화된 영향이다. 특히 두바이유가 WTI보다 4.5달러 낮아지며 중동산 원유 가격 상대적 약세가 두드러졌다.
국내 정유사들은 중동산 원유 도입 비중이 높은 만큼 두바이유 약세가 원가 측면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평가다. 사우디아라비아 7월 원유 공식판매가격(OSP)도 배럴당 9.5달러로 전월보다 6달러 낮아졌다. 원유 조달 부담 완화 방향으로 시장이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유가 하락이 정유업황에 미치는 영향은 복합적 양상을 보인다. 최근 평균 복합정제마진은 배럴당 28.8달러로 소폭 올랐다. 원유가는 내려갔지만 휘발유·경유 등 석유제품 수급은 여전히 빠듯하다는 의미다. 미국 정제설비 가동률도 97%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파악된다.
원료 가격이 내려가는 가운데 제품 마진이 유지되면 정유사 입장에서는 수익성 방어 여지가 커진다. SK이노베이션은 1분기 매출 24조2121억원, 영업이익 2조1622억원을 기록하며 흑자전환했다. 에쓰오일이 1분기 영업이익 1조2311억원으로 전년 적자에서 벗어난 배경에도 정제마진과 재고효과가 있다.
하반기 정유업계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윤활기유다. 윤활기유는 자동차·산업용 윤활유 원료로 고급 제품인 ‘그룹 3’ 수급이 중동 설비 차질로 빠듯해지고 있다. 카타르 펄 GTL(가스 연료시설) 설비 복구에 상당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며 글로벌 그룹 3 생산량 감소 우려가 커졌다.
국내 업체들은 글로벌 그룹 3 윤활기유 시장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반사수혜 가능성이 거론된다. 특히 에쓰오일은 국내에서 그룹 1·2·3 윤활기유 제품군을 모두 갖춘 사업자로 정유 본업 외 수익에 대한 기대가 나온다. 유가 급락에 따른 재고평가손실 가능성은 부담이나 정제제품과 윤활기유 마진이 버텨준다면 하반기 실적 하방을 일부 막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석화업계는 원가 하락에도 웃기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 납사 가격은 톤당 644달러로 전주보다 4.8% 하락하며 6주째 내렸다. 통상 납사 가격 하락은 NCC 업체 원가 부담 완화 요인이나 이번에는 제품 가격 하락폭이 더 가파르다. 폴리프로필렌(PP)은 11.1%, 고밀도 폴리에틸렌(HDPE)은 9.9% 떨어졌고 프로필렌과 벤젠도 각각 9.6%, 10.1% 하락했다. 에틸렌과 SM, 부타디엔, PX 등 주요 제품도 8% 안팎 내려갔다.
원료 가격이 내려도 제품 수요가 받쳐주지 못하면 스프레드 개선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이로써 중국발 공급과잉과 글로벌 수요 둔화가 여전히 업황을 좌우하는 형국이 이어지고 있다.
▲ 석화업계 구조조정 ‘촉각’…정유는 마진 방어 기회 활용 여부 변수
국내 주요 석화사들 1분기 실적은 일시적 회복을 보였지만 이를 반등으로 단정하기는 이르다. 롯데케미칼은 1분기 연결 기준 매출 4조9905억원, 영업이익 735억원을 기록하며 흑자전환했다. 원재료 래깅 효과와 생산운영 최적화가 수익성 개선에 기여했다. LG화학도 석유화학 부문에서 매출 4조4723억원, 영업이익 1648억원을 냈다.
다만 두 회사 모두 범용 석화 제품 구조적 공급 과잉 면에서 자유롭지 않다. LG화학은 연결 기준 497억원 영업손실을 냈다. 롯데케미칼 역시 대산·여수 사업재편과 고부가 스페셜티 확대란 과제를 안고 있다.
업계 시선은 결국 구조조정으로 향하고 있다. 정부는 공급과잉 해소를 위해 대산 석유화학단지 사업재편을 승인했다. 롯데케미칼 대산 사업부와 HD현대케미칼 통합, 대산 NCC 3년 가동중단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이는 국내 석화업계가 더 이상 경기 반등만 기다리기 어렵게 됐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여수 등 타 석화단지에서도 가동률 조정, 설비 효율화 논의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범용 제품 의존도가 높은 업체일수록 감산, 통합, 고부가 제품 전환 속도가 하반기 실적 체력을 가를 전망이다.
정유, 석화 부문 모두 유가 하락 환경을 마주했지만 해법은 다소 다르다는 평가다. 정유사는 두바이유 약세와 타이트한 제품 수급을 활용, 마진을 방어할 기회를 얻었다. 여기에 윤활기유 물량 부족이 겹친 것도 일부 업체에 추가 수익원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석화사는 납사 하락에도 제품 가격이 동반 약세를 보이며 원가 개선 효과가 희석되는 양상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유는 현재의 높은 정제마진이 얼마나 지속될지, 석화는 공급과잉 축소 구조조정이 얼마나 빠르게 실행될지가 하반기 업계 실적 방향을 가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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