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 처분이 법원에서 잇따라 뒤집히면서 기업들이 수년간 행정·형사 리스크를 떠안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의 '무죄평정'처럼 처분의 적정성을 사후 점검하는 내부 장치는 사실상 없어 공정위의 권한에 걸맞은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과징금 환급 반복…고발 뒤 형사 리스크도 장기화
30일 관계 부처 등에 따르면 공정위가 2017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기업에 환급한 과징금은 6247억원에 달한다. 같은 기간 환급가산금도 474억원 지급됐다.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 처분이 이후 법원에서 취소되거나 직권취소되는 경우 기업은 이미 납부한 과징금과 함께 이자 성격의 환급가산금을 돌려받게 된다.
환급 대부분은 공정위가 행정소송에서 패소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기업들이 최종적으로 과징금을 돌려받더라도 그 과정에서 발생한 부담은 회복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수년간 이어지는 행정소송 비용은 물론 거래처와 투자자 신뢰 저하, 기업 이미지 훼손 등은 금전적 보상만으로 복구하기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지적이다. 환급가산금 역시 국고에서 지급되는 만큼 공정위의 무리한 처분에 따른 사회적 비용은 결국 국민 부담으로 이어진다는 비판도 나온다.
공정위 판단이 법원에서 뒤집힌 사례가 적지 않은 만큼 제재 이후 처분이 취소되거나 과징금이 환급되는 사례도 반복되고 있다. 이에 처분의 정밀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공정위가 강한 조사권과 제재권을 행사하는 만큼 처분이 법원에서 뒤집혔을 때 그 원인을 분석하고 제도 개선으로 연결하는 절차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의 형사 리스크도 장기화하는 모습이다. 공정위는 심의를 거쳐 과징금 등 행정 제재를 부과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형사처벌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사건을 검찰에 고발한다. 기업들은 행정소송과 형사절차를 동시에 대응해야 하는 만큼 부담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공정위가 검찰에 고발한 사건은 45건으로 2019년(82건) 이후 6년 만에 가장 많은 수준이다. 하지만 이 가운데 검찰이 기소한 사건은 17건에 그쳤고, 26건은 아직 수사 단계에 머물러 있다. 고발 사건의 절반 이상이 기소 여부조차 결정되지 않은 채 장기간 수사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수사 장기화도 뚜렷하다. 지난해 말 기준 최근 3년간 수사 중인 공정위 고발 사건은 40건에 달한다. 지난해 고발된 사건을 제외하더라도 14건은 수년째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공정위 고발 이후에도 형사절차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기업들은 행정처분과 별개로 지속적인 형사 리스크를 부담하고 있다.
◆ 검찰은 '무죄평정'…공정위는 사후 검증 사실상 부재
공정위의 사후 검증 체계는 검찰과 비교해도 미흡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검찰은 기소 사건에서 무죄가 확정되면 '무죄평정'을 통해 수사와 공소 유지 과정이 적정했는지를 내부적으로 검토한다. 무죄 판결이 곧바로 해당 검사의 책임이나 인사상 불이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반복되는 무죄 사건은 사건 처리의 적정성을 점검하고 향후 수사 품질을 높이기 위한 내부 통제 장치로 활용된다.
반면 공정위는 사실상 경쟁법 분야에서 1심에 가까운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법원에서 처분이 취소되거나 대규모 과징금 환급으로 이어졌을 때 이를 체계적으로 평가하거나 공개적으로 검증하는 절차는 사실상 찾아보기 어렵다. 기업 입장에서는 공정위 심의 결과가 시장에서 사실상의 유죄 판단처럼 받아들여지는 만큼, 처분이 뒤집힌 경우에도 그 원인과 개선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무혐의 결정이나 법원 판결 이후 후속 결과가 충분히 공개되지 않는 점도 개선 과제로 꼽힌다. 공정위는 주요 제재 사건이나 심사보고서 송부 사실은 보도자료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반면 법원에서 처분이 취소되거나 무혐의가 확정된 사례는 상대적으로 시장에 잘 알려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법조계에서는 이러한 정보 공개 역시 공정한 법 집행의 일부라고 보고 있다. 특히 최근 공정위가 심사보고서 송부 사실을 대외적으로 공개하면서 시장에서는 이를 사실상의 '유죄 신호'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적지 않은 만큼, 최종적으로 처분이 취소되거나 무혐의로 결론 난 사례도 균형 있게 공개해야 기업들의 예측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백광현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공정위 홈페이지에 일부 자료가 공개되기는 하지만 모든 무혐의 사례나 법원에서 처분이 취소된 사례가 체계적으로 공개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사업자 입장에서는 제재 사례뿐 아니라 무혐의나 법원 취소 사례 역시 중요한 준법 경영의 기준이 되는 선례"라고 말했다.
이어 "왜 무혐의가 나왔고, 법원이 어떤 이유로 공정위 처분을 취소했는지를 알아야 향후 기업 활동과 컴플라이언스에도 도움이 된다"며 "수년 뒤 법원에서 처분이 뒤집혀도 기업이 이를 적극적으로 알리기는 쉽지 않은 만큼 공정위가 제재 사례뿐 아니라 처분 취소와 무혐의 사례도 균형 있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전문가들은 공정위의 강한 조사권과 제재권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그에 걸맞은 책임성과 절차적 통제 역시 함께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조사와 제재를 강화하는 것만큼 법원에서 처분이 뒤집힌 사례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제도 개선으로 연결하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기업의 예측 가능성과 시장의 신뢰도 함께 높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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