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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매거진 2026-06-30 17:10:1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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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집은 매실청을 2-3년에 한 번씩 만든다. 이전에 있던 매실청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하여 올해는 매실청을 만들었다. 매실 꼭지 따기 작업 전의 이미지 / 사진: 구씨 제공
▲ 우리집은 매실청을 2-3년에 한 번씩 만든다. 이전에 있던 매실청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하여 올해는 매실청을 만들었다. 매실 꼭지 따기 작업 전의 이미지 / 사진: 구씨 제공


[문화매거진=구씨 작가] 작년과 사뭇 다른 작업실의 여름이 지나간다. 작년에는 매일 같이 집, 작업실, 레지던시 사이를 오가며 하루에 서너 시간을 이동하는 데 썼다. 사람에게 집이 하나인 이유를 온몸으로 이해한 한 해였다. 마음 붙일 곳 없이 강의실을 떠도는 학생처럼, 나는 늘 어딘가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책상만 있으면 어디서든 작업할 수 있는 유목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결국 깨달은 것은 물리적인 고정점의 중요성이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에게 창작을 위해 필요한 것으로 ‘연간 500파운드의 돈’과 ‘자물쇠를 채울 수 있는 자기만의 방’을 말했다. 나는 그동안 그 방이 꼭 단 하나일 필요는 없다고, 어디든 내가 앉는 곳이 방이 될 수 있다고 자만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간이 여러 개로 파편화될 때 사라지는 안정감을 뼈저리게 느꼈다. 온전히 몰입하고, 언제든 나만의 규칙을 적용할 수 있는 ‘자기만의 방’. 그리고 그 방은 여러 개로 흩어지기보다 온전한 하나이면 좋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올해는 집과 작업실만을 오가며 그 사이의 이동 시간이 많이 줄였다. 그리고 작업실에서 보내는 시간 자체도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물리적 공간이 단순해지면서 마음의 공간도 단순해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해야 하는 것들에서 많이 벗어났기 때문일까. 작년보다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상반기를 흘려보낸다. 작년의 나는 해가 떠 있을 때 작업실을 나서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일탈을 느꼈다. ‘달이 아닌 해를 보다니!’ ‘거리가 이렇게나 밝다니!’ 어두컴컴한 퇴근길이 환하다는 사실에 새삼 신기해하며 걸었다. 요즘은 해가 중천인 시간에 작업실을 나와 긴 산책을 하고, 정각이 되어서야 집에 닿는다.

조금 늦은 출근과 이른 퇴근을 반복하며 가끔은 아무 벤치에나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기도 한다. 길거리에 놓인 낡은 의자들 그리고 그곳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을 가만히 바라보던 이들에게 공감하는 시간을 갖는다. 늘 걷던 산책길 대신 버스를 타고 조금 더 떨어진 곳으로 가 새로운 낯선 길을 산책하고 돌아오기도 한다. 작업실로 출근하여 하루 종일 청소만 하고 집에 돌아오는 날도 있다. 중요한 건 그런 하루를 보내고도 마음이 개운하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대단하게 성취해서가 아니라 그냥 기분이 나쁘지 않은 것, 어떤 하루든 그 자체로 인정하는 것.

울프가 말한 ‘자기만의 방’은 단순히 사방이 벽으로 막힌 방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외부의 시선이나 사회적 요구로부터 독립되어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정신적 자유’를 뜻한다. 무언가를 대단하게 생산해 내지 않아도 내 존재 자체로 기분이 나쁘지 않은 상태, 어떤 하루든 그 자체로 인정하는 유연함. 그것이야말로 내 내면에 단단한 방 한 칸을 들여놓았기에 가능한 여유였다.

작업실로 나서는 건 보통 열두 시가 넘어서다. 그전까지 집에서 자잘한 일정들을 정리하고 도시락을 싼다. 샤워를 마치고 나면 열두 시도 빠듯하다. 작업실에 도착하면 곧바로 일을 시작하는 대신, 짐을 풀고 공간을 천천히 살핀다. 향을 피우거나 바닥을 쓸거나 화분에 물을 준다. 곳곳의 불을 켜고 어제 먹은 음료를 치우기도 한다. 컴퓨터를 켜면 금세 뭔가 시작할 수 있지만, 조금 뜸을 들이는 버릇을 들이고 싶어 서두르지 않는다. 공간을 정돈하는 이 사소한 의식들은, 내가 이 방의 온전한 주인임을 선언하는 나만의 ‘자물쇠를 채우는 행위’다.

그리고 오늘의 할 일 목록을 펼쳐보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정도의 두세 개의 할 일 적혀있는 그 한 장의 아날로그 메모가 하루를 조금 더 내 것으로 만들어 준다. 모니터 뒤의 전원 버튼을 눌러 컴퓨터가 켜지면 자연스럽게 작업이 이어진다. 중간에 간식을 먹고 바로 양치를 한다. 잠시 작업실 문 앞에 서서 바깥을 내다본다. 풀과 개미를 구경하고,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작업실 앞 풍경을 하나씩 살핀다. 오늘은 문 앞의 잡초들이 말끔히 정리되어 있었다. 여름에 머리를 자른 사람처럼, 작업실 앞이 유난히 시원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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