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2027년 적용 최저임금 심의가 올해도 법정시한인 이달 29일을 넘기면서 해마다 반복되는 최저임금 결정 구조의 한계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1988년 최저임금 제도 시행 이후 법정 심의기한을 준수한 사례는 38년간 9차례에 그치면서 노사 대립을 반복하는 현행 결정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30일 최저임금위원회(이하 최임위)에 따르면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제10차 전원회의를 열고 노사 양측의 1차 수정안을 바탕으로 2027년도 적용 최저임금 수준을 논의한다.
앞서 노동계와 1만320원보다 16.3% 오른 1만2000원을, 경영계는 동결을 최초 요구안으로 제시한 바 있다. 양측은 최초 요구안부터 1680원의 격차를 보이며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상태다.
현행법상 최임위는 고용노동부 장관의 심의 요청을 받은 날부터 90일 이내에 최저임금안을 의결해 제출해야 한다. 올해 법정 심의기한은 지난 29일까지였지만 노사 간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면서 결국 시한을 넘기게 됐다.
올해는 배달 라이더와 택배기사 등 도급제 종사자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 여부와 업종별 차등 적용 문제가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관련 표결이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내년도 최저임금 수준을 둘러싼 본격적인 협상은 법정 시한을 임박하고 나서야 시작됐다.
노동계 안팎에서는 법정 기한을 넘겨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일이 사실상 ‘관행’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1988년 제도 시행 이후 최저임금위원회가 법정 기한을 지킨 사례는 모두 9차례에 불과하다.
이 같은 현상은 현행 제도의 구조적 한계와도 무관하지 않다. 최임위가 법정 기한을 넘기더라도 고용노동부 장관이 매년 8월 5일까지 최저임금을 결정·고시하면 다음 연도 시행에는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상당수 심의는 노사 간 팽팽한 줄다리기 끝에 7월 중순께 합의가 이뤄지고 8월 초 최종 고시되는 일정이 반복돼 왔다. 올해 역시 이날 노사 양측이 1차 수정안을 제출하더라도 인상 폭 격차가 커 이르면 7월 중순에야 합의가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에 최저임금 결정 구조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현재 최임위는 근로자위원·사용자위원·공익위원 각 9명씩 총 27명으로 구성돼 있다. 논의 과정에서 노사가 각각 제시한 인상안을 놓고 합의에 이르지 못할 시 공익위원이 제시한 중재안을 표결에 부치는 방식이 매년 반복되고 있다. 노사 간 충분한 협의를 통해 접점을 찾기보다 정부가 임명하는 공익위원이 사실상 캐스팅보트를 행사하는 구조가 고착화된 셈이다.
최저임금 산정 기준이 객관적이고 예측 가능하지 않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최저임금 결정 기준은 법에 명시돼 있지만 구체적인 산정 공식이나 지표가 없어 협상 과정에서 노사 간 힘겨루기만 반복된다는 지적이다.
반면 주요 선진국들은 노사 간 협상에만 의존하기보다 물가상승률이나 임금상승률, 생산성 등 객관적 지표를 반영한 산정 기준을 마련하고 전문가 검토를 통해 갈등을 최소화하고 있다.
최임위가 지난해 발간한 ‘주요 국가의 최저임금제도’ 자료를 보면 독일은 노사위원회가 단체협약 임금 지표를 중심으로 경제·고용지표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2년마다 최저임금안을 의결하면 정부가 이를 승인하는 방식으로 최저임금을 결정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전문가와 노사정위원회 의견을 청취한 뒤 소비자물가지수와 근로자 구매력 상승률 등을 반영해 정부가 최저임금을 정하고 있다.
네덜란드는 단체협약 평균임금에 연동하되 거시경제 지표를 함께 반영해 정부가 최저임금을 결정하며 상반기와 하반기 연 2차례 조정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일본은 중앙노사공익위원회가 지역별 목표 수준을 제시하면 지역 노사공익위원회가 근로자 생계비, 유사 근로자의 임금 수준, 사업주의 지급 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심의한 뒤 지방정부가 최종 승인한다. 지역별 최저임금을 별도로 운영하는 것도 특징이다.
앞서 정부는 최저임금 결정 과정을 개편하기 위해 2024년 ‘최저임금 제도개선 연구회’를 발족한 데 이어 이듬해 최저임금위원회 규모를 조정하고 전문위원회의 기능과 역할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제도 개편안을 마련한 바 있다. 그러나 노동계가 “노동계를 배제한 일방적인 개편”이라고 강하게 반발하면서 사회적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제도를 정비해야 할 필요성은 있지만 전면 개편보다 합리적인 심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운영 방식을 개선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김성희 산업노동정책연구소장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현행 제도상 최종 고시까지는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는 만큼 시한 준수보다 노사와 공익위원이 충분한 논의를 거쳐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제도의 근본 틀을 크게 바꾸기보다는 현재 결정 과정의 메커니즘을 개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진단했다.
이어 “노사와 공익위원이 충분히 숙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과도한 대립 구도보다는 사회적 학습과 합의를 축적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최저임금은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 등 객관적인 경제지표가 충실히 반영되는 방향으로 결정돼야 하기 때문에 이해당사자의 참여를 보장하면서도 이 같은 기본 원칙이 훼손되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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