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모 건보 급여화 역풍···중증환자 반발에 복지부 ‘후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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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모 건보 급여화 역풍···중증환자 반발에 복지부 ‘후퇴’

이뉴스투데이 2026-06-30 15:0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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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정부가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적용 논의를 위해 추진하던 대국민 토론회를 중단하면서 정책 추진 속도 조절이 불가피해졌다. 중증·희귀질환 환자단체와 의료계가 건강보험 재정의 우선순위 문제를 제기한 가운데, 탈모 치료 지원을 건보로 풀어야 하는지를 둘러싼 논란은 더 커지는 모습이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29일 탈모 급여 확대를 주제로 한 토론회 추진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토론회를 앞두고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고, 관련 입장이 충분히 제기된 만큼 시간을 두고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청년을 비롯한 국민 건강 문제 해결과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한 정책 발굴은 이어가겠다고 덧붙였다.

앞서 정부는 다음 달 4일 서울에서 ‘탈모치료제의 건강보험 급여 적용’을 주제로 국민참여형 토론회를 열 예정이었다. 전문가 발제를 듣고 국민이 숙의하는 오프라인 토론회와 국민참여 플랫폼 ‘소통24’를 통한 온라인 의견 수렴도 함께 추진됐다. 그러나 환자단체와 의료계 반발이 거세지면서 첫 토론회부터 취소됐다.

탈모 치료제 건보 적용은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말 복지부 업무보고에서 검토를 주문한 사안이다. 정은경 복지부 장관도 이달 11일 현 정부 출범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하반기 중점 추진 과제로 탈모 치료 건강보험 적용 확대를 언급했다. 정부는 탈모가 단순 미용 문제가 아니라 정신건강과 삶의 질에 영향을 주는 질환인 만큼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봤다.

탈모 급여화 논의는 곧바로 건강보험 재정의 우선순위 논쟁으로 번졌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이날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탈모 환자의 고통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정된 건보 재정은 생명과 직결된 질환 치료에 먼저 투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건강보험 급여 확대는 국민적 관심이나 정치적 요구가 아니라 의학적 필요성, 비용효과성, 재정 영향, 미충족 의료수요를 종합해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증질환 보장률이 낮아지고 있다는 점도 논란을 키웠다. 환자단체에 따르면 4대 중증질환 건강보험 보장률은 2021년 84.0%에서 2024년 81.0%로 하락했다. 같은 기간 암질환 보장률도 80.2%에서 75.0%로 낮아졌다. 고가 항암제와 희귀질환 치료제 급여가 늦어지는 상황에서 탈모 치료제를 먼저 논의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의료계도 신중론에 힘을 보탰다. 대한의사협회는 필수의료 현장에서 의료진 부족과 경영 악화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충분한 우선순위 검토와 재정 영향 평가 없이 탈모 치료제 급여화를 논의하는 것은 건강보험 재정 운용 방향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건보 재정은 중증환자 부담 완화와 필수의료 유지에 집중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논쟁의 핵심은 이미 일부 질환성 탈모에 건강보험이 적용되고 있다는 점이 아니라, 환자 규모가 큰 남성형 탈모까지 급여 대상을 넓힐지 여부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DUR 자료에 따르면 피나스테리드·두타스테리드 계열 탈모 치료제 처방 환자는 2021년 80만7018명에서 2025년 131만7150명으로 늘었다. 급여 대상과 본인부담률에 따라 건보 재정 부담이 크게 달라질 수 있는 구조다.

환자단체는 청년층 탈모 치료비 부담을 낮출 필요가 있다면 건강보험이 아니라 별도 국고 사업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건강보험은 보험료를 낸 사람에게 똑같이 돌려주는 환급제도가 아닌, 질병과 의료비 부담이 큰 사람에게 필요한 치료를 먼저 보장하는 사회보험이라는 설명이다.

희소질환 환자들의 급여 사각지대도 쟁점으로 떠올랐다. 선천성 희소복합혈관이형성 질환인 KT증후군 환자는 국내 500명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 전신의 화염상 모반, 정맥류, 보행 장애, 림프액 출혈 등으로 장기 치료가 필요하지만, 모반 레이저 시술은 평생 6회까지만 급여가 적용된다. 하지정맥류 시술도 대부분 비급여로 분류돼 산정특례가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PROS환자단체가 회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서도 응답자의 86.8%가 건강보험 적용 한계로 경제적 부담을 느낀다고 답했다. 누적 본인부담금이 1000만원을 넘는다는 응답은 40.8%, 3000만원을 넘는다는 응답은 19.7%였다. 3명 중 1명은 비용 때문에 필요한 치료를 포기하거나 미룬 경험이 있다고 했다.

중증 암 환자 가족들은 고가 신약 급여 지연 문제를 제기했다. 소세포폐암 치료제 임델트라는 국내에서 비급여 상태라 한 달 치료비가 약 5000만원, 연간 5억원 이상 드는 것으로 전해졌다. 급여 적용을 요구하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은 5만명 이상 동의를 얻어 보건복지위원회에 회부됐지만, 실제 급여화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탈모가 질환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문제를 넘어 건강보험이 어디에 먼저 쓰여야 하는지를 묻는 논쟁으로 번지고 있는 상황이다. 삶의 질을 보장성 확대의 기준으로 삼겠다면, 이미 건강보험 제도 안에 있으면서도 치료비와 비급여 부담으로 삶이 흔들리는 희소·중증질환자의 공백부터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건보 재정은 한정돼 있는 만큼 정부가 급여 대상, 재정 소요, 우선순위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사회적 합의를 다시 쌓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보건의료계 한 관계자는 “탈모로 인한 고통과 치료비 부담을 가볍게 볼 수는 없지만, 건강보험은 한정된 재정을 의학적 필요성과 위급성이 큰 영역에 우선 배분하는 제도”라며 “청년층 지원 필요성이 있다면 건보 급여화와 별도 국고 지원을 구분해 검토하고, 중증·희귀질환 보장 공백과 함께 우선순위를 다시 따져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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