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백연식 기자] 지역 시청자들이 케이블TV SO(종합유선방송사업자)를 ‘지역 발전을 위해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매체’로 꼽았다. 지역신문과 지역 지상파의 경영위기로 기초생활권 정보 공백이 커지는 가운데, 지역민들이 그 공백을 메우는 매체로 지역채널을 주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연식 경북대학교 교수와 황경호 경남대학교 교수는 30일 국회의원회관 제2간담회실에서 김현 의원실 주최로 열린 ‘5극 3특 시대, 지역채널의 역할과 케이블TV의 미래’ 세미나에서 ‘SO 지역채널의 지역성 구현 양상과 과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연구는 경남·울산권의 대표 SO인 서경방송과 JCN울산중앙방송을 사례로, 두 지역채널의 지역성 구현 양상을 프로그램·뉴스·시청자 인식 등 여러 측면에서 종합 분석했다.
연구진은 방송콘텐츠의 지역성을 지역사회에 대한 실질적 기여를 기준으로 재정의하고, 이를 측정 가능한 분석틀로 구체화했다. 방송이 ‘지역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지역성을 인정받던 관행에서 벗어나, 지역사회에 구체적으로 어떤 기여를 하는지를 평가하기 위해 지역성을 생활밀착성, 자치공론성, 문화생동성, 주민참여성, 경제촉진성 등 다섯 가지 하위개념으로 재구성했다.
이 틀로 두 권역에서 케이블TV 시청 경험이 있는 주민 305명(경남 118명·울산 187명)을 조사한 결과, 두 SO 모두 5개 지역성 항목에서 5점 만점 기준 3점대 중반 안팎의 평가를 받았다. 서경방송은 생활밀착성(3.680점), JCN울산중앙방송은 문화생동성(3.436점)이 가장 높아, 지역민들이 지역채널을 ‘내 생활과 가까운 정보’이자 ‘우리 지역 문화를 담는 매체’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존재 가치에 대한 공감대는 만족도 조사에서 더 뚜렷했다. 서경방송은 ‘지역 발전을 위해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3.619점)가 가장 높았고 ‘지역사회 발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3.542점)가 뒤를 이었다. JCN울산중앙방송도 ‘지역사회 발전에 긍정적 영향’(3.412점)과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3.380점)가 상위에 올랐다. 다만 ‘차별화된 지역만의 독자적 콘텐츠가 많다’는 항목은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돼, 지역채널의 콘텐츠 차별화와 창의성 강화는 향후 과제로 제시됐다.
시청자 평가는 뉴스 프로그램 내용분석에서도 확인됐다. 연구진이 경남·울산 8개 방송사의 프라임타임 뉴스를 2주간 분석한 결과, 케이블 SO 지역채널은 같은 권역 지상파·지역민방보다 시·군·구 단위 기초지역 보도에서 강점을 보였다.
경남에서는 지역 단위로 분류한 보도 584건 중 기초권 보도가 322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 가운데 서경방송은 128건(39.8%)을 차지해 같은 권역 지역방송 A·B·C(각 17.1%·23.0%·20.2%)보다 높은 비중을 보였다. 울산권에서도 기초권 보도 124건 중 JCN울산중앙방송이 48건(38.7%)으로, 같은 권역 지역방송 A·B·C(각 25.8%·19.4%·16.1%)를 앞섰다.
이는 케이블 SO 지역채널이 광역 중심 방송사가 포착하기 어려운 하이퍼로컬 정보 공백을 보완하며, 기초생활권 정보 접근성 제고에 기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뉴스 아이템의 지역성 반영 유형 분석에서도 두 채널 모두 ‘생활밀착성’ 보도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해, 앞선 시청자 평가와 같은 흐름을 보였다.
연구진은 이를 더 정밀하게 측정하기 위해 ‘하이퍼로컬미디어지수(Hyperlocal Media Index·HMI)’도 개발해, 향후 지역방송의 지역성을 평가하는 도구로 제안했다. HMI는 뉴스 취재 원천지가 전국·중앙기관에 가까울수록 낮게, 시·군·구와 읍·면·동, 마을·시장·대학·산업단지 등 생활공간에 가까울수록 높게 점수를 부여해 지역 뉴스의 생활권 밀착도를 측정하는 지표다.
경남·울산 8개 방송사를 대상으로 산출한 결과, 서경방송(48.48점)과 JCN울산중앙방송(46.73점)이 8개 방송사 중 나란히 1·2위를 기록했다. 서경방송은 ‘기초지역 보도비율’이 72.78%로, JCN울산중앙방송은 ‘하이퍼로컬 보도비율’이 26.03%, ‘생활공간 보도비율’이 24.20%로 가장 높았다. 두 SO가 각각 기초지역 보도와 생활공간 보도에서 강점을 보이며, 지역민 생활권에 밀착한 뉴스 제공자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연구진은 SO 지역채널이 뉴스 생산력, 기초 단위 지역 밀착도, 지역문화 기여, 하이퍼로컬 도달성 측면에서 지역 지상파와 상호 보완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이러한 공적 기여가 제도적으로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며, 이를 ‘기여와 인정의 불일치’로 규정했다. 이어 법적 지위의 정합성, 재정 부담의 형평성, 생산기반의 지속가능성, 저널리즘 기능의 정상화 등을 중심으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세미나에서는 SO 지역채널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정책 제언도 이어졌다. 유경한 전북대학교 교수는 ‘5극 3특 시대,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지역 미디어 생태계 조성과 SO의 지역사회 역할 재정의’ 발표를 통해 “지역채널 문제는 특정 사업자 지원이 아니라 지역 공공성을 유지하기 위한 공공비용의 사회적 분담 문제로 재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 교수는 SO가 유료방송사업자 중 유일하게 지역성·보편성·재난 등 공적 책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그 비용은 민간 SO가 단독으로 부담하는 ‘지역채널의 역설’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SO는 연간 1,190억 원을 지역채널에 투자하고 한 해 7만여 건의 재난방송을 송출하고 있지만, 방송수신료 등 방송사업 기반은 약화되고 초고속인터넷·인터넷전화 등 비방송 수익이 방송 본업과 지역채널의 공적 기능을 보전하는 교차보조 구조가 지속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유 교수는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향으로 공공 영역의 ‘서비스 진흥’과 민간 영역의 ‘규제혁신’을 함께 제시했다. 공공이 지역 공공미디어 서비스의 비용을 함께 분담하는 한편, 쇠퇴기 SO가 공적 기능을 지속할 수 있도록 낡은 규제를 합리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비스 진흥의 출발점으로는 지역채널의 성격 재정의가 제시됐다. 유 교수는 기존의 ‘중소 SO 지원’ 프레임은 대기업 MSO 본사 지원 논란이나 IPTV·OTT와의 규제 형평성 논란에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대신 지역채널을 지역뉴스, 재난·안전정보, 지역생활정보, 지역문화, 지방의회·선거, 시민참여, 디지털 접근성 등 7대 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지역 공공미디어 서비스’로 규정하고, 케이블을 넘어 IPTV·OTT·앱·AI 지역정보까지 포괄하는 플랫폼 중립적 체계로 확장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유 교수는 지역채널을 '서비스'로 재정의해야 하는 근거로 SO의 핵심 기능, 즉 지역 고유의 서사(Local Narrative)를 구축하는 스토리텔링 하부구조로서의 역할을 제시했다. 공영방송 등 거시 미디어와 마을미디어 등 미시 미디어 사이에서 SO 지역채널이 생활권 정보와 권역 단위의 재난·행정 정보를 잇는 중범위(meso) 연결 인프라라는 것이다. 나아가 공영방송, 지역민방·지역신문, 공동체라디오, 유튜브·SNS 등 서로 다른 미디어의 공동제작과 멀티플랫폼 유통을 조정하는 '오케스트레이터'로서, 지역의 기억과 일상을 하나의 서사로 축적하고 지역 소속감과 시민참여로 이어가는 것이 SO의 본질적 역할이라는 설명이다.
지역채널을 ‘서비스’로 재정의할 경우 핵심 과제는 안정적 재원 마련이다. 유 교수는 방송통신발전기금, 수신료 지역환류분, 지방재정 매칭 재원, 유료방송·플랫폼 공공기여금 등을 묶은 ‘지역 커뮤니케이션 진흥기금’ 신설을 제안했다. 지역 공공정보 유통으로 혜택을 받는 플랫폼과 사업자도 공적 비용을 함께 부담하는 ‘수익자 부담’ 원칙을 제도화하자는 취지다.
이 기금은 5극 3특 권역 단위의 지역공공미디어센터를 통해 공영방송, 지역민방, SO 지역채널, 공동체미디어, 지역신문·온라인미디어 등에 배분하는 구조로 제시됐다. 지원 기준 역시 사업자 유형이 아니라 지역뉴스, 재난정보, 생활정보, 지역문화, 지방의회·선거, 시민참여, 디지털·AI 접근성 등 공적 기능 수행 성과를 중심으로 설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공공 재정 지원과 함께 SO의 자생력을 높이기 위한 규제혁신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 교수는 의무편성·요금 규제를 완화하고 진입·소유·재허가 규제를 합리화하는 한편, 기금 부과 기준도 매출액 중심에서 이익과 공적 역할을 고려하는 방식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규제혁신의 가능성은 지역채널 커머스방송 사례에서도 확인됐다. SO의 상품 판매를 제한적으로 허용한 지역채널 커머스방송은 규제샌드박스 실증을 통해 2025년 1~10월 77억 원이 넘는 판매액을 기록했으며, 2021년 6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53개월간 13개 SO가 참여해 지역 소상공인의 판로 확대에 기여했다.
유 교수는 지역채널 제도 개편을 단기·중기·장기로 나눠 추진하는 단계적 로드맵도 제시했다. 지역채널 의무를 곧바로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지역 공공미디어 서비스로 전환하고, 이를 뒷받침할 재원과 거버넌스를 갖춘 뒤, 장기적으로 자율화 체계로 이행해야 한다는 구상이다.
단기에는 방송통신발전기금 일부를 활용해 지역공공미디어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SO 회계분리를 의무화하는 한편 지역채널의 온라인·VOD 실적을 인정하는 등 현행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이를 위해 방송법 시행령 개정 등 우선 추진 가능한 제도 개선부터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중기에는 지역 커뮤니케이션 진흥기금을 설치하고 수신료 지역환류분과 지자체 매칭 재원을 명시해 안정적 재원 구조를 마련하는 방안이 제안됐다. 동시에 지역광고, 커머스, 데이터 서비스 관련 규제를 완화하고, 지역방송발전지원특별법을 지역 공공미디어 서비스까지 포괄하는 법체계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장기적으로는 지방세와 균형발전 재원까지 포함한 지역 커뮤니케이션 재정체계를 구축하고, 지역채널 의무를 단계적으로 자율화해 SO가 지역 미디어 허브이자 지역경제 플랫폼으로 기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아울러 방송과 OTT를 아우르는 통합 시청각미디어서비스법 마련도 장기 과제로 제시했다.
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개회사를 통해 “지역 주민에게 필요한 공공미디어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제공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과 정책 방향을 차분히 마련해 나가야 한다”며 “국회에서도 지역 방송의 저널리즘 기능 강화와 자생력 회복을 위한 입법·제도적 지원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고민수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은 축사를 통해 “지역채널의 공익적 가치와 사회적 역할을 다시 한번 되새기고, 지속가능한 지역 미디어 생태계를 위한 정책적 지원과 제도 개선 방향을 함께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며 “방미통위 정책 추진 과정에서도 학계와 현장의 다양한 의견과 제언을 적극 참고해 나가겠다”고 전했다.
한편 이날 세미나에 앞서 김현 의원과 SO업계 대표단 간 간담회도 진행됐다. SO업계 대표단은 유료방송 시장 변화로 케이블TV 경영 여건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을 설명하고, 지역채널의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한 정책적 지원을 요청했다.
대표단은 지역채널이 재난방송, 지역 선거정보 제공, 생활정보 전달 등 지역 미디어로서 공적 역할을 수행해 온 만큼, 지역신문·지역방송 지원제도의 선례를 참고한 평가 기반 직접 지원제도 도입과 ‘시청각미디어서비스법’ 내 지역채널 법적 지위 및 재원 지원 근거 반영을 요청했다. 또한 요금·광고 규제 완화 등 위기 극복을 위한 제도 개선 방안도 함께 건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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