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보험의 역설…정교해질수록 멀어지는 ‘위험 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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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보험의 역설…정교해질수록 멀어지는 ‘위험 분담’

투데이신문 2026-06-30 14:01:2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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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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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보험산업 내 인공지능(AI) 활용이 상품 개발, 언더라이팅(인수심사), 리스크 관리 등 핵심 영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AI가 보험사의 경영 효율성과 손해율 예측 역량을 높일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는 가운데, 기술적 정교화가 보험의 본질인 ‘위험 분담’ 원칙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보험연구원은 전날 ‘2026 인터내셔널 워크숍 온 리스크 앤 인슈어런스’를 열고 ‘AI 혁명과 사이버 리스크’를 주제로 패널 토론을 진행했다. 이번 워크숍에서는 AI가 보험산업에 미치는 구조적 변화와 생성형 AI 확산에 따른 사이버 리스크 대응, 공공과 민간의 책임 분담 방안이 논의됐다.

행동 데이터로 옮겨가는 위험평가

이날 논의의 중심에는 AI가 바꾸는 위험평가 방식이 있었다. 전통적인 보험 시스템은 연령, 성별, 직업, 거주지역 등 집단 정보를 기준으로 위험률을 산정해왔다. 유사한 위험 집단을 묶고, 통계적 평균치를 토대로 보험료를 산출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빅데이터와 AI 알고리즘이 고도화되면서 위험평가 방식은 ‘집단’에서 ‘개인’으로 이동하고 있다. 가입자의 행동 데이터와 생활 습관, 디지털 이용 기록 등을 반영해 개인별 위험을 더 세밀하게 산정하는 방식이 가능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용민 프로시스 언더라이팅 솔루션즈 부대표는 AI가 보험사의 위험평가 방식을 바꾸고 있다고 설명했다. 과거에는 가입자가 속한 집단의 통계 정보를 중심으로 위험을 판단했다면, 앞으로는 개인의 행동 데이터를 바탕으로 위험을 더 세밀하게 구분하는 방식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변화가 상품 개발과 언더라이팅 전반으로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긍정적인 변화다. 방대한 계약·보험금 지급 데이터를 AI로 분석하면 손해율 예측의 정확도를 높이고, 고위험 계약을 사전에 가려내는 능력도 강화할 수 있다. 보험금 청구 심사 자동화부터 보험사기 탐지, 고객 상담 등 업무 효율성도 높아질 수 있다.

문제는 위험 측정이 정교해질수록 보험의 성격도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보험은 미래의 불확실한 사고에 대비해 다수의 가입자가 위험을 나누는 제도다. 그러나 AI가 개인별 위험을 지나치게 세분화하면 저위험군은 낮은 보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반면, 고위험군은 보험료 부담이 커지거나 가입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정교한 심사, 위험 분담 흔든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해외 전문가 발언에서도 확인됐다. 아르튀르 샤르팡티에 퀘벡대 몬트리올캠퍼스 교수는 AI를 활용해 위험을 과거보다 정밀하게 식별할 수 있더라도, 보험이 본질적으로 위험의 공동 분담을 목적으로 하는 제도라는 원칙은 유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AI 보험의 핵심 딜레마와 맞닿아 있다. 보험사가 가입자의 위험을 더 정확히 알수록 보험료는 개인별로 세분화될 수 있다. 저위험 가입자는 더 합리적인 보험료를 기대할 수 있지만, 고위험 가입자는 민간 보험시장에서 밀려날 가능성이 커진다.

결국 AI를 활용한 정밀심사가 확대될수록 보험이 위험을 나누는 제도인지, ‘걸러내는’ 제도인지에 대한 논쟁도 커질 수밖에 없다. 위험 측정의 고도화가 사회적 보호가 필요한 고위험군을 시장 밖으로 밀어내는 ‘위험 선별의 역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설명가능성과 데이터 편향성도 과제다. 같은 연령과 직업, 유사한 건강 상태를 가진 가입자라도 건강관리 습관, 운전 행태, 의료 이용 패턴 등에 따라 위험도가 다르게 산정될 수 있다. 보험사는 AI 분석을 통해 맞춤형 상품을 내놓을 수 있지만, 소비자는 자신이 왜 고위험군으로 분류됐는지 납득하기 어려울 수 있다.

AI 모델이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한다는 점도 변수다. 기존 데이터에 특정 집단이나 직군, 거주지역, 의료 이용 성향에 대한 편향이 포함돼 있다면 AI가 이를 반복하거나 강화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AI 활용이 확대될수록 알고리즘 검증과 소비자 설명 절차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AI가 만든 새 위험, 사이버보험 시험대

AI가 가져올 변화는 보험사의 내부 심사 구조에만 그치지 않는다. 생성형 AI 확산은 딥페이크 금융 사기, 악성코드 자동 생성, 대규모 데이터 유출, 시스템 장애 등 새로운 사이버 리스크를 키우고 있다.

워크숍 패널토론에서도 AI 리스크가 특정 기업의 피해에 그치지 않고, 클라우드나 공급망을 타고 금융 및 인프라 시스템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거론됐다. 좌장을 맡은 정광민 포항공대 교수는 AI 관련 피해가 광범위하게 번질 수 있는 만큼 정부와 보험사, 재보험사 등 다양한 주체가 어떤 방식으로 책임을 나눌 것인지 논의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해외 패널들도 AI 리스크는 민간 보험시장만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영역이라고 봤다. 대규모 사이버 사고나 AI 시스템 오류는 피해 범위와 규모를 예측하기 어렵고, 한 보험사가 단독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손실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사이버보험 시장 활성화 방안을 두고는 접근 방식에 차이가 나타났다. 최 부대표는 시장이 아직 초기 단계인 만큼 정부가 제도적 기반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개인정보를 대규모로 처리하거나 사회적 인프라와 맞닿아 있는 일부 업종에 대해서는 사이버보험 가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반면 손재희 보험연구원 실장은 의무 가입보다 시장 참여를 넓히는 방식에 무게를 뒀다. 중소기업은 사이버 리스크에 대한 인식과 예산이 부족하고, 보험사 역시 가격 산정에 필요한 데이터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만큼 인센티브를 통해 자발적 가입을 유도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다.

결국 AI 시대 보험산업의 과제는 기술을 도입할 것인지가 아니라, 기술을 어떤 원칙 아래 사용할 것인지에 있다. AI는 보험사의 위험평가를 정교하게 만들 수 있지만, 정교함이 곧 공정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개인별 위험을 세밀하게 식별하려는 효율성과 위험을 사회적으로 나누려는 보험의 공익성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일이 중요해지고 있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AI 활용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지만, 위험평가가 고도화될수록 소비자에게 설명 가능한 기준과 고위험군 보호 장치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며 “앞으로는 알고리즘의 성능뿐 아니라 기술 효율성과 보험의 사회적 기능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가 시장 신뢰를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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