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온라인 도박에 빠진 청소년들이 스스로 경찰서를 찾고 있다. 한 중학교에서는 같은 반 15명이 집단 자수했고, 배후에는 친구 가입을 유도한 고교생 모집책이 있었다. /연합뉴스
"처벌을 받아도 좋으니 제발 도박을 끊게 해 주세요."
스마트폰 불법 온라인 게임 등 사이버 도박 늪에 빠진 청소년들이 스스로 경찰서를 찾아와 가장 많이 쏟아내는 절박한 호소다. 단순히 호기심으로 시작했던 10대들이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중독 굴레에서 경찰에 구조 요청을 보내고 있다.
경찰청은 청소년 도박 근절을 위해 올해부터 '사이버 자진신고' 제도를 전국으로 확대 시행하고 있다.
2024년 11월 대전경찰청에서 시작되어 지난해 전국 8개 시도경찰청으로 확산된 이 제도는, 음지에 숨어있던 청소년 도박의 심각성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있다.
올해 5월 20일경 전국 시행을 시작한 지 불과 한 달 만에 300건 가까운 자진 신고가 접수됐다. 신고된 도박 금액은 1000원부터 최대 9500만 원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이었다.
"안 하면 무리에서 배제"…중학생 15명 집단 자수 배후엔 '슈퍼 전파자'
특히 대전의 한 중학교에서는 같은 반 학생 15명이 한꺼번에 경찰을 찾아와 자진 신고를 한 충격적인 사례도 있었다.
이 집단 도박의 중심에는 이른바 '슈퍼 전파자' 역할을 한 고등학생 모집책이 존재했다. 이 고등학생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친구를 온라인 사이트에 가입시키면 추천인 코드를 통해 포인트를 주겠다"며 학생들을 회유했고, 반 전체가 도박에 빠질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했다.
당시 이 15명의 자진 신고를 직접 접수했던 경찰청 청소년보호과 유혜미 경위는 도박이 청소년들 사이에서 일종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고 지적했다.
유 경위는 "도박을 해서 딴 수입금으로 다 같이 밥을 먹으러 가고 그렇게 해서 '너도 이 사이트 가입하라며 알려주는데 가입을 안 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며 "그들의 문화에 소속되지 않아 배제가 되어 버리면 아이들 또한 소속감을 잃기 때문에 도박까지도 같이 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전과자' 대신 '치료' 택한 경찰…선처 미끼로 강제 치료 이끌다
경찰은 자진 신고를 한 청소년들에게 선처라는 유인책을 통해 적극적인 치료를 강제하고 있다.
올해부터 자진 신고자에 대한 선처 기준을 완화했지만, '어느 정도까지 처벌을 피할 수 있는지'에 대한 잘못된 신호를 주지 않기 위해 구체적인 기준은 비공개로 유지하고 있다.
신고 접수와 동시에 해당 청소년은 보호자 동반 상담을 거쳐 도박 예방 치유 센터와 연계된 치료를 받게 된다. 아울러 학교전담경찰관이 3개월 동안 1대1로 사후 관리를 전담한다.
과거에는 도박 예방 치료 센터 연계를 법적으로 강제할 근거가 없었으나, 현재는 치료를 이어가지 않으면 경찰이 선처를 해주지 않기 때문에 학생들이 반강제적으로라도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하게 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청소년 도박이 무서운 진짜 이유는 사기, 절도, 성매매, 마약 운반, 보이스피싱 등 심각한 2차 범죄로 직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자진신고제의 핵심은 이 2차 범죄로 넘어가기 직전 빠르게 회복에 초점을 맞춰 골든타임을 사수하는 데 있다.
이러한 제도의 성과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1년 4개월 동안 2000만 원 가까운 돈을 도박에 탕진했던 한 학교 밖 청소년은 "처벌을 받아도 좋으니 제발 도와달라"며 찾아온 뒤, 현재는 도박을 끊고 검정고시 합격 후 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있다.
학생들이 경찰을 '처벌하는 사람'이 아닌 '도와줄 수 있는 사람'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큰 변화다.
우리 사회가 먼저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고 안전한 양지로 이끌어준다면 일상으로 회복할 수 있는 청소년들이 많다는 것을 이번 자진신고제가 증명하고 있다.
Copyright ⓒ 로톡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