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中 출판학자 "AI는 출판을 죽이지 않는다…오히려 출판의 권위 강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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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中 출판학자 "AI는 출판을 죽이지 않는다…오히려 출판의 권위 강화한다"

AI포스트 2026-06-30 13:22:2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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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국출판학회)
(사진=한국출판학회)

"AI는 출판을 죽이지 않는다, 오히려 출판의 권위를 강화한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서로 다른 입장으로 연구해 온 한국과 중국의 출판 학자 10명이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결론에 다다랐다. 지난 6월 23일 경기 과천 비상교육 사옥에서 막을 올린 '제24회 한중출판학술회의' 30주년 자리에서 양국 학자들이 한목소리로 내놓은 메시지다.

올해 회의의 대주제는 'AI 시대 출판 산업의 위기와 기회'. 한국출판학회와 중국신문출판연구원이 공동 주최한 이번 회의는 1996년 첫 개최 이후 정확히 30주년을 맞았다. 지난 30년간 양 학회는 디지털 전환, 전자책, 플랫폼 경제 등 시대적 의제를 폭넓게 다뤘지만 단일 주제로 이렇게 한 방향에 모인 적은 없었다. AI가 출판산업 전체를 동시에 흔든다는 위기감이 그만큼 컸다는 반증이다.

중국 학자가 더 자세히 분석한 한국 AIDT 사업의 좌초

이날 가장 눈길을 끈 장면 하나로 중국 측 장샤오빈 중국신문출판연구원 출판인쇄산업연구소장의 발표를 꼽을 수 있다. 그는 자신의 논지 "인쇄 교과서는 AI가 쉽게 대체할 수 없다"를 입증하려고 한국 사례를 자세히 인용했다. 윤석열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다 좌초한 AI 디지털 교과서(AIDT) 사업이다.

장 소장의 논지는 단순했다. 현대 학교 교육은 본질적으로 사회화(socialization), 즉 교사·학생 간 상호작용으로 굴러간다. AI가 단순 지식 전달 효율은 끌어올릴 수 있어도 교사가 "도(道)를 전하고 학문을 가르치며 의문을 풀어주는" 역할까지 대체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교과서 역시 단순한 지식의 집합이 아니라 오랜 교육 현장 경험이 다듬은 검증된 지식 체계다.

특히 초·중등 인쇄본 교과서는 심층 독서와 장기 학습에 유리하고, 학생의 신체·정신 건강과 개인정보 보호 측면에서도 디지털로 대체하기 어렵다. 그는 그러나 "교육 출판이 현상 유지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인쇄본 교과서는 AI·디지털 기술과 적극 융합해 학습 플랫폼의 진입점 역할을 맡아야 하고, 디지털 교과서는 AI와 결합한 "AI 디지털 교과서"로 진화해야 한다는 권고다.

장 소장이 정리한 타임라인은 이렇다. 2024년 11월 76종의 AIDT가 교과용 도서 심사를 통과했지만, 같은 시점 국회 교육위원회가 AIDT를 '보조 교재'로 분류해 학교 자율에 맡기는 법안을 의결하며 지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2025년 3월 수학·영어·정보 과목 AIDT를 약 3,870개 초·중등학교가 채택했으나 정작 수업에서 본 교재로 활용한 적용률은 30% 안팎에 머물렀다. 학습 참여도 저하·기술적 사용성 불량·구독료 과다 문제가 잇따랐다.

그해 8월 국회 본회의는 '초등 및 중등 교육법' 개정안을 의결해 AIDT를 정식 교과서가 아닌 '수업 참고 자료'로 내렸고, 공립학교 도입 국가 예산 지원까지 끊었다. 의욕적으로 출발한 AI 교육의 야망이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사실상 막을 내렸다. 한국의 실패 사례를 중국 학자가 자기 논거로 끌어왔다는 점 자체가 눈길을 끌었다.

미국 페이퍼백 84% 붕괴, 그 위에 AI가 올라탔다

위기 신호는 분명하다. 장 소장이 인용한 또 다른 데이터는 출판산업의 구조 변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미국 대중 페이퍼백(mass market paperback) 판매량은 2004년 1억 3,100만 부에서 2024년 2,100만 부로 20년 만에 84%가 무너졌다. 미국 최대 도서 유통업체 리더링크는 2025년 말 페이퍼백 유통 중단을 결정했다. 같은 기간 미국에서 업무·학습과 무관한 독서 인구는 20년 사이 40% 줄었다는 통계(플로리다대·UCL, iScience 2025)도 함께 거론됐다. 100년 가까이 이어 온 "저가 대중시장 출판 모델"이 막을 내리는 셈이다.

(사진=한국출판학회)
(사진=한국출판학회)

이 위기 위에 AI가 올라탔다. 중국 측 티엔페이 중국신문출판연구원 출판연구소 부연구원이 발표한 데이터를 보면, 중국 성인이 하루 휴대폰에 쏟는 시간이 109.54분으로 종이책 독서 시간(24.68분)의 약 4배에 이른다. 한국 상황도 비슷하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5년 국민독서실태조사에서 한국 성인 연간 종합독서율은 38.5%로, 학생 94.6%와 큰 격차를 보였다.

중국 AI 만화, 1년 만에 700억 회 재생

위기와 기회는 동전의 양면이다. 양쿤 중국신문출판연구원 출판법제·저작권연구소 부소장이 소개한 중국 AI 만화 드라마 시장 데이터는 눈길을 끌었다. 2025년 한 해 동안 틱톡에서만 신작 AI 만화 6만 편을 선보였고, 전체 시장 재생 수는 700억 회를 넘어섰다. 광둥 인민출판사의 첫 해외 진출작은 유럽·미국 시장에서 첫날 1시간 동안 9만 뷰를 기록했다.

칭화대학교 선양 교수 팀은 "스스로 한 글자도 쓰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며 AI와 3시간 동안 66회 대화를 거쳐 SF 소설 '기억의 땅'을 창작했다. 이 작품은 2023년 장쑤성 청년 과학 SF 작품 대회에서 2등상을 받으며 중국 문학사 최초로 전문상을 받은 AI 작품으로 이름을 올렸다. 베이징의 9세 초등학생 쉬멍멍(필명)은 AI와 협업해 SF 소설 'AI 소년, 화성 생존 대도전'을 1개월 만에 완성했고, 2024년 5월 정식 출간했다.

양쿤은 출판사가 비즈니스 모델을 "도서 판매"에서 "콘텐츠 제품 판매"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서 + 만화 드라마 + 파생작"이라는 전신 개발 모델은 한국이 웹툰으로 만들어낸 글로벌 IP 확장 공식을 한층 가속한 형태다.

표준화 경쟁에서 앞선 중국, 라벨링 모델을 제안한 한국

기술 변화에 가장 빠르게 대응하는 영역은 표준화였다. 리치 중국신문출판연구원 부연구원은 "GenAI는 학술출판에 양날의 검"이라며 중국이 이미 제정 중인 학술출판 AI 표준 3종을 풀어냈다. 첫째는 '학술출판에서 AIGC 사용 경계 가이드'다. 2026년 초 작업을 시작한 국가 표준 지도 문서로, 강제력은 없지만 저자·편집자·심사위원이 GenAI를 어디까지 활용해도 좋은지 그 경계를 명문화한다.

자료 수집·통계 분석·도표 제작·언어 윤문에는 AI를 활용해도 괜찮지만, 핵심 연구 결론을 AI로 직접 생성하는 일은 권장하지 않는다는 식이다. 둘째는 '학술출판 규범 GenAI 사용 표기 및 선언'으로, 강제성을 갖춘 업계 표준이다. 셋째는 2019년 제정한 '학술출판 규범 학술 부정행위 정의' 개정안으로, GenAI를 부적절하게 쓴 행위를 부정행위 판단 기준에 넣는다.

핵심은 인간과 AI가 글에 얼마나 함께 손댔는지에 따라 콘텐츠를 셋으로 나눠 표시하는 라벨링 체계다. ▲사람이 지시하고 AI가 통째로 만든 글(AIGC) ▲AI가 만든 뒤 사람이 실제로 가공한 글(AI-HI) ▲사람이 쓰고 AI가 거든 글(HI-AI). 앞의 두 유형은 본문 안에 어떤 AI 도구를 언제 어떻게 썼는지 밝히고, 세 번째 유형은 원고 끝에 따로 적어 알린다. 글에 AI가 얼마나 개입했는지를 독자가 알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글로벌 학술출판이 AI 사용을 어떻게 식별하고 관리할지를 두고 중국이 한 발 앞서 기준점을 세운 셈이다.

한국에서는 윤미진 한국폴리텍대학 교수가 같은 맥락의 제안을 내놓았다. 자율주행차 Level 0~5 등급제처럼 출판물에 AI 개입 정도를 단계별로 표기하는 'AI-Human Collaboration Label(AI·사람 협업 표시)'을 도입하자는 것이다. 본문 텍스트·표지·통계 등 출판 요소별로 따로 표시하는 방식까지 구체적으로 설계한 이 제안은 한국발 글로벌 라벨링 모델로 자랄 가능성을 보여줬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저작권위원회가 2026년 2월 '생성형 인공지능의 저작물 학습 관련 저작권법상 공정이용 안내서'를 펴내며 ▲이용 목적 및 성격 ▲저작물 종류 및 용도 ▲이용 부분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 ▲시장 가치에 미치는 영향 네 가지 판단 기준을 제시한 흐름과 맞물려, 한국이 글로벌 출판 AI 거버넌스의 첫 기준점을 세울지 지켜볼 대목이다.

독자 맞춤형 출판, 그리고 공공도서관

한국 측 다른 발표도 결이 같았다. 이문학 인천대 교수는 밀리의서재 'AI 독파밍', 알라딘 만권당, 제주어판·전라도방언판 '어린왕자', 큰글자책 사례를 들어 출판의 중심이 콘텐츠 생산에서 독자 데이터 기반 경험 설계로 옮겨간다고 진단했다. 출판이 "제조업"에서 "경험 산업"으로 바뀐다는 인식이다.

공병훈 협성대 교수는 헨리 젠킨스의 트랜스미디어 이론에 웹 3.0 블록체인·NFT 기술을 결합한 '커뮤니티·플랫폼·IP 중심 출판 모델'을 제안하며 출판이 더 이상 단일 매체 산업이 아니라 종합 콘텐츠 산업으로 진화한다고 봤다.

(사진=한국출판학회)
(사진=한국출판학회)

중국 양춘란 중국신문출판연구원 출판연구소 부소장은 "지면-디지털 융합이 '형식상의 결합'에서 진정한 '생태계의 융합'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2024년 융합 발전 수입 97억 위안 규모로 성장한 중국 출판업의 네 가지 융합 모델인 동일원천 다원화 개발, 시나리오 기반 지식 서비스, IP 전 링크 개발, 기술 서비스 수출을 사례와 함께 소개했다.

정윤희 한남대 교수는 엘리너 오스트롬과 가이 스탠딩의 공유지 이론을 끌어와 공공도서관을 "문화공유지"로 재정의했다. AI가 정보를 무한 복제할수록 검증된 지식의 거점으로서 공공도서관의 역할은 오히려 커진다는 것이다. 지식 접근성·독서공동체·지역 독서생태계·문화적 공공성, 네 가지 전략이 제언으로 따라붙었다. 티엔페이는 "출판업은 기술을 거부해서도 안 되고 기술에 길을 잃어서도 안 된다"며 출판이 고품질 콘텐츠의 수호자이자 심층 독서의 설계자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맺었다.

"AI 시대일수록 편집자의 권위는 더 강해진다"

발표 10편을 관통하는 공통 메시지는 의외였다. AI가 정보 생산 효율을 폭발적으로 끌어올릴수록 오히려 검증을 거친 콘텐츠와 게이트키핑(편집자의 선별) 기능이 더 희소해진다는 것이다. 양쿤 부소장은 "AI는 출판업을 근본적으로 뒤흔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출판 활동의 본질로 회귀하도록 견인하고 있다"라고 했다.

학자들이 모은 다섯 가지 결론은 이렇다. 첫째, AI는 대체자가 아니라 증폭자다. 둘째, 편집자·출판사의 게이트키핑 역할이 오히려 강해진다. 셋째, 출판의 정체성을 "책 판매"에서 "콘텐츠 제품·서사 자산 판매"로 재정의해야 한다. 넷째, 종이와 디지털은 대립이 아니라 공존한다. 다섯째, 표준화·라벨링·저작권이 핵심 인프라가 된다.

두 기관의 인연은 1995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한국출판학회와 청주 고인쇄박물관이 공동으로 연 제1회 국제 인쇄출판문화 학술회의에서 양측 연구원이 처음 만났다. 회의 뒤 한국출판학회 이종국 전 회장과 당시 중국출판과학연구소 원량(袁亮) 소장이 서신을 주고받으며 의기투합한 끝에, 1996년 1월 5일 중국 베이징 기자협회 회당에서 제1회 한중출판학술회의가 열렸다.

이듬해 제2회를 한국에서 연 뒤로 양국이 번갈아 30년간 24회를 이어왔으며 200여 명의 전문가·학자가 토론에 참여했다. 예일 부원장은 축사에서 2015년부터 2024년까지 중국이 한국에서 도서 저작권 4,432건을 들여왔다는 통계로 30년 교류의 두께를 짚었다.

배진석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선임은 한·중 양국이 직면한 공통 과제를 풀 네 가지 협력 방안을 제안했다. ▲AI 시대 출판 저작권 보호 한중 공동 가이드라인 ▲K-Book과 중국 출판 플랫폼 간 데이터 상호 운용성 확보 ▲K-Book·C-Book의 글로벌 시장 공동 확장 ▲미래 출판 인재 양성 교육 인프라 공유다. 그는 한국 정부가 준비하는 제6차 출판문화산업 진흥 5개년 계획(2027~2031)이 "국가-진흥원-출판계-기술진영-국제기구"가 결합한 다층적 거버넌스로 진화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AI라는 초국가적 환경은 단일 부처 행정만으로 다루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출판학회 김진두 회장은 폐회사에서 "AI는 출판을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라, 출판의 가치와 역할을 새롭게 정의하는 기술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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