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의 종전 양해각서(MOU) 후속 협상이 진행 중인 가운데 양측의 신경전이 치열한 모습이다.
미국은 지난 26~27일(이하 현지시간) 이란의 상선 공격을 문제 삼아 연이틀 공습을 감행했고, 이란도 걸프 지역 미군 기지를 공격하며 맞대응했다. 이로 인해 종전 협상 테이블이 깨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으나 미국 온라인매체 악시오스는 양측이 30일 도하에서 회담을 열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30일 이란과 고위급 회담이 열릴 것이라고 밝혔으나 이란은 향후 며칠간 협상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협상 우위에 서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외교가에서는 현재 이란에게 핵 보다는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을 갖는 것이 중요한 만큼 이 부분에 대한 정리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이란 요청으로 도하서 고위급 회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카타르 도하에서 30일 이란과의 고위급 회담이 열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날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이란이 회담을 요청해왔다"고 밝히며 회담 시점을 30일로 못박았다. 그러나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와 스티브 윗코프 특사가 이번 주 도하에서 고위급 회담에 참석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그는 "고위급 회담과 병행해 기술적 실무회담도 열릴 것"이라며 "미국은 휴전을 준수하고 있으며 폭력에는 폭력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시점을 30일로 특정한 반면, 레빗 대변인은 '이번 주'로 표현해 시기 조율이 아직 끝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당초 미국과 이란은 29일이나 30일 스위스에서 실무회담을 할 계획이었으나,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무력 충돌 이후 쿠슈너와 윗코프가 참여하는 고위급 회담으로 형식이 변경된 것으로 보인다.
이란 외무부 "향후 며칠간 미국과 어떠한 협상도 없을 것"
반면 이란 측은 미국과의 종전 합의 후속 협상 계획이 당분간 없다고 반박했다.
이란 국영 IRNA 통신에 따르면 에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29일 "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현재 최우선 과제는 양해각서(MOU) 조항의 이행을 보장하는 것"이라며 "이에 따라 우리의 요구 사항을 진지하게 밀어붙이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석유 판매와 동결 자산 접근 등 MOU 조항 이행 현황을 추적하고 있다면서 "이란 전문가 대표단이 이번 주 카타르 도하에 파견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는 협상 개시가 아닌 조항 이행 점검 차원이라고 강조했다.
실무 협상 개시 여부에 대한 질문에는 "아직 최종 합의를 위한 협상 단계에 진입하지 않았다"며 "MOU 13항에 따르면 최종 협상 개시는 1항, 4항, 5항, 10항, 11항의 이행 개시와 지속적 이행을 전제로 한다"고 답했다.
미국 대표단의 도하 방문 보도와 관련해서도 "향후 며칠 동안 미국 측과 어떠한 수준의 협상 회담도 갖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 대표단의 방문은 이란 대표단과 무관하다. 이란 대표단은 MOU 11조를 포함한 조항 이행 상황을 점검하기 위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이 핵심…"이란 핵 보다 호르무즈가 중요"
이란 "지정 항로 벗어난 선박 차단"… 오만 협력 없어도 독자 추진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은 미국과의 협상에서 마지막 전략적 지렛대를 잃지 않기 위한 포석으로 분석된다.
핵 프로그램 협상이 진전될 경우 이란은 고농축 우라늄 비축분을 넘기거나 희석하는 방식으로 핵 억지력의 일부를 포기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호르무즈 해협은 핵 억지력을 대신할 사실상 유일한 전략 카드가 된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 수송의 핵심 동맥이다. 이란이 이 수로를 위협할 수 있는 능력을 유지하는 한, 협상장에서 제재 완화와 동결자산 해제를 요구할 수 있고, 협상이 결렬되면 세계 에너지 시장에 충격을 가하는 수단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란이 평화협상 국면은 물론 군사적 충돌 상황에서도 호르무즈를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전략 자산으로 보고 있다.
오만 영해를 지나는 새 항로에 대한 이란의 강한 반발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된다. 핵 협상이 마무리되기 전에 호르무즈에 대한 영향력이 약화될 경우 미국으로부터 양보를 이끌어낼 여지가 줄어든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제위기그룹(ICG)의 알리 바에즈 수석 분석가는 뉴욕타임스(NYT)에 "최선의 시나리오든 최악의 시나리오든, 이란에게는 이 지렛대가 필요하다"며 "최종 합의에 이르기 전에 그 지렛대가 약화되는 것을 이란이 용인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에 대해 자국이 지정한 항로를 벗어날 경우 차단하겠다는 강경 입장을 밝혔다.
카젬 가리바바디 이란 외무부 차관은 29일 국영 TV 인터뷰에서 "호르무즈 해협의 통항로가 재설정돼야 한다는 의사를 오만 측에 전달했으며, 이에 대한 기술적 논의가 있을 것"이라며 "이란이 지정하지 않은 항로를 이용한 선박의 통항을 반대하며 이를 차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란은 상선들이 미국이 지지하는 오만 연안 항로 대신 자국이 지정한 항로를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국제 관습법과 유엔해양법협약에 따라 호르무즈 해협과 같은 국제수로에는 자유로운 항행권이 있다고 강조한다.
양측의 MOU 조항 해석 차이는 종전 합의 이후에도 군사 충돌 재발로 이어진 바 있다. 이런 가운데 오만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에 어떠한 통행료도 부과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가리바바디 차관은 "오만이 호르무즈 해협 관리 체계 구축에 협력할 의사가 없다면 이란이 이 작업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오늘 오만 측의 준비된 모습을 확인했다"며 양국 전문가들이 며칠 내 관련 회담을 시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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