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 1970년대 초반 적십자회담 사료 재심의 통해 추가 공개
(서울=연합뉴스) 권수현 기자 = 남북은 분단 이후 처음 대화의 문을 연 1970년대 초 공식 대화 외에 선물이나 휴식시간 등 회담장 밖의 상황과 관련해서도 팽팽한 신경전을 펼쳤다.
'남북대화 사료집' 제2∼5권 중 통일부가 재심의를 거쳐 30일 추가 공개한 내용에는 남북이 적십자 예비회담 과정에서 '선물 공세' 등으로 체제 우월성을 과시하려는 모습이 묘사돼 있다.
1971년 8월 20일 남북적십자 파견원 1차 접촉으로 1945년 분단 이후 26년 만에 처음 공식 대화를 시작한 남북은 이후 판문점에서 25차례에 이르는 예비회담과 관련 실무회의를 통해 적십자 본회담을 준비한다.
5차례 파견원 접촉과 1∼2차 예비회담까지는 휴식 없이 논의를 진행하거나 남북이 따로 휴식을 취했으나 1971년 10월 6일 제3차 예비회담 때는 북측이 먼저 중립국감독위원회 휴게실에서 함께 휴식을 취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응한 남측은 북측 대표 5명을 위해 준비한 주단(옷감)을 공동휴식 시간에 전달했다.
사료집은 공동휴식 관련 동향 부분에서 북측이 선전 목적으로 공동휴식을 제의했지만, 남측이 "휴게시간을 이용해 자연스럽게 선물 공세"를 취하는 등 적극적 자세로 선전효과를 무산시켰다고 서술했다. 또 남측이 준비한 맥주와 안주가 북측 것보다 질적으로 우세했다고 평가했다.
그 2주 뒤 열린 제5차 예비회담에서는 북측의 제의로 오찬이 이뤄지고 선물이 오갔다.
북측은 남측 대표 5명뿐만 아니라 수행원(10명), 봉사원(8명)을 위해 이불감 5벌과 인삼주 23병, 과자 10상자, 사과 9상자를 준비했으며 기자들에게도 음식과 제품을 제공했다. 남측은 북측 대표들에게 넥타이 1개씩을 선물했다.
관련 동향에는 북측이 오찬을 통해 북한의 생활 수준이 높고 이번 준비에 성의를 다했다는 사실을 과시하고자 했지만 "음식은 세심하게 차린 것이나 맛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고 돼 있다.
북측은 또한 자신들은 술을 사양하면서 남측에는 술을 강권했으며, 본회의 개최에 대비해 한국 실정이나 인사사항 등을 파악하려 했다.
공동휴식 제안 자체가 기싸움 수단이 되기도 했다.
1972년 1월 10일 제14차 예비회담 때는 북측의 회담날짜 '기습제의'에 허를 찔린 남측이 사전협의 없이 회담 초에 신년축하를 겸한 다과회를 '기습제의'했고, 이에 북측이 개성에서 차편으로 다과를 급히 공수해 왔다고 기록돼있다.
이번에 추가 공개된 사료에는 1972년 8월부터 1973년 7월까지 평양과 서울을 오가며 7차례에 걸쳐 열린 남북적십자 본회담 중 서울에서 진행된 관광·공연 등 행사 현황도 포함됐다.
1972년 9월 제2차 본회담 때 워커힐에서 진행된 환영 공연에는 김정구, 패티김, 이미자, 남진, 펄시스터즈, 하춘화, 조영남 등 당시 대표 가수들이 대거 출연했다.
북측 대표단은 비원, 경복궁, 북악스카이웨이와 남산의 팔각정, 여의도아파트, 한국냉장, 지하철공사 현장, 코스모스 백화점, 신세계백화점, 현충사 등도 둘러봤다.
이번 사료 공개 심의위원장인 정승훈 전 남북회담본부장은 "회의 테이블에서 나눈 대화 외에 환담이나 부대행사, 식사, 간담회 등 회담장 밖에서 이뤄진 상호작용을 참고하면 당시 회담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inishmor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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