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한국 食 문화 조명한 '우리들의 밥상' 내일 개막
3천년 전 불탄 볍씨·김홍도 그림·허균 '맛 기록' 등 684점 한자리
도마 추정 목제 유물, 박수근 '도마'와 나란히…"삶의 가장 가까운 풍경"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먼 길을 다녀온 걸까. 패랭이를 쓴 남자는 그릇을 기울여 바닥에 남은 음식을 싹싹 긁어 먹고 있다.
반찬이라 할 만한 것은 없어 보이지만, 마지막 한 술까지 야무지게 먹으려는 듯 연신 숟가락질하며 허기를 채운다. 화가 김홍도(1745∼1806 이후)가 본 주막 모습이다.
19세기에 활동한 화가 성협(생몰년 미상)이 본 다른 밥상은 시끌벅적하다.
모자를 거꾸로 엎은 듯한 모양의 번철(燔鐵·전을 부치거나 고기를 볶을 때 쓰는 무쇠 그릇)을 둘러싼 남성 5명은 '회식' 중이다.
옷차림을 볼 때 다소 쌀쌀한 날씨인 듯 하나 젓가락질을 멈추지 않는다.
잘 익은 고기 한 점을 맛보고, 목을 축이려 술을 들이켜기도 한다. 경치 좋은 곳에서 마음 맞는 이들과 나누는 식사인 셈이다.
우리 삶을 채우는 '밥 한 끼'의 기억은 어떨까.
국립중앙박물관이 K-푸드의 뿌리가 되는 한국의 식(食)문화를 조명한 특별전 '우리들의 밥상'을 다음 달 1일부터 선보인다.
약 3천년 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무엇을, 어떻게 먹었는지 살펴보는 자리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30일 "K-푸드의 뿌리이자 우리가 매일 당연하게 마주해 온 삶의 가장 가까운 풍경을 다시 보자는 제안"이라고 소개했다.
전시는 크게 삶과 자연으로 나눠 우리의 밥상을 들여다본다.
경기 여주 흔암리에서 출토된 불탄 볍씨는 한반도에서 본격적으로 벼농사가 이뤄진 청동기시대 집터에서 발견된 것으로, 약 3천년 전 흔적으로 추정된다.
박물관 관계자는 "밥상의 주인공은 밥"이라며 "3천 년 동안 우리는 쌀을 위한, 쌀에 의한, 쌀의 삶을 살아온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시에서는 백제 무령왕(재위 501∼523)의 무덤에서 출토된 숟가락과 젓가락, 5·7·9첩의 상차림을 보여주는 19세기 말 양반가의 조리서 등이 소개된다.
3∼4세기 목제 유물과 박수근(1914∼1965)의 그림은 특히 눈길을 끈다.
부산 기장군 고촌리에서 출토된 유물은 도마로 추정되는데, 전시에서는 박수근의 1952년 작 '도마 위의 굴비'와 함께 소개한다.
박물관 관계자는 "1천700년이라는 긴 시간을 넘은 만남"이라며 "누군가의 밥상을 차리는 손길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옛 그림에 담긴 먹는 모습은 주목할 만하다.
전시실에는 김홍도의 '주막'과 '새참', 김득신(1754∼1822)의 '강가에 모여 먹고 마시다' 등 3점이 나란히 전시돼 다양한 먹는 모습을 비교할 수 있다.
정조(재위 1776∼1800)가 1795년 화성에 행차하며 먹은 음식, 헌종(재위 1834∼1849)이 할머니인 순원왕후의 육순(六旬·60세를 뜻함) 잔치 모습 등도 그림으로 만날 수 있다.
전시에서는 팔도 방방곡곡의 먹거리도 엿볼 수 있다.
허균(1569∼1618)이 쓴 '도문대작'은 유배 중에 자신이 기억하는 팔도 별미를 적은 것으로, 17세기 조선 미식가의 맛 기록과도 같다.
청어, 방어, 복어 등 다양한 해산물이 들어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경주 서봉총 출토 큰 항아리, 천마총에서 발견된 조류 알 10여 개 등은 흥미를 끈다.
변상벽(1730∼1775)의 그림 '닭과 병아리'에는 '인삼, 백출과 함께해야 기이한 공훈을 세우겠지'라는 글이 적혀 있어 여름 보양식 삼계탕을 떠올릴 수 있다.
메주의 원형으로 추정되는 3∼5세기 불탄 콩 덩어리, 젓갈을 사용한 김치 조리법이 담긴 조리서 등 우리 식문화에 깃든 발효와 양념도 다룬다.
이번 전시를 위해 박물관에 차려진 '밥상'은 한 상 가득하다.
보물 '김홍도 필 풍속도 화첩'과 '김득신 필 풍속도 화첩', 충남 태안 마도 출수 '청자 음각연화절지문 매병' 등 보물 5점을 포함해 총 684점을 모았다.
이를 위해 박물관과 미술관, 대학, 연구원 등 51곳과 개인 소장가가 힘을 보탰다.
고고·역사 유물뿐 아니라 박수근의 '봄', 장욱진(1917∼1990)의 '독', 변월룡(1916∼1990)의 '어머니' 등 한국 미술사를 채우는 여러 작품도 나왔다.
전시는 음식의 '맛'을 살리기 위한 노력을 찾아보며 찬찬히 보는 게 좋다.
박물관은 맛을 표현한 다양한 의성어·의태어, 조선 지식인이 즐긴 상추쌈 먹는 법 등을 소개하고 밥상을 차리기까지 나는 여러 소리도 담고자 했다.
음식 인문학자인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밍글스' 레스토랑의 강민구 오너 셰프, 사찰음식 명장 정관 스님 등이 참여한 인터뷰 영상도 소개한다.
유홍준 관장은 "우리의 밥상이 이 땅의 자연과 밥을 하늘로 여겨온 옛사람의 노력 위에 있다는 것을 느끼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개막일인 7월 1일부터 5일까지는 전시를 무료로 볼 수 있다. 10월 25일까지.
ye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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