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정부가 사상 처음으로 전국 농지 전수조사에 나서면서 헌법상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이 다시 논쟁의 중심에 섰다. 농지 투기와 불법 보유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반면, 이미 임차농지 비율이 절반에 달하는 현실에서 70여년 전 만들어진 원칙을 오늘날 농촌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느냐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농지 투기 근절과 농촌 현실 사이에서 해묵은 논쟁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는 중이다.
지난 5월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은 농지를 가지고 있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농지 전수조사와 처분명령 강화 필요성을 언급하며 사실상 농지 개혁에 시동을 걸었다.
정부가 농지를 문제 삼은 이유는 간단하다. 농지가 더 이상 농사를 짓기 위한 땅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한 투자 수단으로 변질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농지 전수조사
칼 빼든 정부
실제로 “농사를 짓는 사람보다 땅을 가진 사람이 더 많다”는 말이 심심찮게 나온다. 농사를 직접 짓지 않으면서도 개발 기대감만으로 농지를 보유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맡겨 경작하게 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런 구조가 청년농과 귀농인의 농지 접근을 어렵게 만든다고 보고 있다. 땅값이 오르면서 정작 농사를 지으려는 사람은 농지를 구하지 못하고, 농업과 무관한 사람은 시세차익을 기대하며 농지를 사들이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는 판단이다.
이 대통령 역시 국무회의에서 “산골짜기에 버려지다시피 한 땅도 값이 너무 올라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농지가 생산수단이 아닌 자산으로 취급되고 있다는 의미다.
이 대통령이 언급한 핵심은 헌법에 명시된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이다. 경자유전은 말 그대로 농사를 짓는 사람이 농지를 소유해야 한다는 것으로, 우리나라 농지제도의 출발점이자 지금도 헌법에 명시돼 있는 기본 원칙이다.
경자유전이 등장한 배경은 해방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농촌에는 토지를 소유한 지주와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소작농이 공존했다.
상당수 농민은 자신이 경작하는 땅을 소유하지 못한 채 수확물 일부를 지주에게 바쳐야 했다. 토지 소유가 소수에게 집중되면서 농촌 빈곤과 불평등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자 정부는 1949년 농지개혁을 단행했다.
농지개혁의 핵심은 ‘땅은 농민에게’였다. 정부는 대규모 농지를 매입해 실제 경작자에게 분배했고, 이를 통해 지주·소작 구조를 해체하려 했다. 이후 경자유전은 우리 농지정책의 기본 철학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 헌법 제121조는 “국가는 농지에 관해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농지법 역시 원칙적으로 농업경영에 이용하거나 이용할 사람이 아니면 농지를 소유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정부가 이번 농지 전수조사를 추진하는 것도 결국 이 원칙을 다시 작동시키겠다는 의미다. 실제로 이 대통령은 “농사를 안 짓는 사람은 농지를 갖고 있지 못하게 해야 한다”며 “법을 만들어 놓고 어겨도 되게 만들면 그게 법이 아니”라고 말했다. 또 “걸리면 3년에 한번씩 농사짓는 척만 하면 되는 것 아니냐”며 현행 제도의 허점도 지적했다.
절반은 빌린 땅에서 농사
임차농지 비율 최대 60%
이 같은 문제의식 아래 정부는 사상 처음으로 전국 단위 농지 전수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올해는 농지법이 시행된 1996년 이후 취득한 농지를 중심으로 조사하고, 내년에는 그 이전 취득 농지까지 범위를 확대한다. 사실상 전국 농지 전체를 들여다보겠다는 계획이다.
조사 대상 면적은 약 115만㏊에 달한다. 정부는 약 5000명의 조사 인력을 투입하고 드론과 항공사진, 위성 영상, 인공지능(AI) 기술까지 활용해 실제 경작 여부를 확인할 방침이다. 토지거래허가구역과 수도권 농지, 외국인 소유 농지, 농업법인 보유 농지 등 투기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는 지역과 유형은 중점 점검 대상에 포함됐다.
정부는 이번 전수조사를 통해 농지 투기와 불법 보유를 뿌리 뽑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부가 되살리려는 경자유전 원칙은 이미 농촌 현실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농지를 소유한 사람이 직접 농사를 짓는 구조는 오랫동안 우리 농지제도의 기본 원칙이었다.
하지만 농촌 고령화와 인구 감소가 이어지면서 농지를 소유한 사람과 실제 경작하는 사람이 다른 경우가 빠르게 늘어났다. 투기 목적 농지는 정리해야 한다는 데는 공감하지만, 현실적으로 농촌의 농지 소유 구조가 이미 크게 달라진 상황에서 일률적인 규제와 단속이 또 다른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대표적인 경우가 임대농지다. 통계청과 농업 관련 연구기관 자료를 종합하면 현재 전체 농지 가운데 임차농지 비율은 약 45% 수준으로 추산된다. 비공식 임대차까지 포함할 경우 50~60%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농촌 현장에서는 이미 절반 가까운 농지가 남의 땅을 빌려 농사짓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셈이다.
가장 큰 이유는 고령화다. 현재 농업경영주의 절반 이상은 70세 이상 고령층이다. 상당수 농민은 나이가 들면서 직접 농사를 짓기 어려워졌고, 농지를 이웃 농가나 전업농에게 빌려주는 방식으로 농지를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형태가 법적으로는 불법 임대차에 해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주인 따로
일꾼 따로
실제로 농촌에서는 “농지를 놀릴 수는 없어서 빌려준 것뿐인데 갑자기 위법이라고 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반응도 나온다. 농사를 지을 체력은 없지만 그렇다고 평생 일군 땅을 당장 처분하기도 어려운 고령 농민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상속 문제도 있다. 농촌 인구 감소가 계속되면서 농지는 점점 도시 거주 자녀에게 상속되고 있다. 농민인 부모가 세상을 떠나면 농지는 자녀에게 상속된다. 하지만 자녀 상당수는 이미 도시에서 생활하고 있다. 농사를 짓지 않더라도 상속을 통해 농지를 소유할 수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비농업인 소유 농지가 늘어나는 구조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향후 고령농 은퇴와 상속이 계속되면서 비농업인 소유 농지 비중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농지법 역시 현실을 반영해 다양한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상속 농지, 주말·체험 영농용 농지, 은퇴 농업인 소유 농지 등은 직접 경작하지 않더라도 일정 조건 아래 소유가 가능하다.
농업 법인 역시 농지를 보유할 수 있다. 문제는 예외가 늘어나면서 원칙과 현실의 간격도 함께 커졌다는 점이다. 실제로 농촌에서는 “경자유전은 이미 무너진 지 오래”라는 말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농사를 짓는 사람과 땅을 소유한 사람이 따로 존재하는 구조가 이미 고착화됐기 때문이다.
한편, 전수조사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농지 가격이 하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농민들에게 농지는 사실상 노후 자산이다. 특히 농지연금을 이용하는 고령 농민들의 경우 농지 가치가 연금액 산정에 영향을 미친다. 전수조사 이후 대규모 처분명령이나 매물이 쏟아질 경우 농지 가격이 하락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투기 근절
현실 괴리
청년농 역시 마냥 반기지만은 않는 분위기다. 농지 가격 안정 자체는 긍정적이지만 조사와 단속 과정에서 임대차 시장이 위축될 가능성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현재 청년농 상당수는 자기 땅이 아닌 임차농지에서 농사를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지 임대가 위축되면 오히려 신규 농업인의 진입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 역시 투기 근절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현실적인 대안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국회입법조사처와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등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규제와 단속만으로는 농촌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고령농이 스스로 농지를 시장에 내놓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제도와 청년농에게 안정적으로 농지가 공급될 수 있는 장치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농지 투기 문제까지 가볍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농촌의 현실이 바뀐 것과 별개로 농지가 시세차익을 노린 투자 수단으로 활용되는 문제 역시 꾸준히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농지는 원래 농업 생산을 위한 토지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농업 수익보다 개발 가능성이나 시세차익 기대가 가격을 결정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수도권이나 신도시 예정지, 산업단지 조성 지역 주변에서는 농지가 사실상 투자 상품처럼 거래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1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신도시 예정지 농지 투기 사건이다. 당시 일부 직원들은 직접 농사를 지을 것처럼 서류를 제출해 농지를 취득한 뒤 개발 이익을 노렸다는 의혹을 받았다.
농민단체들 역시 현재 농지 구조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은 최근 성명을 통해 “통계상 임차농 비율은 이미 60%를 넘어섰고 현장 농민들이 체감하는 수준은 70%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농사를 짓는 사람과 농지 소유주가 분리된 구조가 한국 농업의 고질적인 문제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반면 일각에서는 이 같은 변화가 단순히 투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 상속 증가 등 구조적인 변화 속에서 경자유전 원칙만으로 현재 농촌 현실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사상 처음 농지 전수조사
상속 농지 늘고 농민 감소
실제로 일부 농촌 지역에서는 농지를 빌려줄 사람은 있어도 경작할 사람을 찾지 못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이 때문에 전수조사를 바라보는 시선 역시 엇갈린다. 투기 목적 농지는 정리해야 한다는 데는 대체로 공감하지만, 농촌 현실까지 고려하지 않은 일률적인 규제는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정부는 이번 전수조사가 단순한 현황 파악에 그치지는 않게 하겠다는 입장이다. 농지 소유와 이용 실태를 확인하는 동시에 경자유전 원칙을 훼손하는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보다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특히 정부가 주목하는 부분은 무단 휴경과 불법 임대차다.
농지를 취득할 당시에는 직접 농사를 짓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방치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맡겨 경작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부는 위반 사실이 확인될 경우 처분명령과 이행강제금 부과 등 강도 높은 조치도 검토하고 있다.
정부는 전수조사 결과를 토대로 처분명령 절차를 강화하고 신고 포상금 확대, 농지보전부담금 현실화 등 후속 제도 개선도 함께 추진할 방침이다. 매각명령이 내려져도 실제 처분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 이어져 온 만큼 처분명령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도 검토 대상에 포함됐다.
전수조사에 대한 우려가 높아진 만큼 최근 농업계와 학계 일각에서는 ‘경자유전’ 대신 ‘경자용전(耕者用田)’이라는 개념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농지를 누가 소유하느냐보다 실제로 농업에 이용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농지를 반드시 농민이 소유해야 한다는 원칙보다 농지가 농업 생산에 활용되고 있는지를 중심으로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일본의 경우도 고령화와 농업 인구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농지 임대차를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손질해 왔다. 고령 농민이 농지를 임대하고 청년농이나 기업농이 장기간 경작할 수 있도록 하면서 농지 이용 효율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일률적 규제
우려 목소리
한 전문가는 “투기 목적 농지와 농촌 현실 속에서 발생한 비자경 농지를 동일한 기준으로 바라보기는 어렵다”며 “전수조사를 통해 불법 행위를 바로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고령농의 은퇴와 농지 승계, 청년농의 농지 확보 문제까지 함께 풀 수 있는 종합적인 농지 정책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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