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선거 제도 개혁 필요성 강조…선거인단 확대 실효성에는 '물음표'
(서울=연합뉴스) 이영호 기자 = "선거 제도부터 바꿔야 한국 축구가 산다."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 최악의 경기력을 조별리그 탈락의 고배를 마신 한국 축구가 근본적인 혁신을 위해서는 대한축구협회장 선거 제도부터 과감한 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0년 넘게 이어진 '정몽규 회장 체제'에서 축구협회는 변화와 혁신의 동력을 잃었고, 현행 선거 구조로는 새로운 리더십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A조에서 1승 2패에 그치며 조 3위로 밀렸다.
12개 조 3위 팀 가운데서도 10위에 머물며 상위 8개 팀에 주어지는 32강 진출권을 따내지 못하고 대회를 마감했다.
체코와 1차전 역전승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멕시코전 0-1 패배, 남아프리카공화국전 0-1 패배를 당하며 경기력은 갈수록 떨어졌다.
특히 최종전에서는 선수들의 투지와 전술 완성도 모두 실망스럽다는 평가 속에 팬들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여기에 홍명보 감독 선임 과정을 둘러싼 논란과 대회 개막 직전 정몽규 회장의 사퇴까지 겹치면서 한국 축구는 성적과 행정 모두에서 최악의 평가를 받게 됐다.
전문가들은 이제 대표팀 감독 교체를 넘어 축구협회의 지배구조 자체를 바꾸는 것이 개혁의 출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신문선 명지대 초빙교수는 "가장 시급한 것은 현대가(家)가 오랜 기간 축구협회를 이끌면서 형성된 카르텔 구조를 깨는 것"이라며 "오염된 축구인들의 영향력을 줄일 수 있도록 선거 제도부터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해 치러진 제55대 축구협회장 선거를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다.
당시 선거는 192명의 선거인단 가운데 183명이 투표했고, 유효표 182표 중 156표를 얻은 정몽규 회장이 압도적 지지로 당선됐다.
신 교수는 "정 회장이 물러난다고 해도 현재와 같은 구조라면 또다시 기존 세력이 지지하는 인물이 회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며 "선거인단 규모를 대폭 확대해 특정 인맥이나 기득권 세력이 선거를 좌우하기 어려운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문성 축구 해설위원 역시 "현재처럼 190명 안팎의 선거인단으로는 회장 후보군 자체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며 "선거인단의 판을 넓혀 다양한 인재들이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거들었다.
2013년 제52대 축구협회장에 취임한 이래 13년간 한국 축구를 이끌어온 정몽규 회장은 오는 7월 19일(현지시간) 폐막하는 북중미 월드컵 이후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하면서 축구협회는 정 회장의 사퇴 직후 정관에 따라 약 60일 안에 차기 회장을 선출하는 선거를 치러야 한다.
하지만 현행 제도가 유지되면 현재와 같은 190여 명 규모의 선거인단이 차기 회장을 결정하게 된다.
축구계 안팎에서는 이 같은 구조에서는 기존 기득권 축구인들의 영향력이 여전히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어 한국 축구의 근본적인 개혁이 또다시 무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다만 선거인단 확대 역시 해결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선거인단을 얼마나 늘릴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물론, 선거 방식도 현실적인 고민거리다.
선거인단이 대폭 늘어나면 지금처럼 한 장소에 모여 직접 투표하는 방식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국제축구연맹(FIFA)과 아시아축구연맹(AFC)은 협회장 선거에서 '비밀선거'와 '직접선거' 원칙을 중요하게 보고 있으며, 이 원칙이 훼손될 수 있다는 이유로 온라인 투표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정작 개혁의 출발점으로 꼽히는 회장 선거제도를 바꾸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대한축구협회가 대한체육회 산하 회원단체인 만큼 선거제도 역시 대한체육회 정관을 따라야 해서다.
결국 한국 축구가 협회장 선거인단을 확대하려면 공정성과 현실성을 모두 만족시키는 새로운 선거 운영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과제를 함께 풀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축구계에서는 이번 월드컵 실패를 계기로 단순히 대표팀 감독이나 기술위원회를 바꾸는 수준을 넘어 축구협회 운영 시스템과 선거 제도까지 포함한 구조 개혁이 이뤄져야만 한국 축구가 다시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다는 공감대가 커지고 있다.
축구계 관계자는 "공정성과 대표성, 현실성을 모두 만족하는 새로운 선거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라며 "다만 현행 제도와 규정을 바꿔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실효성에는 의문이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horn9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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