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과달라하라(멕시코)] 김희준 기자= ‘승리는 반복되지 않는다. 무궁한 변화에 모습을 바꾸어 대응하라(戰勝不復 應形無窮).’ 『손자병법』
체코전 승리는 전술의 승리인 동시에 전략의 승리였다. 홍명보 감독은 해발 1,571m에 위치한 멕시코 과달라하라에서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첫 2경기를 치른다는 게 확정된 뒤로 고지대 적응에 모든 힘을 쏟았다. 사전 캠프를 해발 1,460m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 잡고, 선발진과 함께 5월 18일에 이동해 훈련을 시작했다. 월드컵 조별리그 첫 경기 24일 전이었다.
과달라하라 정도 되는 해발고도에 적응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은 통상 17일 내외다. 후발대가 대부분 도착한 25일은 조별리그 첫 경기로부터 꼭 17일 떨어진 시점이었다. 대부분 고지대 적응을 마친 한국에 체코는 쉬운 상대였다. 올해 3월에야 월드컵 본선행을 확정지어 베이스캠프도 원하는 대로 잡지 못한 체코는 고지대 적응 대신 고지대에 최대한 늦게 들어가는 전략을 택했으나 실패했다.
이날 가장 큰 화두는 후반 24분 손흥민 교체였다. 손흥민의 위상을 고려하면 이례적으로 이른 교체 타이밍이었다. 절묘하게도 손흥민 대신 들어간 오현규가 후반 35분 역전골을 넣으며 한국의 2-1 승리를 견인했다. 홍 감독의 용병술이 적중했다.
홍 감독은 일주일 뒤 멕시코전에서 손흥민을 후반 11분 만에 오현규와 교체했다. 0-1로 뒤지고 있어 득점이 필요한 상황에서 체코전과 같은 효과를 바랐을지 모른다. 그러나 오현규는 침묵했고, 한국은 조규성까지 투입했음에도 득점하지 못하고 멕시코에 패배했다.
남아공전은 더욱 형편없었다. 한국은 멕시코 몬테레이에서 열린 조별리그 3차전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에 0-1 충격패를 당하고 조 3위로 추락했다. 경기 내내 선수들의 움직임은 굼떠보였고, 남아공에 경기 내내 위협적인 역습을 허용한 끝에 후반 18분 타펠로 마세코에게 선제실점을 허용했다.
이날 홍 감독은 여러모로 이해하기 힘든 용병술을 보였다. 손흥민과 이재성 대신 오현규와 황희찬을 선발로 넣어 남아공 수비의 체력을 빼겠다는 전략을 들고 나왔는데, 이는 오히려 한국 선수들이 갈고닦은 조직력을 해치는 결과만 낳았다. 후반 시작과 함께 손흥민, 옌스 카스트로프, 김진규를 투입한 건 이해할 만했으나 0-1로 뒤진 후반 20분 김민재 대신 박진섭을, 후반 29분 오현규 대신 조규성을 넣은 건 이해하기 힘든 처사였다. 그들의 실력 때문이 아니라 득점이 필요한 상황에서 선수만 갈아끼우는 수동적인 교체였기 때문이다. 홍 감독은 마치 0-1 결과도 괜찮다는 듯 3-4-2-1 전형으로 일관했다.
여러모로 한국에 자신감을 안겼던 체코전은 결국 독이 됐다. 홍 감독은 조별리그 3경기에서 같은 전형과 전술로 일관했다. 수비 뒷공간을 공략한다는 전술은 멕시코와 남아공 모두 수비라인을 내림으로써 간단하게 파훼했다. 측면에서 크로스를 올려 페널티박스로 공을 공급하겠다는 생각은 남아공이 한국을 중앙으로 몰아세우면서 무위로 돌아갔다. 설령 크로스를 올려도 페널티박스에 사람이 적어 유의미한 공격이 나오지 않았다.
홍 감독은 여러 측면에서 남아공전 패배 이유를 찾고자 했다. 남아공전 하루 뒤 멕시코 과달라하라의 베이스캠프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홍 감독은 몬테레이의 무더위, 승리에 대한 압박감, 체력적 어려움 등을 짚었다. 심지어 멕시코전 이후 선수단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것도 넌지시 내비쳤다.
또한 홍 감독은 전술적으로 남아공에 패배했다는 건 인정했지만, 자신이 전술을 바꾸지 않은 게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는 32강에 오를 경우 전술 변화 가능성에 대해 “결과적으로 우리가 얼마나 잘할 수 있느냐, 안정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상대에 맞춰 몇 가지 포인트 정도는 다르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쭉 해왔던 걸 갑자기 바꾸는 것도 선수단에는 별로 좋지 않다”라고 답했다.
홍 감독은 상대에 맞춰 몇 가지 포인트도 다르게 한 게 없다. 한국은 조별리그 3경기 동안 전체 활동량이나 고강도 스프린트에서 큰 변화가 없었다. 사실 활동량이나 고강도 스프린트에서 한국을 크게 앞선 팀이 체코뿐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이를 유의미한 지표로 보기도 힘들다.
수비 압박 지표는 3경기에서 모두 상대에 밀렸다. FIFA 공식 홈페이지 기준 수비 압박 시도는 총 563회로 48개국 중 46위였고, 직접 압박 지표는 86회로 콜롬비아와 공동 꼴찌였다. 압박 시도 자체가 적은 건 그만큼 수비할 일이 없었다고 어떻게든 긍정적 해석이 가능하지만, 직접 압박에서도 성과가 없었다는 건 홍 감독 전술이 수비적인 측면에서 문제가 있었음을 시사한다.
결과적으로 남아공전 패배는 한국이 승리에 취해 안일한 경기 운영을 하다가 별다른 전술 변화도 하지 못하고 받아들인 패배로 정리할 수 있다. 환경 요인이나 선수단 문제는 부차적이며, 그게 경기 결과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될 수도 없다. 아무리 다른 곳으로 화살을 돌리려 한들 남아공전 패배가 근본적으로 경직된 전술에서 비롯된 건 변함이 없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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