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북중미 월드컵 32강 진출에 실패한 책임을 지고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이 전격 사퇴를 선언했지만, 분노한 여론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선수단을 응원했던 팬들은 물론 정치권까지 나서 비판을 쏟아내면서 홍명보 감독과 대한축구협회 모두 사면초가에 놓였다.
홍명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 뉴스1
홍 감독은 한국 시간으로 29일 새벽 멕시코 과달라하라 인근 사포판의 치바스 바예 베르데 훈련장에서 사퇴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감독이라는 자리는 결과 앞에서 어떤 설명도 앞설 수 없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 나는 설명보다 책임을 지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며 "국민 여러분께서 기대하셨던 결과를 끝내 보여드리지 못했다. 그 책임은 모두 감독인 내게 있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오늘 대표팀 감독이라는 자리를 내려놓는다. 하지만 대한민국 축구를 향한 마음까지 내려놓는 것은 아니다. 우리 대표팀이 다시 국민 여러분의 신뢰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팀으로 성장해 나가기를 진심으로 응원하겠다"고 덧붙이며 별도 질의응답 없이 회견장을 떠났다.
홍 감독의 임기는 원래 2027년 1월 아시안컵까지였다. 하지만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 등 역대급 스쿼드를 이끌고도 조별리그 A조 3위로 32강 진출에 실패하면서 비판 여론에 휩싸였다. 체코를 2대1로 꺾으며 기대를 모았지만, 개최국 멕시코에 0대1로 무릎을 꿇었고 남아공과의 마지막 경기마저 0대1로 내줬다. 비기기만 해도 자력으로 토너먼트행이 가능했던 상황이었던 만큼 패배의 충격은 더 컸다. 마지막 남아공전에서 손흥민과 이재성을 선발에서 제외하고 후반 막판까지 스리백을 고집한 홍명보 감독의 전술이 패인으로 꼽혔다.
대한민국 축구국가대표팀 김민재, 오현규, 황희찬, 백승호, 설영우, 황인범이 월드컵 탈락 이후 멕시코 할리스코 과달라하라에 위치한 대표팀 숙소를 나서고 있는 모습 / 뉴스1
48개국으로 늘어난 본선 무대에서 각 조 3위를 차지한 12개 팀 중 상위 8팀에게 32강행 티켓이 주어졌지만, 한국은 스웨덴, 가나, 에콰도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파라과이 등에 밀려 결국 최종 순위 34위로 탈락했다. 토너먼트 허들이 낮아진 대회에서조차 조별리그를 넘지 못한 건 2018년 러시아 대회 이후 8년 만의 일이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1무2패로 조별리그 탈락의 멍에를 썼던 홍 감독은 이번 사퇴로 한국 축구사에서 월드컵 무대를 두 번 밟고 두 번 다 실패한 유일한 감독으로 남게 됐다.
축구대표팀 서포터즈 붉은악마는 29일 입장문을 내고 홍 감독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붉은악마는 "만약 과거 실패를 세탁하기 위해 우리의 진심을 도구로 삼았다면, 그것은 자신을 내려놓은 것이 아니라 자신을 살리기 위해 대한민국 축구를 사지로 몰아넣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마지막 순간까지 사죄와 용서를 구하기는커녕, 말도 안 되는 궤변으로 끝까지 대한민국 축구 팬을 유린한 그는 더 이상 대한민국 축구인으로 남아서는 안 된다"며 "뼈저리게 반성하고, 대한민국 국민 모두 앞에 무릎 꿇고 축구계를 영원히 떠나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끝으로 "오늘 이후부터 모든 수단을 동원해 대한민국 축구를 좀먹는 적폐들이 사라질 때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붉은악마 입장문 / 붉은악마 공식 SNS
정치권도 일제히 목소리를 냈다. 국민의힘 진종오 의원은 29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한축구협회 수뇌부 전원의 사퇴를 촉구했다. 진 의원은 "정몽규 회장을 비롯한 협회 기득권 카르텔이 오만한 태도로 일관한 결과가 이번 참사"라며 "단순한 사퇴로 덮을 문제가 아니라 전면적인 해체와 재건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홍명보 감독 선임 과정에 대한 진상 규명과 협회 특별감사 실시도 함께 요구하며 "감독 사퇴를 핑계로 진상 규명을 회피하고 면죄부를 챙기려 해서는 안 된다"고 못 박았다.
더불어민주당 한병도 원내대표 역시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많은 축구 전문가들이 이번 졸전을 예견된 사태로 진단한다. 감독의 전술 부재와 독선적인 밀실 행정, 내편 밀어주기식 카르텔이 문제"라며 "협회의 독선과 무능이 반복되지 않도록 국회 차원의 대책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김승수 원내수석부대표도 "감독 선임 과정의 절차적 문제와 불투명성을 지속적으로 지적해왔지만 협회는 국민 우려를 외면했다"며 "향후 국회에서 협회 운영 전반을 철저히 점검하고, 신뢰받는 체육 행정을 위해 끝까지 따져 묻겠다"고 말했다.
월드컵 탈락 직후 비판 여론을 의식한듯 홍 감독은 사퇴 기자회견에서 "축구대표팀 감독이라는 자리는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하지만 감독을 맡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다른 이유는 생각하지 않았다"며 "나에게 맡겨진 책임을 끝까지 다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유일한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또 "지난 2년 동안 '이 선택이 한국 축구를 위한 선택인가'라는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모든 판단이 옳았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기준은 언제나 한국 축구였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끝까지 함께해 준 선수들, 코칭스태프, 지원스태프 그리고 축구대표팀을 위해 묵묵히 헌신해 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월드컵 성적 부진에 책임지고 사퇴한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홍명보 감독 / 뉴스1
이번 대회를 끝으로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도 물러날 예정인 만큼, 차기 사령탑 선임 작업은 협회 수뇌부 공백 속에서 진행될 가능성이 커졌다. 팬과 정치권의 거센 비판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협회가 어떤 후속 조치를 내놓을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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