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신문 = 배두열 편집국장] 크래프톤 주최 배틀그라운드 국가대항전인 'PNC 2026'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이 준우승을 차지했다. 브라질과의 차이는 단 5점. 팬들이 기대했고 선수단이 목표했던 우승에는 닿지 못했지만, 이번 대회가 남긴 장면을 단순히 ‘아쉬운 준우승’으로만 정리하기는 어렵다. 마지막까지 추격을 멈추지 않았고, 흔들릴 수 있는 순간에도 경기 전체를 보며, 홈 팬들 앞에서 끝내 우승 경쟁의 긴장감을 유지했다. 이 과정에는 선수들의 기량만큼이나 대표팀을 이끈 ‘플리케’ 김성민 감독의 리더십이 있었다.
최근 한국 스포츠는 북중미 월드컵을 거치며 대표팀 리더십을 다시 묻게 됐다. 전술의 실패냐, 선수 기용의 문제냐, 시스템의 부재냐를 두고 여러 해석이 오갔지만, 결국 질문은 하나로 모였다. 국가대표팀을 이끄는 리더십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하지만 이 질문은 때로 리더십을 과도하게 단순화한다. 한국 축구는 시스템의 개선과 발전을 외면한 채, 선수들의 패싱력과 판단 속도, 압박 대응 능력 같은 구조적 한계를 한 명의 리더가 뒤집어주기를 기대하는 듯하다. ‘강한 감독’ 한 명이 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말하는 순간, 리더십은 팀을 움직이는 방식이 아니라 기적을 요구받는 자리로 밀려난다.
즉 리더십은 시스템의 빈자리를 대신하는 마법이 아니다. 이 지점에서 김성민 감독이 PNC 2026에서 보여준 리더십은 분명했다. 그는 시스템을 대신하는 구원자는 아니었지만, 선수들이 스스로 더 나은 판단을 내리도록 팀의 기준을 세운 조율자에 가까웠다.
배틀그라운드는 감독이 모든 상황의 정답을 미리 정해줄 수 없는 종목이다. 자기장 하나, 차량 한 대, 교전 로그 하나에 경기 전체 구도가 달라진다. 한 번의 이동 판단이 생존과 탈락을 가르고, 한 번의 교전 선택이 우승 경쟁의 흐름을 바꾼다. 그래서 이 종목에서 리더십은 선수 위에 군림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어렵다. 감독이 모든 판단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선수들이 같은 그림을 보고, 같은 기준으로 움직이며,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팀의 질서를 잃지 않도록 만드는 일이다.
그 방식은 준비 과정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김 감독은 선수들에게 일방적으로 답을 주입하는 지도자가 아니다. 선수들과 토론하고, 함께 고민하며, 전략과 전술을 만들어간다. 이는 단순한 소통형 리더십이 아니다. 선수들이 경기 안에서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기준을 공유하는 과정이다. 감독이 모든 장면을 통제하는 대신 선수들이 같은 방향으로 생각하게 만들고, 불확실성이 큰 게임 안에서도 팀의 질서를 유지하도록 만드는 작업이다.
무엇보다 김성민 감독은 행동으로 먼저 리더십을 설명하는 사람이었다. 일전에 PGS 현장에서 그가 지휘봉을 잡고 있는 DN SOOPers(디엔 수퍼스) 선수단의 도시락을 직접 챙겨가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굳이 감독님이 직접 챙기십니까”라는 물음에 그의 답은 짧았다. “선수들이 먹는 것인 만큼 제가 챙겨야죠.” 거창한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한마디에는 감독이 선수단을 대하는 태도가 담겨 있었다. 경기장 안의 전략만 감독의 일이 아니었다. 선수들이 무엇을 먹고, 어떤 컨디션으로 무대에 오르며,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버티는지까지 자신의 책임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
그 도시락 일화가 단순한 미담으로만 보이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 감독은 선수들의 경기를 대신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선수들이 경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전략과 전술은 함께 만들고, 생활과 컨디션은 세밀하게 챙긴다. 지시는 줄이고 기준은 세우며, 권위는 앞세우지 않되 책임은 뒤로 미루지 않는다. 이것이 PNC 2026에서 드러난 김성민식 리더십의 핵심이다.
PNC 2026의 준우승도 그런 리더십의 연장선에서 봐야 한다. 한국은 우승을 향한 압박이 커지는 상황에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브라질을 쫓아가야 하는 국면이었지만, 브라질만 바라보다가 자신의 경기를 잃는 흐름으로 빠지지 않았다. 추격이 필요할 때는 과감하게 움직였고, 버텨야 할 때는 생존의 가치를 살렸다. 팬들은 순위표의 숫자만 본 것이 아니다. 마지막까지 싸우는 팀의 표정, 승부를 포기하지 않는 선수들의 움직임, 그 뒤에서 흔들리지 않게 팀을 붙잡은 감독의 역할을 함께 봤다.
리더는 때로 선수단보다 앞에 서야 하지만, 더 자주 선수단이 스스로 앞으로 나아가도록 뒤에서 구조를 잡아줘야 한다. 한국 축구가 여전히 ‘누가 와서 바꿔줄 것인가’를 묻고 있다면, 김성민 감독의 PNC 2026은 다른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선수들이 더 좋은 판단을 반복하게 만들 것인가. 어떻게 한 명의 지시가 아니라 팀 전체의 기준으로 경기를 풀어가게 할 것인가. 어떻게 결과의 부담을 감독이 먼저 짊어지고, 선수들은 경기 안에서 더 과감하게 움직이게 할 것인가.
대회 직후 필자가 보낸 메시지에도 김성민 감독이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준우승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리더십은 우승했을 때보다 우승하지 못했을 때 더 선명해진다. 우승은 많은 것을 덮어주지만, 준우승은 많은 것을 드러낸다. 결과를 받아들이는 태도, 선수들을 향한 시선, 팬들에게 전하는 마음, 다음을 준비하는 방식이 모두 보인다. 김성민 감독의 PNC 2026은 우승 트로피를 들지 못했지만, 대표팀 리더십이 어디에서 시작돼야 하는지를 보여준 대회였다.
준우승을 우승처럼 포장할 필요는 없다. 선수단도 팬들도, 김 감독도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러나 스포츠가 결과만으로 끝난다면 우리는 패배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이번 PNC 2026은 한국이 우승을 놓친 대회였지만, 동시에 한국 e스포츠와 한국 스포츠계가 리더십을 어떻게 다시 바라봐야 하는지 보여준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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