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정부가 지역·필수의료 강화를 위해 연 3조6000억원 규모의 건강보험 재정을 추가 투입하기로 한 가운데, 의료계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필수의료 보상을 늘리겠다는 방향에는 공감대가 있지만, 재원 상당 부분을 검체검사와 CT·MRI 수가 조정으로 마련하는 방식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동네 병의원과 검사 수탁기관 모두 “부담을 현장에 떠넘기는 구조”라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는 상황이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지난 25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열고 ‘건강보험 수가 구조 혁신방안’을 확정했다. 정부는 지역·필수의료에 건강보험 재정 3조6000억원을 투입하고, 이 가운데 2조6000억원은 검체검사와 영상검사 수가 조정으로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수가는 건강보험 재정에서 의료기관에 지급하는 의료서비스 대가다.
정부안은 비수도권과 수도권 취약지역에 지역우대수가를 적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약 2700개 수술·처치 수가가 10% 가산되고, 소아중환자실 처치에는 50% 가산이 붙는다. 중증·응급 최종치료에는 9000억원, 지역우대수가에는 4000억원이 배정됐다. 인구감소지역 종합병원·병원·의원에는 진찰료와 입원료를 각각 5% 더해주는 방안도 포함됐다.
동네 의원 진찰료도 일부 오를 예정이다. 의원급 초진료는 1만8840원에서 1만9980원으로 6% 인상되고, 재진료는 4% 오른다. 병원급 이상 초·재진 진찰료도 2% 상향된다. 정부는 검사 중심 보상 구조를 진찰과 상담 중심으로 바꾸겠다는 입장이다. 입원료 역시 일반병실은 7%, 중환자실은 10% 높이고, 심층진찰·심층상담 체계도 확대한다.
쟁점은 재원 조달 방식이다. 정부는 검체검사와 CT·MRI의 비용 대비 수익이 과도하다고 보고 수가를 단계적으로 낮추기로 했다. 검체검사 분야에서 연간 1조9000억원, CT·MRI 분야에서 7000억원을 절감한다는 계산이다. 검체검사와 영상검사로 줄인 2조6000억원에 건강보험 재정 1조원을 더해 필수의료 투자 재원을 마련하는 구조다.
검체검사 위수탁 제도는 1999년 이후 27년 만에 전면 개편된다. 지금까지는 검사를 의뢰한 병의원이 검사료의 110%를 청구하고, 이 가운데 10%를 위탁검사관리료로 남긴 뒤 수탁기관과 가격을 협의하는 방식이었다. 앞으로는 기존 10% 관리료가 폐지되고, 위탁기관과 수탁기관이 각각 건강보험공단에 청구한다. 보상은 위탁 35%, 수탁 65% 구조로 나뉜다.
정부는 일부 검사기관의 과도한 할인 경쟁과 리베이트 관행을 바로잡고, 검사 품질을 높이려는 조치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일부 시장에서는 수탁기관이 병의원과 계약하기 위해 검사료의 50~60% 수준으로 할인하거나 일부를 되돌려주는 관행이 문제로 지적돼 왔다. 정부는 이를 질 중심 보상체계로 바꾸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의료계는 보상 방식이 아직 추상적이라고 본다. 개편안은 기본수가와 조건부 보상으로 구성된다. 위탁기관에는 검사료의 25%, 수탁기관에는 45%가 기본 보상으로 고정되고, 조건부 보상은 위탁 10%, 수탁 20% 이내에서 적용된다. 하지만 어떤 기준을 충족해야 실제 보상받을 수 있는지, 기관별 지급 규모가 어느 수준이 될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개원가는 수익 감소를 우려하고 있다. 검사를 직접 수행하지 않더라도 검체 채취, 보관, 환자 설명, 결과 확인, 이상 소견 안내 등은 의뢰 의료기관이 맡아야 한다. 기존 관리료가 사라지고 배분율이 고정되면 이 같은 업무 부담에 대한 보상이 부족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지역·필수의료 보상 강화를 명분으로 검체검사와 영상검사를 과보상 영역으로 단정하고 수가 조정을 강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수탁기관도 긴장하는 분위기다. 고난도 검사는 전문의와 숙련 인력, 장비, 정도관리 비용이 많이 들어 적정 보상이 이뤄지지 않으면 먼저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조건부 보상이 형식적으로 운영되거나 평균 지급률이 낮아질 경우 품질관리 투자 여력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개편 취지가 단순 지출 절감이 아니라 검사질과 환자 안전 강화라면, 실제 품질 개선에 기여하는 기관에 보상이 집중돼야 한다는 목소리다.
도수치료 관리급여 도입도 의료계 반발의 또 다른 축이다. 관리급여는 기존 비급여 항목을 건강보험 관리 체계 안에 넣어 가격과 이용 기준을 정하는 제도다. 첫 대상은 도수치료다. 이르면 7월부터 도수치료 가격은 1회 4만3850원으로 정해지고, 이용 횟수는 주 2회, 연 15회로 제한된다. 의학적 판단이 있으면 최대 24회까지 가능하지만, 기본 물리치료나 단순 재활치료를 먼저 시행해야 한다.
정부는 비급여 과잉진료를 줄이고 환자 부담을 낮추기 위한 장치라고 설명한다. 반면 의협과 정형외과·신경외과 등 관련 직역은 치료 선택권과 진료 자율성이 침해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환자 상태에 따라 필요한 치료 시간과 횟수가 다른데, 정부가 가격과 기준을 일률적으로 정하면 의료진 판단이 좁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리치료실 운영 축소와 물리치료사 고용 감소 가능성도 쟁점으로 떠올랐다.
대한의사협회는 28일 서울 대한문 앞에서 관리급여 반대 궐기대회를 열고 장외 투쟁에 나섰다. 의협은 제도가 강행될 경우 법률 투쟁, 행정소송, 공정거래위원회 제소 등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의료계는 이번 사안을 단순히 도수치료 가격 조정 문제가 아니라, 정부가 비급여와 검사 영역을 어떤 방식으로 통제할 것인지 보여주는 선례로 보고 있다.
이번 논란의 핵심은 필수의료 투자를 늘리겠다는 방향보다 부족한 건강보험 재정을 어떤 방식으로 조달하느냐다. 과보상 조정과 비급여 관리는 필요할 수 있지만, 현장이 납득할 세부 기준 없이 속도만 앞설 경우 검사 품질 저하와 개원가 혼란, 환자 접근성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필수의료를 살리려는 재정 투입은 필요하지만, 재원을 옮기는 과정에서 동네 병의원과 진단검사 인프라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며 “보상 기준을 구체화하고 현장 충격을 줄이는 설계가 함께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검사 수가 조정과 비급여 관리는 단순 지출 절감이 아니라 환자 안전과 의료 접근성에 영향을 주는 문제”라며 “정부가 현장의 우려를 제도 보완 과정에 얼마나 반영하느냐가 이번 개편의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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