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뱃갑처럼’ 술병 경고 그림 실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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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뱃갑처럼’ 술병 경고 그림 실효성

일요시사 2026-06-29 14:57:3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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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지나친 음주는 뇌졸중, 기억력 손상이나 치매 등을 유발합니다.” 오는 11월부터 국내에서 판매되는 모든 술병에서 소비자들이 가장 먼저 보게 될 문구다. 정부가 음주 운전 예방과 음주 폐해 감소를 위해 술병 전면에 경고 문구와 경고 그림을 의무화하면서 주류업계가 반발하고 있다. 업계는 소비 위축과 브랜드 가치 훼손 등을 우려하지만, 진짜 쟁점은 이 같은 조치가 실제 음주 폐해 예방 효과로 이어질 수 있느냐다.

보건복지부와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은 국민건강증진법 시행규칙 및 관련 고시를 개정해 오는 11월9일부터 새로운 주류 경고 표시 제도를 시행한다. 전통주부터 소주·맥주, 위스키와 와인 등 수입 주류까지 예외 없이 적용된다.

의무화 적용

기존의 건강 위해성과 임신 중 음주 위험 경고에 더해 음주 운전 위험성을 알리는 문구 또는 그림을 추가하고, 소비자가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주상표(전면 라벨) 하단에 표시하도록 했다. 경고 문구를 제대로 표기하지 않거나 표시 기준을 지키지 않을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정부는 이번 제도 도입의 목적을 명확히 하고 있다. 음주 운전은 타인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중대한 사회문제인 만큼 술을 구매하는 순간부터 위험성을 인식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실제 음주 운전으로 인한 사회적 피해는 여전히 심각하다. 지난해 음주 운전 교통사고는 1만351건 발생해 121명이 숨지고 1만6304명이 다쳤다. 사고 건수는 감소 추세지만 하루 평균 28건가량의 음주 운전 사고가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재범률도 높다. 삼성화재 교통안전문화연구소가 경찰청과 삼성화재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5년부터 2024년까지 음주 운전 재범률은 평균 43.9%에 달했다. 음주 운전자 10명 가운데 4명 이상이 다시 적발됐다는 의미다. 정부는 이 같은 현실을 고려할 때 소비자에게 보다 직관적인 경고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글씨보다 그림이 전달력이 높다는 점을 고려해 경고 그림을 새롭게 도입했고, 경고 문구 글자 크기도 기존보다 확대했다. 단순히 술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술이 개인의 건강과 사회 안전에 미칠 수 있는 위험까지 함께 알려야 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정책 발표 이후 업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전통주 업계는 지역성과 문화적 가치를 담아온 병 디자인이 훼손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고, 위스키와 와인 등 수입 주류 업계 역시 브랜드 정체성과 상품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고 반발한다.

라벨을 새로 제작해야 하는 비용 부담은 물론 한국 시장만을 위한 별도 패키지 제작이 불가피해질 것이라는 우려다.

하지만 이 제도의 핵심은 따로 있다. 정부가 기대하는 것처럼 술병에 경고문구와 그림을 붙이는 것만으로 실제 음주 운전과 과음을 줄일 수 있느냐다.

정부 역시 이 같은 정책을 추진하면서 이미 다른 기호식품에서 시행 중인 규제 방식을 참고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담뱃갑 경고 그림 제도다.

당시에도 정부는 강한 시각적 경고가 흡연율을 낮추고 국민 건강을 증진시킬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제도 시행 1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도 담배 경고 그림의 효과를 두고는 여전히 다양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정부가 술병 경고 그림 도입의 근거로 내세우는 것은 시각적 경고의 전달력이다. 글보다 그림이 소비자의 주의를 더 쉽게 끌고 위험성을 직관적으로 인식시킬 수 있다는 논리다. 이 같은 방식은 새로운 정책이 아니다.

전통주도 위스키도 ‘비상’
경고 표시에 가려지는 상표

국내에서는 2016년 12월부터 담뱃갑 전면에 폐암과 구강암, 후두암 등 흡연의 위험성을 담은 경고 그림이 의무화돼 시행되고 있다. 당시 정부 역시 흡연으로 인한 질병과 사망 위험을 소비자에게 보다 강하게 알리고 금연을 유도하기 위한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도입 초기에는 혐오감을 유발한다는 논란도 있었지만,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담배규제기본협약(FCTC)을 통해 담뱃갑 경고 그림을 대표적인 금연 정책 가운데 하나로 권고하면서 세계 각국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국내 조사에서도 경고 그림은 일정 부분 효과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와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시행한 조사에서는 경고 그림을 본 흡연자 상당수가 흡연의 위험성을 다시 인식했고, 금연을 시도하거나 흡연량을 줄여야겠다고 생각했다는 응답이 적지 않았다.

특히 청소년의 경우 경고 그림을 인지한 비율이 70% 안팎에 달했고, 흡연 예방에 도움이 됐다고 응답한 비율도 높게 나타났다.

하지만 여기서부터는 엇갈린다. 경고 그림이 흡연의 위해성을 알리는 데에는 일정 효과를 거뒀지만, 실제 흡연율 감소까지 이끌었는지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담배 경고 그림이 도입된 시기와 맞물려 담뱃값 인상, 금연 구역 확대, 금연 클리닉 운영, 광고 규제 강화 등 다양한 정책이 동시에 시행됐다는 점을 지적한다.

결국 흡연율이 감소했다 하더라도 이를 경고 그림만의 효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의미다. 실제 국내외 연구에서도 비슷한 분석이 이어진다.

경고 그림은 소비자의 위험 인식을 높이고 금연 의지를 자극하는 데는 비교적 효과적이지만, 장기적인 흡연율 감소나 담배 판매량 감소까지 설명하기에는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식 개선’과 ‘행동 변화’ 사이에는 여전히 적지 않은 간극이 존재한다는 평가다.

해외 연구 결과도 비슷하다. 해외 실험에서는 인식 개선이 곧바로 행동 변화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결과도 나왔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샌디에이고(UC San Diego) 연구진이 미국 성인 흡연자를 대상으로 3개월 동안 진행한 무작위 임상시험에서는 담뱃갑 경고 그림이 담배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낮추고 금연 관련 생각을 늘리는 효과는 있었지만, 실제 금연이나 담배 소비량에는 영향을 주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경고 그림이 흡연자의 생각을 바꾸는 데는 일정 효과가 있었지만, 단기간 내 실제 흡연 행동 변화로 이어지지는 않았다고 분석했다.

해외 연구 “행동 변화 근거 부족”
“위험 인식 높였지만 효과는 글쎄”

반대로 금연 시도 증가 효과를 확인한 연구에서도 실제 금연 성공률은 높지 않았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UNC) 연구진이 성인 흡연자 2149명을 대상으로 4주간 진행한 무작위 임상시험에서는 경고 그림을 본 집단의 금연 시도율이 40%로 문자 경고 집단의 34%보다 높았다.

그러나 1주 이상 금연에 성공한 비율은 경고 그림 집단 5.7%, 문자 경고 집단 3.8%에 그쳤다. 금연을 시도하게 만드는 효과는 있었지만, 실제 금연 성공까지 이끄는 효과는 제한적이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술은 어떨까? 음주 역시 건강 위해성과 사회적 폐해를 줄이기 위해 경고 문구와 그림을 강화하고 있지만, 해외에서는 이미 이에 대한 다양한 실험과 연구가 진행돼 왔다.

세계 각국에서도 음주로 인한 건강 피해와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 경고 문구와 경고 그림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지만, 실제 정책 효과를 두고는 여전히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해외에서 먼저 시행된 주류 경고 라벨 제도도 실제 음주 행동을 바꾸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는 평가가 많다. 미국은 1989년부터 술병에 임신 중 음주 위험과 음주 운전 위험 등을 알리는 정부 경고 문구를 의무화했다.

그러나 도입 이후 평가에서 소비자의 경고 문구 인지율은 1991년 27%까지 오르는 데 그쳤고, 연구진은 경고 라벨 노출 효과를 “매우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음주 운전 예방 효과는 뚜렷하게 확인되지 않았다. 미국 청소년을 대상으로 1989~1994년 경고 라벨 효과를 추적한 연구에서는 라벨 인지도와 메시지 회상률은 증가했지만, 음주 행동이나 음주 운전과 관련해 경고라벨 때문이라고 볼 만한 긍정적 변화는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

임신부 4397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고위험 음주자 집단의 음주 행동 변화는 확인되지 않았다.

최근 연구도 비슷한 결론을 내놓고 있다. 2024년 해외 체계적 문헌 고찰을 정리한 자료에 따르면 주류 경고 라벨은 알코올 음료 선택을 줄이는 데는 일부 근거가 있었지만, 일반 음주량과 음주 빈도, 음주 운전 자체에 대해서는 ‘무효 효과’가 시사된 것으로 나타났다.

즉 술병 경고문구가 위험 인식을 높일 수는 있어도, 실제 음주운전 감소로 이어진다는 근거는 아직 부족하다는 의미다.

부족한 근거

이 같은 해외 연구 결과를 근거로 업계에서는 정책의 실효성을 먼저 검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주류업계 관계자 A씨는 “음주 운전 예방이라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술병 경고 문구가 실제 음주 운전을 줄였다는 근거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며 “주류 소비도 줄어들고 효과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업계 부담만 커질 수 있다는 점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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