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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성기노 기자】6·3 지방선거 이후 진보진영의 친명·친문 갈등이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방선거 결과를 둘러싼 책임론을 언급한 이후 양측의 충돌은 더욱 격화됐고 친문 진영을 대변하는 유시민 작가가 대통령의 중도·보수 확장 노선을 정면 비판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고 있습니다. 당 안팎에서는 “이러다 모두 공멸한다”는 우려가 나오지만 양측 모두 물러설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번 싸움을 단순한 친문 대 친명의 계파 충돌로만 치부하기에는 논쟁의 본질이 가볍게 보이지 않습니다. 유 작가는 이재명 정부의 통합 정치가 어떤 철학과 원칙 위에서 추진되고 있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고 친명계는 국정 운영의 안정성과 외연 확장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며 맞서고 있습니다.
유 작가는 이 대통령의 중도·보수 확장을 ‘지지층과 충분한 합의 없이 추진된 재건축’으로 규정했습니다. 민주당 지지층이 원했던 것은 기존 민주개혁 세력을 중심으로 외연을 넓히는 ‘증축’이었는데 대통령은 기존 구조 자체를 바꾸는 ‘재건축’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특히 보수 성향 인사들의 잇따른 등용과 ‘문조털래유’로 대변되는 문재인 정권에 대한 ‘절멸’ 움직임 등을 하나의 흐름으로 해석하며 기존 지지층의 동의 없는 노선 전환은 갈등을 부를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논쟁에서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지점이 있습니다. 현재 친명계와 친문계의 싸움 양상은 상대가 ‘발화’를 하면 그에 대한 말꼬리잡기 식의 조롱과 비난만이 난무합니다. 상대의 의견을 경청하며 그 의도나 진의를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노력 대신 일단 ‘친명이냐 친문이냐’로 이분법 편가르기를 한 뒤 적이다 싶으면 어떤 논리를 동원해서라도 부정하고 까기 바쁩니다.
이는 유시민 작가의 주장이 맞느냐 틀리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계파 간 감정싸움이 모든 의제를 집어삼키는 순간 민주당은 통합의 해법은 물론 건강한 정책 토론의 기회마저 잃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남는 건 ‘서로 죽여야 하는’ 악다구니 싸움판뿐입니다.
유 작가는 민주당의 정체성 ‘변질’과 어정쩡한 개혁 노선이 충분한 사회적, 당내 합의 없이 변화하고 있으며 핵심 지지층이 그 과정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검찰개혁 속도 조절 논란이나 문재인 정부에 대한 일부 강성 지지층의 비난 역시 같은 맥락에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반면 친명계는 이번 비판이 현실 정치의 조건을 외면한 주장이라고 맞섭니다. 집권 이후 외연 확장은 어느 민주정부나 추진했던 전략이며 김대중 정부 역시 보수 인사(초대 청와대 비서실장이 경북 울진 출신 김중권)들을 적극 등용하면서 국정 기반을 넓혔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지금은 정권 출범 초기로 안정적인 국정 운영과 국민통합이 우선인 시기인데 유 작가의 발언은 결과적으로 대통령 리더십을 흔들고 당내 계파 갈등만 증폭시키는 악영향을 낳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유 작가의 발언에 대해 “민주당의 정체성 회복과 선명한 개혁 노선을 위한 충정 어린 지적이라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그는 친명 강성 지지층을 겨냥해 “촉법소년 같다”, “용역처럼 행동한다”는 취지의 거친 표현을 사용하며 논란을 키웠습니다.
이런 식으로 상대를 폄훼하며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킬 수는 없습니다. 중도·보수 확장에 대한 문제 제기는 충분히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상대를 비하하는 표현까지 동원하면 논쟁은 감정 싸움으로 흐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 작가의 지적이 다분히 진영 간 갈라치기 성격이 있기는 하지만 이재명 정부 출범 1년이 지난 시점에서 이 대통령의 개혁과 국정운영에 대한 진보진영의 ‘중간평가’는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유 작가는 왜 수많은 국정 현안 가운데 왜 하필 이 대통령의 ‘중도·보수 확장’ 의제만을 콕 집어 문제를 삼을까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합니다.
첫 번째 해석은 정치적 계산입니다. 중도·보수 확장 의제는 이 대통령 리더십의 성패를 가를 핵심 변수이자 가장 취약한 지점이라는 시각이 있습니다. 진보 강성 지지층의 결집으로 정권을 창출했지만 집권 이후에는 중도층과 보수층 일부까지 포섭해야 안정적인 국정 운영이 가능합니다. 이 대통령에게 중도 외연 확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전략인 것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 전략이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동시에 봐야 합니다. 사실 외연 확장은 ‘집토끼 산토끼’ 논쟁이 정치권의 영원한 ‘미제’일 만큼 가시적 성과 내기가 만만치 않은 의제입니다. 이 대통령이 보수 인사를 잇달아 등용하고 외연 확장 메시지를 내놓고 있지만 정작 보수층의 의미 있는 지지 확대로 이어졌다는 평가는 아직 많지 않습니다. 야당은 야당대로 이 대통령의 통합 정치 진정성을 아예 무시하고 상대도 해주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 민주당 지지층 내부에서 당의 정체성 혼란과 개혁 피로감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유 작가는 바로 이 요인 때문에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빠지고 있다고 봅니다). 결국 외연은 충분히 넓어지지 않았는데 내부 결속만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딜레마가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 작가가 하필 이 지점을 정조준한 것은 한국 정치에서 외연 확장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알고 이 대통령의 그 정치적 취약성을 의도적으로 저격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유 작가가 이 대통령의 가장 민감한 정치적 약점을 타격했다는 것은 더 이상 양측 간의 화해나 접점을 찾을 수 없다는 일종의 결별 선언으로 보입니다.
또 다른 해석도 가능합니다. 지금까지의 보수 인사 등용에 대해 이 대통령이 국민과 민주당 지지층에게 충분히 설명했느냐는 점입니다. 이 대통령의 통합 정치 진정성은 충분히 공감하지만 그 ‘성과’는 과연 어땠느냐는 지적에 이 대통령도 즉답이 주저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지난 1년 간의 이 대통령 보수 인사 등용 과정을 보면 일정한 인선 기준이나 그에 대한 비전, 그리고 뚜렷한 국정 운영 동기가 제대로 보이지 않고 그때그때 정치적 필요에 따라 이뤄진 인선 아니냐는 의문도 나옵니다. 보수 통합 인사에 대해 과연 능력 중심 인사인지, 국민통합을 위한 상징적 인선인지, 실용주의 노선인지, 특정 분야 전문성을 고려한 발탁인지에 대한 일관된 기준과 철학이 아직 충분히 제시되지 않았거나, 국민들에게 그것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유시민의 ‘저격’은 그냥 이재명 대통령을 한 방 먹이려는 것이 아니라 진보진영 차원에서 그간의 통합과 개혁에 대해 한번쯤 복기를 해보고 숙의를 해봐야 할 문제로 치환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사실 보수 인사를 기용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 과정에서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정치적 설명이 부족했던 것은 아닌지 이재명 대통령도 되돌아봐야 할 시점인 것 같습니다. 이혜훈, 인요한 등 일부 보수 성향 인사의 등용이 통합 정치의 큰 틀에서 의미를 가질 수는 있지만 개인의 정체성이나 그간의 이력을 볼 때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대목도 있습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통합 인사가 어떤 국정 비전과 연결되는지, 민주당 정부의 개혁 방향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국민통합에 어떤 실질적 효과를 내는지에 대한 설명도 기회있을 때마다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매번 국무회의를 생중계하며 국민 소통을 강조하지만 정작 자신의 최대 지지기반 ‘당원’들에게 그런 ‘서비스’는 인색하지는 않았는지 정무적 판단이 필요해보이는 시점입니다.
이 대통령이 대권 주자 시절 적극 추진한 다양한 ‘기본사회’ 시리즈와 초과이윤 분배 등의 양극화 관련 의제 등이 앞으로 어떤 기준점에서 논의될지도 외연 확장과 연결되는 중요한 지점입니다. 이재명 정부가 어디까지 외연을 넓힐 수 있는지, 어떤 가치는 양보할 수 없는지, 통합과 개혁이 충돌할 때 무엇을 우선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실용’이라는 모호한 회색지대에 가려져 아직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또한 이 문제에 대해 진보 지지층과의 교감이나 공감대 형성 노력도 부족해보입니다.
결국 이번 논쟁의 해법은 유시민을 공격하거나 친명계를 배제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대통령 흔들기’와 ‘문재인 지우기’라는 이분법 프레임만 반복해서는 갈등의 출구를 찾기 어렵습니다. 서로를 향해 돼지와 부처를 들먹이고, 촉법소년과 용역이라는 표현을 주고받는 순간 통합과 개혁은 말싸움속에 묻히게 되고 결국 피해는 전 국민이 오롯이 뒤집어써야 합니다.
민주당은 스스로를 70년 역사의 정통 정당이라고 자랑합니다. 70년동안 어렵게 쌓아온 토론과 숙의의 당내 민주주의 문화가 ‘돼지’와 ‘촉법’으로 나눠지는 작금의 현실이 부끄럽지는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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