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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경 여성금융인네트워크 회장] 대한민국은 이제 세계적인 제조 강국이 됐다. 반도체와 조선, 방산, 원전, 플랜트 등 우리 기업들은 세계 곳곳에서 대형 프로젝트를 수주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한 가지 새로운 질문을 던져야 한다.
대한민국은 금융전문가를 준비하고 있는가. 산업의 경쟁력이 곧 금융의 경쟁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프로젝트의 규모가 커지고 구조가 복잡해질수록 이를 뒷받침하는 금융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제조기업이 세계시장을 개척하더라도 이를 설계하고 연결하는 금융의 전문성이 부족하다면 부가가치의 상당 부분은 다른 나라 금융기관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얼마 전 금융당국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인상적인 말을 들었다. 우리 기업이 수십조 원 규모의 원전 프로젝트를 수주하더라도 계약 구조를 설계하고 금융을 조달하며 위험을 배분하는 금융 구조(Financial Structuring)는 대부분 글로벌 투자은행들이 주도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창출하는 금융서비스의 부가가치가 원전을 건설하는 기업의 이익에 버금간다는 설명이었다.
이 말은 중요한 사실을 보여준다. 프로젝트의 부가가치는 공사 현장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금융이 계약을 설계하고 자금을 조달하며 위험을 관리하는 과정에서도 새로운 가치가 창출된다. 제조 경쟁력만으로는 확보할 수 없는 또 하나의 경쟁력이 바로 금융에 있는 것이다.
최근 정부는 생산적 금융과 기업금융 확대를 핵심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다. 혁신기업과 첨단산업에 자금을 공급해 미래 성장동력을 키우겠다는 방향은 매우 바람직하다. 그러나 생산적 금융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어떤 기업에 생산적 금융을 제공할 것인가. 이 질문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생산적 금융은 담보를 보고 돈을 빌려주는 금융이 아니라 기업의 미래를 보고 투자하는 금융이기 때문이다. 기업의 기술력과 시장성, 공급망의 안정성, 현금흐름, 글로벌 경쟁력을 종합적으로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담보 중심의 심사만으로는 생산적 금융을 실현하기 어렵다.
이를 위해서는 산업을 이해하고 기업을 분석하며 금융을 설계할 수 있는 전문인력이 필요하다. 기업의 재무제표만 읽는 것이 아니라 산업의 구조와 기술 변화, 글로벌 공급망과 시장의 흐름까지 함께 이해할 수 있는 금융전문가가 있어야 한다.
오늘날 글로벌 금융은 빠르게 전문화하고 있다. 특히 글로벌 은행들은 안정적인 수수료 기반(Fee-based Business)을 확대하기 위해 트랜잭션 뱅킹(Transaction Banking)을 핵심 성장사업으로 육성하고 있다. 국제무역금융(Trade Finance), 공급망금융(Supply Chain Finance), 국제보증(Demand Guarantee), 현금관리(Cash Management) 등은 모두 기업의 글로벌 거래를 지원하면서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대표적인 금융서비스다.
이러한 변화는 금융전문인력 양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14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영국 은행가협회가 설립한 런던금융대학(LIBF)은 국제무역금융과 공급망금융, 국제보증 등 트랜잭션 뱅킹 분야의 국제공인자격을 운영하며 세계 각국의 금융전문가를 체계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은 더이상 모든 업무를 두루 아는 일반적인 은행원을 요구하지 않는다. 국제무역금융, 공급망금융, 국제보증, 현금관리 등 각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의 전문성을 갖춘 금융전문가를 전략적으로 양성하는 경쟁에 이미 들어섰다.
대한민국은 제조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했다. 이제는 금융이 제조를 뒷받침하며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할 시점이다. 금융산업의 경쟁력은 더이상 자본의 규모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산업을 이해하고 기업을 분석하며 금융을 설계할 수 있는 사람이 경쟁력을 만든다.
제조 강국은 기술이 만들었지만 금융 강국은 금융전문가가 만든다. 금융산업의 미래는 제도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대한민국 금융경쟁력의 답은 결국 사람이다. 즉, ‘인적자본(Human Capital)’이다. 제조 강국 다음은 금융 경쟁력이다.
■김상경 회장 = 성균관대 사학과, 서강대 국제경제학 석사,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 위원, 기획재정부 ‘투자풀운영위원회’ 위원, 외환은행 사외이사, 아메리칸엑스프레스 은행 이사, 현 한국금융연구센터 사외이사, 현 한국자연복원진흥원 비상임이사, 현 (사)여성금융인네트워크 회장, 현 한국국제금융연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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