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틸·일론 머스크의 노예로 살 건가…누가 탈성장을 두려워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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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틸·일론 머스크의 노예로 살 건가…누가 탈성장을 두려워하랴

프레시안 2026-06-29 12:00:3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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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저성장'을 걱정하던 나라가 갑자기 '성장'의 후유증을 어떻게 치유할지 고민에 빠져 있다. 서민들은 경기가 좋아졌는지 체감을 못 하겠는데, 전 세계를 놀라게 하는 반도체 부문 호황 덕에 경제 지표가 극적으로 우상향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한강의 기적'을 논하던 '좋았던 옛날'로 돌아갈 꿈에 부풀기보다는 오히려 또 한 번 고공 상승할 게 빤한 아파트값을 불안하게 쳐다보기만 한다. 이쯤 되면 정색하고 물어야 하지 않을까? '성장'은 과연 좋기만 한 것일까?

이런 와중에 지구 곳곳에서는 온난화와 엘니뇨가 상승 작용을 일으키면서 기상 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해양 순환이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바뀌어서 앞으로 지구 기후가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다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기상 재해를 실감하면서도 막상 많은 이들은 이런 현상이 새로운 행동, 새로운 제도를 시급히 요구한다고까지 생각하지 못 한다. 미국이나 러시아 같은 나라가 일으킨 전쟁이 당장 더 중요하고, 인공지능 개발을 뒷받침할 인프라 구축이 더 긴급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의 지방선거에서도 기후나 에너지 전환 문제는 관심 밖이었다.

계속 이렇게, 과거에 그랬던 대로 계속 살아가도 될까? 뭔가 출구나 방향 전환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런 문제의식에서 나온 비전 중에,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주목받는 것이 바로 '탈성장'론이다. '성장'에 사로잡힌 체제에서 '삶'을 똑바로 바라보는 체제로 전환하자는 다양한 주장들이 오늘날 '탈성장'이라는 커다란 흐름을 이루며 인류에게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탈성장론은 관심이나 환영만큼이나 두려움이나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아니, 아직까지는 전자와 같은 반응보다는 후자의 반응이 압도적으로 더 많다. 특히, 가장 최근에 고도성장에 성공한 나라인 한국에서는 '탈'성장하자는 주장이 다른 나라보다 더 심한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한데 마치 이런 한국 상황을 염두에 두고 정면으로 도발하는 듯한 제목을 단 책이 나왔다. 독일 작가 셀린 켈러가 지은 <누가 탈성장을 두려워하랴>(김현우 옮김, 나름북스, 2026)다. 이 책은 그래픽노블이다. 보통의 인문사회과학 서적과는 달리 독자들에게 더 쉽고 흥미롭게 다가가려 노력하는 책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다루는 내용 자체는 결코 가볍지 않다. 탈성장 비전에 쏟아지는 전형적인 반박들에 하나하나 답하면서 오늘날 성장주의의 여러 변형과 탈성장론이 벌이는 첨예한 논쟁을 깊이 있게 소개한다.

노회찬재단은 <누가 탈성장을 두려워하랴>의 출간을 계기로 현재 '성장'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정세를 돌아보고 그 탈출구를 모색하기 위해 6월 23일, 이 책의 번역자인 김현우 탈성장과대안연구소 소장과 함께 '함께 맞는 비' 포럼 제19차 토론회를 가졌다. 김현우 소장은 신간 소개 수준을 넘어 탈성장 비전의 역사적 뿌리와 현재 전 세계적인 논의의 지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었다. 그리고 한 시간을 꼬박 채우며 탈성장론을 둘러싼 여러 의문과 궁금증을 푸는 자유로운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김현우 ⓒ 노회찬재단 제공

틸과 머스크의 노예가 되지 않는 길, 탈성장의 친구들의 길

김현우 소장은 <누가 탈성장을 두려워하랴>의 주제인 탈성장론 찬반 논쟁을 정리한 이 날 발표 자료에 '탈성장의 적과 친구들'이라는 또 다른 제목을 달았다. 그러면서 '친구들'보다는 '적들'에 대한 소개로 발표를 시작했다. 첫 번째로 등장한 적대적 흐름은 '에코모더니스트', 즉 '생태적 근대화'론자들이다. 이 흐름에 속한 이들은 기후위기의 심각성, 시급한 대응의 필요성 등에 동의하면서도 기존 성장 궤도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는 않는다. 혁신적인 기술 개발, '녹색'산업 중심 성장을 통해 성장과 탄소 배출량 증가 사이의 결박을 풀어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른바 성장과 탄소 배출의 '탈동조화(decoupling)'다.

'기후위기'를 강조하는 이들 가운데에서도 다수가 아직까지는 이런 탈동조화론을 신봉한다. 유럽 사회민주당과 녹색당의 다수는 최근까지 이런 생태근대화론의 시각에서 유럽 그린딜을 추진했다. 기후 문제 대응에서 이들보다 훨씬 덜 진지한 한국 정부도 그나마 '녹색'을 내세우며 변명을 늘어 놓을 때에 주로 탈동조화를 근거로 든다. 기술 발전에 전력투구하다 보면 언젠가는 탄소 중립도 저절로 달성될 것 같은 막연한 낙관론에 그나마 논리라는 게 있다면 그것은 결국 탈동조화론이다. 마이클 셸렌버거 같은 논자의 책(<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이 한국에서 유독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도 이런 가능성을 신앙 수준으로 떠받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태근대화론이나 녹색성장론의 한계와 모순은 이미 분명히 드러났다. 무엇보다, 이번 세기 안에 지구 기온을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이상 오르지 않게 하겠다는 목표가 21세기가 4반세기밖에 안 지난 시점에 벌써 좌절되고 있는 현실이 가장 강력한 반박 근거다. 탈동조화의 모호한 가능성을 변명 삼아 북반구 산업국들은 지금도 온실가스를 대량 배출하고 있고, 남반구의 재해와 빈곤을 못 본 채 하거나 오히려 이용하면서 소비 중심의 제국적 생활양식을 지속한다. 더구나 기술이 발전할수록 효율성 강화로 자원에 대한 수요가 줄기는커녕 소비 확대로 수요가 더 늘어난다는 '제번스의 역설'이 매번 예외 없이 관철된다. 녹색성장론자들이 마지막까지 손에서 놓지 않으려 하는 '성장'에 관해 확실히 뭔가 다른 생각과 행동이 필요하다.

김현우 소장에 따르면, 생태근대화론의 한계를 넘어서는 고민과 발상은 이미 1970년대부터 활발히 등장했다. 물론 이때는 아직 이런 문제의식들이 '탈성장'이라는 큰 흐름으로 묶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산업 발전이 임계점을 넘어서면 인간 생활을 개선하기보다는 자율성을 침해한다고 본 이반 일리치, 일리치와 공감하면서 '노동해방'을 자유시간의 확대-자율성의 실현으로 재해석한 앙드레 고르츠, 자본과 국가가 강요하는 상상 체계를 넘어 대중이 스스로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고 역설한 코르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 등의 사상이 1970년대 경제 불황과 에너지 위기 국면에서 활발히 전개됐다. 그리고 이들의 후예인 세르주 라투슈가 이런 다양한 문제의식과 고민에 '탈성장'이라는 공통의 깃발을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김현우 소장은 이런 1세대 탈성장론이 요즘에는 훨씬 더 다양하면서 보다 구체적인 분석과 대안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최근에 조지프 스티글리츠, 토마 피케티, 케이트 레이워스('도넛 경제' 주창자)와 함께 경제 발전의 의미를 '성장'이 아니라 '빈곤 퇴치'에서 찾자고 주창하는 선언을 발표한 제이슨 히켈이다. 히켈은 본래 문화인류학자로서, 전 지구적인 불평등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그러나 불평등을 연구한 끝에, 자본주의 중심부 국가들이 밟아온 성장의 궤적을 그대로 좇다가는 지구적 불평등을 완화하기는커녕 더 심화시킬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런 그에게 유일한 출구로 다가온 것이 탈성장을 중심에 둔 생태사회주의 비전이었다.

히켈을 비롯한 탈성장의 '친구들'은 경제 성장을 단순히 좁은 의미의 생태주의뿐만 아니라 다양한 시각에서, 즉 불평등 해소를 중심에 둔 사회경제적 시각에서, 성장 중심의 공식 경제에 가려진 여성 중심의 사회적 재생산 활동을 강조하는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자연과 맺는 관계를 바꿔야 인간들 간의 소외와 배제도 풀릴 수 있다는 문화적 시각에서 비판한다. 그리고 이런 비판을 바탕으로, 지금 당장 실현가능한 정책 수준의 대안을 제시한다.

'탈성장'론을 뜬구름 잡는 이야기쯤으로 여기는 이들은 이 대목을 주의 깊게 봐야 한다. 히켈 같은 새 세대 탈성장론자들은 지역, 일국, 지구의 차원에서 현실 정치 세력이 선택하고 주창할 수 있는 수준의 정책들을 개발하고 있다. 생태근대화론의 시각을 강하게 깔며 시작된 '그린 뉴딜' 구상에 개입해 GDP 성장에 구애받지 않는 '탈성장'판 그린 뉴딜을 제시하기도 하고, 참여 민주주의의 여러 경로를 발전시켜 대중이 아래로부터 '성장 신화'를 해체해나갈 가능성을 탐색하기도 한다.

바로 이러한 탈성장론의 견고한 흐름에 막강한 적대자로 부상한 것이 <누가 탈성장을 두려워하랴>가 주된 논적으로 삼는 각종 기술 발전 맹신론, '캘리포니아 이데올로기'다. 실리콘밸리 빅테크의 성장 토대가 된 캘리포니아 이데올로기는 피터 틸이나 일론 머스크 같은 빅테크 재벌의 강력한 후원 아래 성장주의의 최신 버전으로 발전해왔다. 셀린 켈러는 이들이 내세우는 트랜스휴머니즘, 반-엔트로피주의, 특이점주의, 우주주의, 장기주의 등의 앞 글자를 따 'TESCREAL 이데올로기'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TESCREAL 이데올로기는 기후위기를 부정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 트럼프주의 연합 내의 무지몽매한 기후위기 부정론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인정하면서도 이들은 자본주의의 성장 일변도 노선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테크놀로지 개발을 비롯한 성장을 '가속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 기후위기를 어떻게든 극복하고 인류의 일부라도 살아남아 이제껏 지속돼온 성장의 정점인 테크노-유토피아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쟁점은 그 '일부'가 누구인가, 이다. 머스크나 틸 같은 TESCREAL 이데올로기 신봉자들에게 그 '일부'란 자본주의 중심부의 백인 지배층이다. 즉, 기후위기를 야기한 온실가스 배출의 장본인이야말로 이 위기에서 살아남아야 할 첫 번째 집단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착취와 불평등, 인종주의와 제국주의의 정점이다. 즉, '성장'이라는 기존 궤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대안의 끝은 가장 뻔뻔하고 노골적인 지배의 논리다. 이런 재앙적인 논리의 수렁에서 헤어나는 출발점, 그것이 바로 '탈성장' 비전이다.

제로성장으로 연착륙하는 사회적 계획을 향해

김현우 소장의 열정적 발표 뒤에 활발한 질문과 토론의 시간이 이어졌다. 첫 번째 질문자로 나선 김정진 변호사(노회찬비전포럼 운영위원)는 “인류 역사에서 성장이 당연시된 사회는 오히려 예외적이었다는 지적에 공감한다. 하지만 성장에 너무나 중독된 현 사회에서 사회운동이 '탈성장'을 입 밖에 꺼내기 힘들어 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사회운동이 탈성장의 문제의식을 좀 더 쉽게 설명할 길은 무엇일까?”라고 물음을 던졌다.

김 소장은 우선 GDP에 대비해 실제 삶의 질을 구성하는 여러 긍정적, 부정적 변화를 측정하는 '참진보지수(Genuine Progress Indicator, GPI)'를 소개했다. 한국은 GDP로 보면 조금이라도 계속 성장하고 있지만, 참진보지수는 정체된 상태다. 이것은 “성장하지 않으면 큰일 난다”는 상식의 허상을 잘 보여준다. 대부분의 OECD 국가에서 '제로성장'에 가깝게 성장이 정체했는데도 참진보지수는 한국보다 월등하다는 현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런 지적 뒤에 김 소장은, 탈성장론의 구체적 목표는 이런 현실을 인정하되 최대한 위기와 퇴행은 피하면서 연착륙하는, 즉 “제로성장으로 연착륙하는 사회적 계획”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노회찬재단의 이강준 사업기획실장은 “탈성장론의 적과 친구들을 세 명씩 말해달라”는 흥미로운 질문을 던졌다. 김 소장은 우선 '탈성장론의 적'으로 “대놓고 지구를 파괴하는 사람들”에 더해 “교묘하게 성장주의를 팔아먹는 사람들”, “탈성장론을 읽지도 않고 비판하는 사람들”을 들었다. 탈성장론이 사회-경제적 퇴보를 무작정 긍정하거나 단순히 마이너스 성장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성장 신화'에서 벗어나 현실을 직시하자는 것인데도 '허수아비 때리기'식 탈성장 비판이 횡행하는 데 대한 비판이 담긴 답변이었다. 그러면서 김 소장은 사회경제적 시각에서든, 페미니즘이나 생태적 시각에서든, 혹은 문화적이거나 종교적인 시각에서든 성장 비판에 부분적으로라도 공감하는 흐름은 다 '탈성장의 친구'라고 답했다.

잇따른 여러 질문은 대체로 탈성장론의 여러 문제의식과 대안을 좀 더 설득력 있게 전달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지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김현우 소장은 이에 대해, '예시적 실천'과 에리카 체노웨스의 '3.5 법칙'을 강조했다. 오래된 물건을 수리하여 다시 쓸 권리가 보장되거나 노동시간이 단축돼 돌봄 같은 삶의 영역이 활성화되는 등의 상태를 실감하게 하는 실천들이 지금부터 작은 규모로라도 시작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럴 때에 “태양광 패널은 우선 사람들 머릿속에서부터 자리 잡아야 한다”(티모데 파리크)는 탈성장론의 접근법이 실현될 수 있다. 또한 김 소장은 '능동적인 3.5%가 세상을 바꾸는 출발점이 된다'는 체노웨스의 지적을 환기시키면서, 우선 이 '3.5%'를 형성하는 정치-사회운동의 실천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김현우 소장은 '자유인', '문화인', '평화인'이라는 노회찬 의원의 모토가 곧 노회찬이 생각한 대안 사회의 삼각형이었다고 지적하면서, 바로 이 자유인-문화인-평화인의 삼각형이 한국 사회에서 탈성장론이 지향하는 내용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한국 성장주의의 역사적-구조적 요소들을 분석하고 이에 따라 보다 한국적 맥락에서 탈성장의 정책과 전략을 밝히는 저작을 곧 출간할 예정임을 알리며 토론을 마무리했다.

발표 중에 김현우 소장도 언급했지만, 현 정부는 이른바 '잘사니즘'을 모토로 내걸고 있으며, 그 내용은 결국 더 많은 성장을 통해 더 많은 이들이 '잘 살게' 하겠다는 것이다. “잘 살아보세”라는 뿌리 깊은 구호의 반복인 셈이다.

그러나 문제는 과연 무엇이 '잘 사는' 것이냐, 이다. 국가와 기업이 선전을 통해 우리 머릿속에 심어놓은 '잘 사는' 상태 말고 한 번이라도 우리 스스로 '잘 사는' 게 무엇인지 상상(카스토리아디스)해본 적이 있었던가. 탈성장론이란, 이제 비로소 그런 상상을 해보자는 절실한 설득이다. 이 위기와 궁지의 시대에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더 이상 이 설득을 피하거나 우회할 수 없을 것이다.

▲누가 탈성장을 두려워하랴 (샐린 켈러 지음, 김현우 옮김, 나름북스 펴냄)ⓒ 나름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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