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감독이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의 책임을 지고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로 이어지는 이른바 '황금 세대'를 품에 안고도 1승 2패에 그친 결과는 한국 축구 역사에 씻기 어려운 오점으로 남게 됐다. 그런데 홍 감독의 사퇴보다 더 큰 파장을 일으키는 이야기가 축구 팬들 사이에서 빠르게 번지고 있다. 후임 사령탑으로 U-23 대표팀 이민성 감독이 거론되고 있다는 말이 스멀스멀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홍명보, 대표팀 감독 사퇴…월드컵 32강 탈락 책임. / 뉴스1
홍명보, 과달라하라에서 고개 숙이다
홍 감독은 29일(한국 시각) 멕시코 과달라하라 베이스캠프에서 취재진을 만나 공식 입장을 밝혔다. "대한민국 축구를 사랑해주시고 언제나 대표팀을 응원해 주신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죄송하다. 오늘 국가대표 감독직에서 물러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번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은 A조에 배정돼 1승 2패를 기록하며 조 3위에 머물렀다. 48개국 체제로 확대된 이번 대회에서는 각 조 3위 팀 중 상위 8팀에게도 32강 토너먼트 진출 기회가 주어졌지만, 한국은 그 8장의 티켓마저 확보하지 못하며 사실상 1라운드에서 퇴장당했다.
홍 감독은 "감독이라는 자리는 결과 앞에서 어떤 설명도 있을 수 없는 자리"라며 "모든 책임은 감독인 저에게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난 2년간 매 결정의 기준은 오직 한국 축구였다고 강조했다. "모든 판단이 늘 옳았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다. 하지만 모든 판단의 기준만큼은 언제나 한국 축구였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사퇴 입장 밝힌 이후에도 전 국민 비난·비판 한 몸에 받고 있는 홍명보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감독. 기사 내용 토대로 AI툴 활용해 제작한 자료사진.
"이민성 체제로 아시안컵 준비"…온라인에 퍼진 소문의 실체
홍 감독 사퇴 기자회견 전후로 축구 팬들 사이에서는 이미 다른 이야기가 돌고 있었다. 핵심은 간단하다. 홍명보 후임으로 현 U-23 대표팀 감독인 이민성 감독이 아시안컵까지 A대표팀을 맡는다는 내용이다.
이 이야기는 "축구계 관계자 입을 통해 전해졌다"는 식으로 온라인 게시물 형태로 퍼졌다. 그러나 현재까지 대한축구협회가 이 감독 선임이나 체제 전환을 공식 발표한 사실은 없다. 협회의 공식 입장 없이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먼저 퍼지는 이 상황 자체가 협회에 대한 불신을 반영한다는 시각도 나온다.
다만 축구 팬들의 반응은 소문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따지기 전에 이미 격렬하게 분출되고 있다. 이민성이라는 이름 석 자가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는 여론이 형성됐다.
왜 이민성인가, 그리고 왜 팬들은 분노하는가
이민성 대한민국 23세 이하(U-23) 축구대표팀 감독. / 뉴스1
축구 팬들이 가장 먼저 꺼내는 이야기는 이 감독의 은퇴 전력이다. 현역 시절 음주 뺑소니 사건으로 불명예스럽게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는 점을 거론하며, 이런 전력을 가진 인물을 대표팀 사령탑 후보로 거론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주장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번지고 있다.
클럽 지도자 이력도 긍정적이지 않다. 이 감독은 대전 하나 시티즌을 K리그1으로 승격시킨 이력이 있어 지도자 커리어의 정점처럼 보였지만, 이후 1부 리그에서 고질적인 수비 불안을 드러냈고 2024 시즌 강등권 추락의 책임을 지고 스스로 사퇴했다. 상승 곡선을 그리다 꺾인 지도자를 A대표팀으로 끌어올린다는 구상이 팬들에게는 납득되지 않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축구협회를 향한 고질적인 비판 역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U-23 대표팀에서 이미 드러난 한계
선수들과 대화 하는 이민성 감독. / 뉴스1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조별리그 3차전이었다. 대한민국보다 두 살 어린 선수들이 주축을 이룬 우즈베키스탄 U-21에 0-2로 완패했다. 4강에서도 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연령 기준상 두 살 어린 일본 대표팀에 0-1로 무기력하게 졌다.
그런데 더 큰 굴욕은 3·4위전에서 터졌다. 상대는 김상식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이었다. 후반 막판 베트남 선수가 퇴장당해 10명으로 줄었음에도 한국은 승부를 짓지 못했다. 32개의 슈팅, 61개의 크로스를 쏟아붓고도 결국 승부차기에서 6-7로 패했다. 대한민국 연령별 대표팀 역사상 베트남에 당한 첫 번째 패배였다.
이 대회 이전부터 이미 적신호는 켜져 있었다. 2025년 하반기, U-23 대표팀은 9월 인도네시아전에서 1-0으로 겨우 이겼고, 10월 사우디아라비아 원정에서는 0-2, 0-4로 연달아 무너졌다. 11월에는 중국에도 0-2로 졌다. 아시아권 팀들을 상대로 잇달아 패하며 본선 전부터 여론의 불신을 샀다.
전술 면에서도 비판이 쏟아졌다. 상대가 수비 블록을 내리고 공간을 내주지 않을 때 이를 깨는 방법이 없었다. 단순한 측면 크로스만 반복했고, 만들어낸 기회를 결정짓지 못하는 골 결정력 문제도 내내 해결되지 않았다. 언론과 전문가들 사이에서 "분석할 전술 자체가 없다"는 혹평이 나왔을 정도다.
허무하게 월드컵 여정 마친 이강인. / 뉴스1
아시안게임 4연패, 지금이 갈림길
이 감독의 거취 논란이 더욱 예민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유가 있다.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이 멀지 않은 시점이기 때문이다.
한국 축구는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에서 3연패를 달성한 상태다. 2014 인천, 2018 자카르타·팔렘방, 2022 항저우 대회에서 모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4연패를 노리는 이번 아시안게임은 병역 혜택이 걸려 있는 만큼 선수단과 팬 모두에게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축구 팬들과 일부 언론은 2018 아시안게임 사례를 언급하며 사령탑 교체를 촉구하고 있다. 당시 부진을 거듭하던 김봉길 감독은 대회 직전 경질됐고, 후임 김학범 감독이 팀을 이끌어 금메달을 획득했다. 지금의 상황이 그때와 닮았다는 것이 팬들의 주장이다.
현재 온라인 축구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U-23 사령탑도 교체해야 한다" "이민성이 A대표팀까지 맡는다면 한국 축구의 위기는 더 깊어진다" 등의 목소리가 거세다. 아직 협회 공식 입장이 없는 상황에서, 다음 사령탑을 누가 맡느냐는 문제는 A대표팀과 U-23 양 쪽 모두에서 동시에 터졌다.
대한축구협회가 이 두 가지 사안에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한국 축구 방향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홍명보 후임 인선, 이 감독의 거취, 협회가 반복해온 인맥 중심의 선임 구조를 과감히 바꿀 수 있는지 등의 여부가 이번 위기의 핵심 변수다. 팬들이 요구하는 것은 단순히 한 명의 감독 교체가 아니라, 실패를 반복해온 구조 자체의 변화다.
홍명보 "모든 책임 나에게" / 뉴스1
다음은 홍명보 감독 사퇴 입장 전문이다.
안녕하세요. 먼저 대한민국 축구를 사랑해주시고 언제나 대표팀을 응원해 주신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오늘 저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감독직에서 물러나고자 합니다. 대표팀 감독이라는 자리는 제게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감독을 맡기로 결정한 순간부터는 다른 이유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맡겨진 책임을 끝까지 다하는 것, 그것이 제가 해야 할 유일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2년 동안 저는 늘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습니다. ‘이 선택이 대한민국 축구를 위한 선택인가’. 대표팀에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도, 선수를 선택할 때도, 훈련을 준비하고 경기를 치를 때도 그 질문만큼은 놓지 않았습니다.
모든 판단이 늘 옳았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제 모든 판단의 기준만큼은 언제나 한국 축구였습니다.
감독이라는 자리는 결과 앞에서 어떤 설명도 있을 수 없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설명보다 책임을 말씀드리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국민 여러분께서 기대하셨던 결과를 끝내 보여드리지 못했습니다. 그 책임은 모두 감독인 저에게 있습니다.
끝까지 함께해 준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 지원 스태프, 그리고 대표팀을 위해 묵묵히 헌신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오늘 대표팀 감독이라는 자리를 내려놓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축구를 향한 마음까지 내려놓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 대표팀이 다시 국민 여러분의 신뢰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팀으로 성장해 나가기를 진심으로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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