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을 찾은 이유는 분명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와 일라이 릴리가 약 1년 뒤 인천 송도에 같은 모델의 '게이트웨이 랩스'를 공동 개소하기 때문이다. 샌디에이고에서 검증된 오픈이노베이션 모델이 이제 송도로 향한다. 샌디에이고의 오늘이 송도의 내일인 셈이다. 이는 연구공간 하나를 조성하는 프로젝트를 넘어, 글로벌 빅파마의 신약개발 역량과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세계 최고 수준 제조 경쟁력을 결합해 한국 바이오 생태계를 키우겠다는 청사진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
◇"공간보다 과학 리더십에 대한 접근이 핵심"
건물에 들어서자 베레나 스토커(Verena Stocker) 릴리 게이트웨이 랩스 유럽 총괄(Associate Vice President·Regional Head)이 취재진을 맞았다.
스토커 총괄은 게이트웨이 랩스를 릴리의 외부혁신(External Innovation) 전략의 핵심 축으로 소개했다. 외부혁신은 크게 두 갈래다. 이미 임상 단계에 진입한 바이오텍을 발굴하는 기업 사업개발(Corporate BD), 그리고 보다 초기 단계 기업과 협력하기 위해 만든 '카탈라이즈360(Catalyze 360)'이다.
그는 “몇 년 전 우리는 전임상 단계 기업들과 교류할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게이트웨이 랩스를 만들었다”며 “랩스는 우리가 제공하는 훌륭한 공간만큼이나 릴리의 과학적 리더십과 전문성에 대한 접근이 그에 못지않게 가치 있다는 것이 우리의 철학"이라고 말했다. 단순한 임대형 인큐베이터가 아니라 릴리가 150년 동안 축적한 신약 발굴과 개발 역량을 외부 바이오텍과 공유하는 것이 이 모델의 핵심이라는 설명이다.
|
◇12만㎡ 현장…CRO 밀집한 바이오 클러스터
현장 투어는 사이트 책임자(Site Head) 캐슬린(Kathleen)이 맡았다. 1년 남짓 전 문을 연 샌디에이고 사이트는 12만 제곱피트(약 1만1150㎡) 규모에 18개 모듈로 구성됐다. 부동산 개발사 알렉산드리아 리얼에스테이트와 함께 조성했으며 바로 옆 건물에는 글로벌 CRO 찰스리버랩스가 입주해 있다. 입주 기업들은 인근 CRO 서비스를 할인된 가격에 이용할 수 있다.
현재 10개 바이오텍이 입주해 있으며 최대 15개 기업까지 수용 가능하다. 지난 6년간 게이트웨이 랩스를 거쳐 간 기업은 400곳 이상이다. 이들은 릴리 과학자들과 200회 넘게 협업했고 30억달러 이상의 투자를 유치했으며 150개 이상의 신약과 플랫폼 개발로 이어졌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한 LGL은 보스턴·필라델피아·샌디에이고로 확장됐고 지난해에는 베이징과 상하이에 미국 외 첫 거점을 구축했다. 뮌헨도 개소를 앞두고 있다. 다음 목적지가 바로 한국 송도다.
|
◇韓 "논문 수준·전임상 바이오텍·정부 지원이 장점"
스토커 총괄은 한국을 선택한 이유로 높은 과학 논문 수준, 빠르게 늘어나는 전임상 바이오텍, 정부의 생명과학 산업 지원을 꼽았다. 송도 사이트는 인천 삼성바이오로직스 캠퍼스 내 약 1만2000㎡ 규모로 조성된다. 샌디에이고와 비슷한 규모다. 양측은 약 30개 기업 입주를 목표로 한다.
스토커 총괄은 “과학적 가능성과 최고 수준의 인재가 핵심 기준”이라며 “우수한 과학적 성과와 협업 역량을 갖춘 초기~중기 바이오텍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상명 삼성바이오로직스 상무는 송도 ‘릴리 게이트웨이 랩스’ 프로젝트 운영 방식에 대해 “릴리와 삼성이 함께 입주 기업을 선발하고 시설 운영과 교육 프로그램, 평가까지 공동으로 결정한다”며 “선정 기준 역시 릴리가 글로벌에서 적용하는 기준을 그대로 따른다”고 말했다.
동일 적응증이나 모달리티에서 경쟁하는 기업은 함께 입주시키지 않는다. 입주 기간은 기본 2년에 최대 2년 연장할 수 있다. 송도 모델은 투자 구조에서도 차별화된다. 릴리 벤처스뿐 아니라 삼성도 투자와 사업 협력 기회를 검토할 수 있다.
그는 송도 프로젝트의 지향점을 '바이오 생태계 구축'이라고 설명했다. 이 상무는 “입주했다고 모두 투자를 받는 것은 아니지만 우수한 기업이라면 릴리와 삼성 모두 투자와 협력을 검토할 수 있다”면서 “삼성이 그동안 바이오 생태계를 체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바이오텍이 성장할 수 있는 네트워크와 교육 전략을 함께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라고 강조했다.
◇송도 '릴리 게이트웨이 랩스'...아시아 바이오 허브 도약 기대
송도 모델의 또 다른 축은 AI다. 튠랩은 릴리가 10억달러 이상을 투자해 구축한 신약개발 데이터와 AI 모델을 외부 기업에 제공하는 플랫폼이다. 핵심은 연합학습(Federated Learning) 구조다. 참여 기업은 원천 데이터를 외부로 이전하지 않고도 릴리의 검증된 AI 모델을 활용할 수 있다.
현재 아리바이오, 퍼스트바이오테라퓨틱스, 파로스아이바이오(388870) 등이 참여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AI 활용을 넘어 초기 바이오텍이 글로벌 빅파마 수준의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활용해 후보물질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릴리 게이트웨이 랩스’ 샌디에이고 현장을 둘러보며 확인한 것은 이 공간의 본질이 연구실이나 사무실을 빌려주는 인큐베이터가 아니라는 점이다. 릴리는 유망한 초기 바이오텍을 선별해 자사의 과학자와 AI 플랫폼, 투자 네트워크를 연결하고, 성장한 기업을 다시 글로벌 신약개발 생태계 안으로 편입시키는 구조를 구축해 왔다.
송도에서는 여기에 삼성바이오로직스라는 또 하나의 축이 더해진다. 릴리가 신약 발굴과 과학적 검증, AI 기반 연구개발을 담당한다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세계 최고 수준의 CDMO 역량으로 개발과 생산을 연결한다. 초기 바이오텍 입장에서는 후보물질 발굴부터 제조, 사업개발까지 하나의 생태계 안에서 이어지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특히 송도 모델은 릴리 벤처스뿐 아니라 삼성도 입주 기업에 대한 투자와 사업 협력 기회를 검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글로벌 빅파마와 세계 최대 CDMO가 동시에 잠재적 전략 파트너가 되는 구조는 기존 국내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모델이다. 송도 랩스에는 입주후 2년 머무를수 있고, 2년 뒤 최대 2년 연장이 가능하다. 총 4년 입주가 가능한 셈이다.
그동안 국내 바이오텍은 글로벌 제약사와 공동연구나 기술수출 기회를 찾기 위해 매년 바이오USA를 찾아 직접 미팅을 잡고 기술을 소개해야 했다. 그러나 송도 오픈이노베이션 거점에서는 한국에 있으면서도 릴리의 과학자와 AI 플랫폼,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제조 역량에 상시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입주 자체가 글로벌 수준의 과학성과 사업성을 인정받는 일종의 검증 역할을 할 가능성도 있다.
물론 약 30개 기업만 입주할 수 있는 만큼 경쟁은 치열할 전망이다. 이 거점에 입주한다고 기술수출이나 투자 유치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결국 차별화된 기술과 임상 데이터는 기업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과제다. 두 회사가 송도에서 함께 구축하는 이 오픈이노베이션 거점이 국내 바이오텍의 글로벌 진출을 앞당기는 새로운 관문이자 아시아 바이오 허브의 핵심 플랫폼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Copyright ⓒ 이데일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