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르무즈가 열린다. 미국과 이란의 무력 충돌이 107일 만에 종전 양해각서 체결로 가닥을 잡으면서 호르무즈 해협 통행이 재개되고 3000억달러 규모의 이란 재건 구상도 부상하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과 자본 흐름의 대전환기 속에서 한국 경제는 중동 해빙기에 유가 안정과 중동 신시장 개척이라는 새로운 기회를 맞이하게 됐다. 〈직썰〉은 창간 12주년을 맞아 거시경제·금융시장·건설·해운·조선·반도체·바이오·식품·유통 등 8개 핵심 경제·산업 분야의 실질적 기회와 리스크 요인을 입체적으로 진단한다. [편집자주] |
[직썰 / 임나래 기자] 3000억달러(한화 약 460조원) 규모의 이란 재건기금이 공개되자 국내 대형 건설사들의 주가가 일제히 불기둥을 뿜었다. 폭격으로 훼손된 에너지 인프라 복구, 장기간 제재로 노후화된 정유·가스·발전설비의 현대화 수요를 예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거 이란과 중동에서 대형 플랜트를 수행한 국내 건설사들이 재건 특수의 유력한 수혜주로 떠올랐다.
정부와 건설사도 전담 태스크포스(TF)를 꾸리며 ‘팀 코리아’ 진출 채비에 나섰다. 그러나 종전 양해각서는 아직 60일간의 후속 협상을 남겨둔 출발점에 불과하다. 대이란 제재와 국제 금융결제망 차단, 공사대금 회수 불확실성에 더해 값싼 공사비와 현지 네트워크, 정책금융을 앞세운 중국 건설사와의 경쟁도 넘어야 할 산이다. ‘460조원’ 중동 재건 실제 수주로 이어질지는 제재 해제와 금융 정상화, 끊어진 현지 공급망 복구 속도에 달렸다.
◇종전 기대에 들썩인 건설주…460조원 재건시장 ‘선점 경쟁’
미국과 이란이 지난 18일 종전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면서 이란 재건사업이 국내 건설업계의 새로운 먹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3000억달러 규모의 이란 재건기금을 조성도 속도를 내고 있다.
양측의 협상 과정에서 등락을 거듭하던 국내 건설주도 MOU 체결을 기점으로 일제히 강세를 보였다.특히 국내 건설사들이 중동에서 다수의 정유·가스·발전 플랜트를 수행한 경험을 보유한 데다, 이란 현지에서도 과거 사업에 참여한 전력이 있어 투자심리를 끌어올렸다.
삼성E&A와 DL이앤씨, GS건설, 현대건설은 세계 최대 천연가스전인 사우스파르스 개발사업을 비롯한 중동 시공 경험이 있다. 대우건설도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이라크 등 중동 지역에서 대형 에너지 플랜트를 수행했다.
장기간 이어진 경제제재로 인한 이란의 정유·가스·발전 설비 노후화도 국내 건설사에게 기회다. 전쟁 피해시설의 긴급 복구뿐 아니라 기존 인프라의 현대화와 생산능력 확대 사업까지 동시에 발주되면 재건시장의 외연이 크게 넓어질 수 있다.
◇80조원 재건시장 열리나…정부·건설사 ‘원팀’ 대응 시동
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중동 지역 복구사업은 현재 운영사별 피해 규모를 파악하고 사업 범위를 확정하는 초기 단계에 있다. 국제 에너지 컨설팅업계에서는 향후 전체 재건비용을 약 580억달러, 한화 약 80조원으로 추산했다.
외교부는 지난 22일 ‘한-중동 포괄적 경제협력팀’을 설치하고 걸프협력회의(GCC) 6개국을 중심으로 재건사업 참여 가능성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대우건설도 이튿날 별도 TF를 꾸려 “이란과 인근 중동지역의 복구·재건 수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전쟁 피해는 이란 쪽에 집중된 것으로 보인다”며 “이라크와 UAE, 쿠웨이트 등 주변국은 상대적으로 인프라 파손 규모가 크지 않아 재건 수요도 이란을 중심으로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건설업계 다른 관계자는 “과거에는 국내 건설사들이 개별적으로 이란 시장에 진출했지만, 이제는 제재와 대금 회수 리스크가 큰 만큼 정부 차원의 보증과 정책금융 지원이 필요하다”며 “‘팀 코리아’ 형태의 진출 가능성이 거론된다”고 설명했다.
◇제재·금융망·중국 변수…‘재건 특수’ 낙관론 경계
하지만 이란 재건시장을 마냥 장밋빛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미국의 대이란 제재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데다 국제 금융결제망(SWIFT) 차단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어서다. 제재가 유지되면 국내 기업의 현지 사업 참여 자체가 제한될 수 있고, 설령 공사를 수주하더라도 발주처가 공사비 정상 지급이 어려울 수 있다.
중국 건설사와의 수주 경쟁도 변수다. 중국은 상대적으로 낮은 공사비와 인건비를 앞세울 수 있는 데다 이란과 오랜 기간 전략적 협력 관계를 유지해왔다. 국내 건설사들이 제재로 인해 이란 시장에서 사실상 발을 빼야 했던 기간에도 중국 기업들은 현지 네트워크와 사업 기반을 유지했던 셈이다.
김화랑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구체적인 피해 규모가 나온 것은 없지만 피해는 이란에 집중된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현재 중동 재건 논의는 UAE와 쿠웨이트 등 GCC 국가들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 건설사들이 과거 이란에서 수행한 시공 경험은 강점으로 평가될 수 있지만, 해당 사업들이 이미 10여년 전 사례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며 “제재 기간에도 현지에서 활동한 중국 건설사들이 상당 부분 수혜를 가져갈 가능성이 있어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문은 열렸지만 돈길은 막혀…이란 재건, ‘금융 정상화’가 관건
현재 미국이 이란산 원유 수출에 대한 제재를 한시적으로 면제했지만, 이를 이란 시장의 전면 개방으로 보기는 어렵다. MOU를 둘러싼 잡음이 이어지고 있고, 양측도 완전한 종전이 아닌 60일간의 후속 협상에 들어간 단계다.
관건은 ‘이란의 국제 금융거래가 정상화’다. 달러 결제망이 복원되고 금융기관의 송금과 보증이 가능해야 국내 건설사들도 공사대금을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다. 과거 한국에 이란산 원유대금이 장기간 묶였던 사례처럼, 수주에 성공하고도 대금을 회수하지 못할 수 있다.
김 위원은 “이란은 경제 제재와 국제사회 제재가 해제되지 않는 이상 현실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시장”이라며 “최근 거론되는 중동 재건 TF 등은 이란을 당장 공략하기보다 중장기 시장으로 염두에 둔 움직임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또 “건설업은 제조업과 현지에서 사업을 수행해야 하는 업종”이라며 “현지 발주처와 기자재·장비 업체, 기술 인력 활용 등 네트워크가 10년 가까이 단절된 만큼 이를 얼마나 빨리 복구하느냐가 중요한 쟁점”이며 “이란 정부가 어떻게 재원을 마련하고 공사대금을 지급할 수 있느냐가 핵심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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