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욱 저작권썰.zip]㊽ 오승환과 ‘라젠카 세이브 어스’, 그리고 창작자를 존중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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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욱 저작권썰.zip]㊽ 오승환과 ‘라젠카 세이브 어스’, 그리고 창작자를 존중하는 방법

일간스포츠 2026-06-29 05:50:0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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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불꽃야구’ 유튜브 썸네일

야구에서 마무리 투수의 ‘등장’은 단순한 선수 교체를 넘어, 그 자체로 경기의 흐름을 바꾸는 승부수입니다.

프로야구 초창기에는 선동열 선수가 불펜에서 몸을 풀기만 해도 경기장의 공기가 바뀌었다는 이야기가 지금까지 회자됩니다. 이후 ‘대성불패’ 구대성, ‘야생마’ 이상훈, ‘뱀직구’ 임창용, 그리고 ‘법규형’ 김병현으로 이어지는 마무리 투수의 계보는 여전히 야구팬들에게 철벽의 이미지로 남아있습니다.

묵직한 강속구, 포수의 미트에 꽂히는 정교한 스트라이크 그리고 ‘경기가 끝났다’는 안도감까지, 독보적인 마무리 투수는 상대에게는 절망을, 홈팬들에게는 짜릿한 쾌감과 편안함을 선사합니다.

이 계보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끝판대장’이 바로 오승환입니다. 그의 또 다른 별칭인 ‘돌부처’가 상징하듯,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는 무표정과 압도적인 돌직구는 그야말로 ‘절대적 강함’을 보여주었으며, 그의 등장곡 ‘라젠카 세이브 어스’(Lazenca, Save Us)는 그 강함을 더욱 극적으로 배가시키는 요소였습니다. 이 곡은 1990년대 애니메이션 ‘영혼기병 라젠카’의 OST이자, 고(故) 신해철이 이끌었던 밴드 넥스트(N.EX.T)의 명곡이기도 합니다.

후반부 이닝이 되면 관중은 자연스레 그 순간을 기다리게 됩니다. 웅장한 종소리가 울려 퍼지며 오승환이 출격하고, 호쾌한 돌직구로 세이브를 올린 뒤 경기가 종료. 이 곡의 전주에 울리는 종소리는 마치 마지막 교시의 끝을 알리는 학교의 종소리처럼, ‘오늘 승부의 막이 내린다’는 신호처럼 들립니다. 승리를 염원하는 홈 관중의 간절함과 오승환이 마운드로 걸어 나오는 순간이 묘하게 맞물리면서, 상대 팀의 전의를 꺾는 강력한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이처럼 등장곡과 입장곡은 선수의 정체성을 청각적으로 표현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입니다. 특정 선수의 음악이 경기장에 울려 퍼지는 순간, 팬들은 경기 상황을 이해하고 선수의 상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며 앞으로 펼쳐질 명장면을 예감합니다. 즉 음악이 단순한 배경을 넘어, 선수의 서사를 완성하는 핵심 장치로 기능한 것입니다. 

◇ 음악-선수의 내러티브를 완성하는 힘

이 상징적인 등장곡은 오승환 선수가 일본 프로야구(한신 타이거스)로 이적할 무렵 한바탕 홍역을 치르게 됩니다. 이적 발표 초기, 오승환의 에이전시 측은 현지 상황에 맞춘 곡의 편곡과 개작 계획을 밝혔습니다. 전주의 종소리를 일본 학교의 종소리로 바꾸고, 가사를 ‘오승환 세이브 어스’로 변경하는 등의 구체적인 방안과 함께, 원곡자인 넥스트가 직접 작업에 참여할 것이라는 내용까지 더해지며 팬들의 기대감은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며칠 뒤, 원작자인 신해철이 직접 X(구 트위터)를 통해 입장을 발표하면서 상황은 급반전되었습니다. 신해철은 오승환 선수가 이 곡을 사용하는 것 자체는 기쁜 마음으로 응원하지만, 편곡과 가사 변경, 넥스트의 작업 참여 등에 대해서는 사전에 어떠한 논의도 들은 바가 없다며 당혹감을 표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오승환 선수의 선전을 위해 주변은 조용히 하자’라는 의견과 함께 상황을 일단락 지었습니다. 

이후 힙합 가수 주석이 오승환을 위한 응원가 ‘OH’를 발표했고, 이 곡이 새로운 등장곡으로 채택되면서 오승환 선수와 ‘라젠카 세이브 어스’의 인연은 중단됩니다. 오승환 선수는 일본을 거쳐 미국 메이저리그까지 진출한 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무사히 은퇴까지 완주했습니다. 그 사이 프로야구와 음악 저작권을 둘러싼 환경도 크게 변했습니다. 한때는 야구장에서 대중가요를 응원가나 등장곡으로 개사해 쓰는 일이 자연스러운 관행처럼 여겨졌으나, 법적 분쟁을 거치며 창작자의 권리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달라진 것입니다. 

◇ 불꽃야구 - 오승환 등장곡의 부활 

많은 시간이 흐른 후, 지난주 공개된 ‘불꽃야구’를 통해 오승환 선수가 다시 마운드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모두의 기억 속에 봉인되어 있던 ‘라젠카 세이브 어스’가 다시금 등장곡으로 울려 퍼졌습니다. 이 역사적인 재회 과정을 저희 (주)메이저세븐이엔엠에서 담당하였습니다.

처음 연락을 받고 의뢰할 곡이 무엇인지 물어봤을 때, 곡명을 듣자마자 무심결에 “오승환 선수가 나오나요?”라고 반사적으로 되물었습니다. 오승환의 돌직구를 기억하는 야구팬의 한 사람으로서, 본능적으로 튀어나온 찰나의 반응이었습니다. 

이후 고 신해철의 저작권을 관리하는 회사와 제작사 사이에서 수차례 조율 과정이 이어졌습니다. 생전 원작자가 오승환 선수의 곡 사용을 지지했던 사실, 이 음악이 선수 본인에게도 평생의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는 점, 그리고 이 곡이 투수 오승환과 함께 다시 울려 퍼진다면 그것을 기억하는 많은 국민들에게 특별한 선물이 될 것이라는 진심을 전했습니다. 다행히 양측의 깊은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마침내 합의점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방송 이후 SNS와 댓글을 통해 ‘‘라젠카 세이브 어스’의 저작권이 해결되었을까?’라며 궁금해하거나 걱정해 주는 글들을 보았습니다. 참 반가운 변화였습니다. 이제는 우리 사회가 음악 저작권을 단순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아닌, 콘텐츠의 핵심적인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수많은 콘텐츠의 음악 저작권 업무를 담당하며 다양한 창작자와 권리자들을 만나왔습니다. 그중에는 이미 거장의 반열에 오른 아티스트들도 상당수였습니다. 이 현장에서 일을 하다 보면 결국 원칙은 하나로 귀결됩니다. 창작자를 존중하는 태도를 바탕에 두되, 감정은 절제하고 일이 성사되는 것에 집중하며 차분하게 프로세스를 밟아나가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프로젝트는 늘 마음속에 품고 있던 전문가로서의 사명감에 더해, 찬란했던 한 시대를 기억하는 야구팬이자 음악팬으로서의 진심이 함께 녹아든 특별한 케이스였습니다. 

오승환 선수가 다시 마운드로 걸어 나오며 종소리가 울렸을 때 그토록 많은 이들이 반가워했던 이유는, 그 음악이 단순한 등장곡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는 고귀한 창작물이고, 누군가에게는 치열하게 살아온 인생 그 자체였으며, 또 누군가에게는 찬란한 시대를 복원하는 장치였습니다.

이번에 다시 울려 퍼진 그 종소리는 단지 승부의 끝을 알리는 소리가 아니라, 오래된 기억이 '존중의 절차'를 거쳐 마침내 다시 우리 앞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신호입니다.

김지욱 ㈜메이저세븐이엔엠 대표

[김지욱 저작권썰.zip]㊺ ‘멋진 신세계’ 속 ‘웬 유 위시 어폰 어 스타’로 보는 저작권 보호기간


▶ 저자소개=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 석사. 현재 (주)메이저세븐이엔엠의 대표로 음악 저작권과 콘텐츠 현장에서의 음악 저작권 관련 업무 및 자문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JTBC ‘싱어게인’,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 tvN ‘태풍상사’, ‘폭군의 셰프’, SBS ‘우리들의 발라드’, Mnet ‘보이즈플래닛’ 등 다수 프로그램 및 콘텐츠의 음악 저작권 관리 업무를 맡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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