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서울 중구 명동의 화장품 매장은 이른 오전부터 분주하다. 계산대 앞에는 캐리어를 끌고 온 외국인 관광객들이 줄을 서 있고, 매장 안에서는 테스트와 구매, 촬영이 동시에 이어진다. 몇 시간 뒤 성수동 골목으로 이동한 이들은 카페와 편집숍을 오가며 서로 다른 분위기를 기록하고 공유한다. 밤이 되면 강남으로 향해 한식 레스토랑과 K-푸드 매장에서 하루를 마무리한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의 하루는 관광지를 찍고 이동하는 방식이 아니라, 도시 전체를 생활하듯 소비하고 있다.
지난달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의 ‘글로벌 한류 소비액’이 1조4천억원을 넘어 역대 최고치를 다시 경신했다. 특정 스타의 대형 공연이나 일회성 이벤트에 기대지 않고도 3개월 연속 1조원대 소비가 유지되면서, 한류 관광이 이벤트 중심 유입 구조를 넘어 지속적 소비 구조로 이동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28일 한국관광공사 한국관광데이터랩에 따르면 지난달 글로벌 한류 소비액은 1조4천130억원으로 전월 대비 6.3% 증가했고, 전년 동월 대비로는 73.7% 급증했다. 지난해 하반기 7천억~9천억원대에서 등락을 반복하던 흐름과 비교하면, 올해 들어 상승 흐름이 보다 뚜렷해지고 있다.
■공연 의존도 약화가 만든 구조 변화
특히 올해 3월 처음 1조원을 돌파한 이후 4~5월에도 연속으로 최고치를 경신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공연과 같은 대형 이벤트가 집중된 시기 이후에도 소비 규모가 줄지 않고 오히려 확대된 점은 기존 관광 수요 구조와 다른 흐름으로 해석된다.
과거 한류 관광은 콘서트나 팬 이벤트 일정에 따라 방문 수요가 급격히 증감하는 형태였다. 특정 시점에 집중된 유입이 끝나면 소비도 함께 빠르게 둔화되는 흐름이 반복됐지만, 최근에는 일정 수준 이상의 소비가 꾸준히 유지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변화의 중심에는 ‘공연 의존도 약화’가 자리하고 있다. 방탄소년단(BTS)의 광화문 컴백 공연과 고양 월드투어 개막 등 대형 이벤트가 집중됐던 시기 이후에도 소비 규모가 하락하지 않았고, 공연이 없는 기간에도 방한 수요가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팬덤 기반 방문은 여전히 중요한 부분이지만, 이제는 공연 일정이 없는 시기에도 한국을 찾고 있다. 방문 목적이 특정 이벤트 참여에서 일상적인 소비와 체류 경험으로 분산되고 있는 구조다.
■쇼핑·뷰티·식문화로 재편된 소비 지형
업종별 소비 구조를 보면 이러한 변화는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쇼핑이 39.1%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고, 뷰티·웰니스가 21.1%로 뒤를 이었다. 패션(14.3%), 라이프스타일 푸드(11.9%), 한식(10.3%) 순으로 이어졌다.
공연 관람과 같은 일회성 지출보다 화장품, 패션, 식문화처럼 반복적으로 소비가 가능한 영역이 중심을 형성하고 있다. 소비의 중심축이 특정 이벤트 참여에서 체류 기간 동안의 일상적 소비로 이동하고 있는 흐름이다.
외국인 관광객의 일정 구성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공항 도착 직후부터 쇼핑, 미용, 식문화, 콘텐츠 체험이 동시에 이뤄지며 한국 체류 자체가 하나의 소비 구조로 설계되는 모습이다.
서울 주요 상권은 이러한 변화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다. 명동, 성수, 홍대, 강남 등은 K-라이프스타일을 집약한 체험형 공간으로 기능하며, 방문객들의 이동 동선 자체가 소비 활동과 연결되고 있다.
화장품 매장에서는 테스트와 구매가 동시에 이뤄지고, 패션 매장에서는 촬영과 공유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소비 행위가 구매 중심에서 기록과 확산을 포함하는 방식으로 확장되면서 상권의 기능도 변화하고 있다.
■서울이 ‘체류형 관광 플랫폼’으로 바뀌는 이유
뷰티 서비스 역시 여행 일정 안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피부관리, 헤어 스타일링, 네일 아트 등은 체험 활동의 일부로 편입되며, 방문객의 체류 시간을 늘리고 있다.
식문화 소비는 이러한 흐름의 또 다른 핵심이다. 삼겹살, 치킨, 떡볶이 같은 일상적인 메뉴부터 한식 레스토랑까지 식사는 끼니를 해결하는 행위가 아니라 방문 목적을 구성하는 요소로 기능하고 있다.
카페 문화의 확산도 같은 맥락 위에 놓여 있다. 하루에도 여러 카페와 식당을 이동하며 서로 다른 공간의 분위기를 소비하는 방식이 자리 잡으면서, 식문화는 한국 체류 경험의 중요한 구성 요소로 확대되고 있다.
콘텐츠 기반 활동 역시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드라마 촬영지 방문, 아이돌 기획사 주변 탐방, 댄스 클래스 참여 등은 콘텐츠 소비가 현실 공간 이동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보여준다.
공연 관람 외에도 팬 활동을 의미하는 ‘덕질’, 촬영지 방문 등은 한국이라는 공간이 콘텐츠의 배경을 넘어 직접적인 목적지로 기능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결국 외국인 관광객의 한국 여행은 방문 중심의 일정에서 체류 중심의 소비 구조로 이동하고 있다. 짧은 시간 동안 여러 장소를 빠르게 소비하는 방식이 아니라, 한 도시 안에서 다양한 경험을 축적하는 형태가 강화되고 있다.
한국은 이제 관광 목적지를 넘어 쇼핑, 식문화, 콘텐츠, 미용이 결합된 경험 플랫폼으로 성격이 변화하고 있다. 즉, ‘보는 관광’에서 ‘머무는 소비’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짧은 일정 안에 관광지를 소비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한 도시 안에서 쇼핑·식문화·콘텐츠·일상을 동시에 체험하는 방식이 확산되는 것이다. 한류 역시 콘텐츠 산업의 범위를 넘어 소비 기반 산업으로 외연을 넓히며 새로운 성장 구조를 만들고 있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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