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지나도 경찰이 신분 확인·출입 제한…충돌 흔적은 멀리서도 선명
시진핑 관저서 7㎞ 거리…방공망 구멍 지적과 함께 정치적 의도 주장도
(베이징=연합뉴스) 한종구 특파원 = "이 지역 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공사 중입니다."
28일 정오(현지시간)께 찾은 중국 베이징 최대 번화가 중심업무지구(CBD).
경비행기가 초고층 빌딩인 시틱타워(CITIC Tower·중국존)에 충돌한 지 40여 시간이 지났지만 사고 현장 주변은 여전히 삼엄한 통제 속에 있었다.
시틱타워로 이어지는 모든 진입로는 폴리스라인으로 봉쇄돼 있었고, 경찰과 붉은 조끼 차림의 자원봉사자들이 배치돼 출입을 통제했다.
경찰은 신분증을 일일이 확인한 뒤 방문 목적을 묻고 업무상 출입이 확인된 사람만 한 명씩 안으로 들여보냈다.
배달 기사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주문 내용과 배달 물품을 확인받은 뒤에야 통과할 수 있었지만, 오토바이는 통제선 밖에 두고 길게는 1㎞ 넘는 거리를 걸어야 했다.
경찰 통제선 밖에는 배달 기사들이 두고 간 오토바이 100여 대가 무질서하게 늘어서 있었다.
무표정한 경찰의 통제에 별다른 항의는 하지 못했지만, 땡볕 아래 무거운 짐을 들고 발걸음을 재촉하는 그들의 얼굴에는 피로와 짜증이 그대로 묻어났다.
멀리서 올려다본 108층 시틱타워는 겉으로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건물 중상부 푸른 유리 외벽에는 검게 패인 충돌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높이 500m가 넘는 초고층 빌딩에 경비행기가 충돌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듯 파손 부위는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왔다.
도로를 지나던 시민들과 운동하던 주민들 가운데는 경찰의 눈을 피해 휴대전화를 꺼내 사고 흔적을 촬영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건물 주변 도로는 철저히 통제됐지만, 워낙 높은 건물인 탓에 충돌 흔적은 멀리서도 선명하게 확인됐다.
사고 현장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중국인 천모 씨는 당시 상황을 또렷이 기억했다.
그는 "금요일 저녁이라 일찍부터 손님이 많았는데 갑자기 '쾅' 하는 굉음이 들렸다"며 "모두 교통사고가 난 줄 알고 밖으로 뛰어나갔지만, 몇 시간 뒤 손님들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비행기가 건물에 충돌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 당국은 사고 당일 별다른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사고 발생 하루가 지난 27일 오후가 돼서야 "26일 오후 5시 55분 차오양구 동3환 인근에서 단발 2인승 경량 스포츠 항공기가 고층 건물과 충돌해 조종사 1명이 숨지고 13명이 다쳤다"는 내용의 짧은 발표만 내놨다.
발표문에는 충돌한 건물이 시틱타워라는 사실조차 언급되지 않았고, 사고 원인과 조종사 신원 등 핵심 내용도 공개되지 않았다.
현장에서 만난 시민들은 베이징 도심 한복판에서 어떻게 이런 사고가 날 수 있느냐며 의아해했다.
황모 씨는 "이곳은 베이징에서도 가장 번화한 지역인데 이런 사고가 발생했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베이징시는 지난달부터 도시 전역을 드론 통제구역으로 지정하는 등 드론에 대한 규제를 대폭 강화했다.
드론 비행은 물론 생산·판매·임대와 핵심 부품 운송까지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드론도 아닌 경비행기가 도심 최고층 빌딩에 부딪히는 사고가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를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었다.
또 다른 시민 왕모 씨는 "베이징은 드론 비행도 엄격히 통제하는 도시인데, 경비행기가 초고층 빌딩과 충돌했다는 것이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고가 발생한 시틱타워는 높이 528m의 베이징 최고층 빌딩으로, 외형이 중국 고대 술잔인 '존'(尊)을 닮아 '중국존'(中國尊)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중신그룹 본사를 비롯해 알리바바 등 대형 기업들이 입주해 있으며, 최근에는 취업을 기원하는 젊은 층이 찾는 '취업 명당'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이 빌딩은 중국 권력의 핵심인 톈안먼 광장과 시진핑 국가주석의 집무실이자 관저가 있는 중난하이에서 직선거리로 약 7㎞ 떨어져 있다.
경비행기가 조금만 더 비행했다면 중난하이까지 도달할 수도 있었다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중국 수도의 항공 보안에 심각한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울러 베이징 도심 상공은 비행금지구역으로 관리되는 만큼 경비행기가 초고층 빌딩까지 비행한 사실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대만 국방안보연구원 산하 국방전략자원연구소의 쑤쯔윈 소장은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에 "베이징은 사실상 비행금지구역"이라며 "이번 사건에 정치적 동기가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비행기 추적 서비스 플라이트레이더24에 따르면 사고기는 베이징 핑구구 스포쓰 일반 공항을 이륙한 뒤 착륙을 위해 접근하다가 갑자기 방향을 틀어 베이징 도심으로 향했고, 이후 사고 현장 인근에서 신호가 끊겼다.
로이터통신은 건물의 손상이 유리 커튼월 일부가 파손되는 수준에 그쳤다고 전했다.
항공 전문가들은 사고기의 무게가 약 340㎏에 불과하고 충돌 당시 속도도 시속 약 200㎞ 수준으로 추정돼 충격이 제한적이었던 것으로 분석했다.
jk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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