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지갑 지켜주는 이익에 한 표'…젠지 사회주의 바람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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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지갑 지켜주는 이익에 한 표'…젠지 사회주의 바람분다

이데일리 2026-06-28 17:10:2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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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내 집세를 내려라.”

열심히 일해도 집 한 채 장만할 수 없다는 좌절이 전 세계 청년층을 거리로, 또 투표소로 몰아내고 있다. 미국 뉴욕의 조란 맘다니 시장부터 영국의 잭 폴란스키 녹색당 대표까지, 생활비 인하를 전면에 내건 급진 좌파가 동시다발적으로 약진하면서 ‘젠지(Z세대) 사회주의’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집값과 생활비에 짓눌린 한국의 청년들에게도 전혀 낯설지 않은 분노다.

조란 맘다니 미국 뉴욕 시장이 지난해 10월 13일(현지시간) 뉴욕에서 열린 시장 선거 유세에서 연설하고 있다. 임대료 동결·무상 보육·무료 버스 등을 공약한 맘다니는 지난해 11월 선거에서 승리해 올해 1월 취임했다. (사진=AFP)
조란 맘다니 미국 뉴욕 시장이 지난해 10월 13일(현지시간) 뉴욕에서 열린 시장 선거 유세에서 연설하고 있다. 임대료 동결·무상 보육·무료 버스 등을 공약한 맘다니는 지난해 11월 선거에서 승리해 올해 1월 취임했다. (사진=AFP)


◇뉴욕, 사상 첫 2년 임대료 동결…세계로 번진 ‘생활비 정치’

28일 USA투데이 등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미국 뉴욕시 임대료조정위원회는 지난 25일(현지시간) 약 100만호에 달하는 임대료 안정화 주택(규제로 인상률이 제한되는 임대주택)의 앞으로 2년 치 임대료를 동결하기로 7대 1로 의결했다. 위원회 사상 첫 2년 동결로, 맘다니 시장이 내건 핵심 공약이 취임 반년 만에 현실이 된 것이다. 이번 조치는 1년·2년 갱신 임대차 모두에 적용하며 안정화 주택에 사는 약 240만명이 혜택을 받는다.

올해 1월 취임한 맘다니 시장은 임대료 동결과 함께 5세 이하 무상 보육, 값싼 생필품을 파는 시영 식료품점 운영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맘다니 시장은 표결 직후 “뉴욕시 세입자들의 역사적 승리”라고 자평했다.

이런 흐름은 뉴욕만의 일이 아니다. 영국에선 지난해 9월 폴란스키가 녹색당 대표에 오른 뒤 당원이 3배로 불어 약 23만명에 달했다. 지지율도 10%대 후반으로 치솟아 일부 조사에선 노동당·보수당마저 앞섰다. 폴란스키 대표가 내건 구호 역시 공과금 인하와 억만장자 증세다.

캐나다에선 좌파 신민주당(NDP)을 새로 이끄는 아비 루이스가 공영 식료품점을 세우겠다며 “코스트코를 떠올리되, 공공 서비스로 운영하는 것”이라고 했다. 독일 좌파당(디링케)은 수년 만에 최고 지지율을 기록 중이고, 프랑스 좌파 정치인 장뤼크 멜랑숑은 내년 대선을 노리고 있다.

미국에선 의회가 사모펀드의 단독주택 매입을 처음 제한하는 등 한 세대 만에 최대 규모의 주택 공급 법안을 초당적으로 통과시켰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다른 의제를 앞세워 서명을 거부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런 흐름을 ‘젠지 사회주의’로 명명했다. 공동선이 아니라 유권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익에 직접 호소하는 ‘생활비 정치’가 민주주의 국가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는 것이다.

◇밀레니얼 사회주의와의 결별…표적은 오직 초 부유층

나라마다 사정은 달라도 정책의 결은 똑같다. 임대료 규제, 무상 보육, 무료 대중교통처럼 당장 손에 잡히는 혜택에 집중하고, 그 재원은 최상위 부유층 증세로 메우겠다는 구상이다. 폴란스키 대표는 1000만 파운드(약 204억원)가 넘는 자산에 매년 1%, 더 거액에는 2%의 부유세를 매기자고 주장한다.

과거 좌파와의 차이는 분명하다. 2010년대 ‘밀레니얼 사회주의’가 광범위한 증세와 공동선을 앞세웠다면, 젠지 사회주의는 ‘내 이익’을 정면에 내건다. ‘워크’(woke·진보적 정치 구호)나 기후 위기 같은 거대 담론은 뒷전으로 밀리고, 그 자리를 반 엘리트·반 빅테크 정서가 채웠다.

인공지능(AI)이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란 불안도 분노에 기름을 붓고 있다. 국내총생산(GDP)은 사상 최대인데 월세는 감당이 안 되고 점심 한 끼가 28달러(약 4만 3000원)까지 치솟은 현실, 즉 지표와 체감의 괴리가 분노의 근원이다. 영국 좌파 경제학자 제임스 미드웨이는 “경제 성장이 생활 수준의 향상과 분리됐다”고 꼬집었다.

(사진=AFP)
(사진=AFP)


◇같은 좌절, 다른 출구…‘한 방’ 노리는 청년들

똑같은 좌절이 투자 시장에서는 전혀 다른 얼굴로 터져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국 청년 투자자들은 밈주식(온라인 입소문으로 급등락하는 주식)과 암호화폐, 주가 등락에 돈을 거는 옵션에 ‘한 방’을 노리는 고위험 베팅으로 몰리고 있다. 이들은 스스로 ‘디젠’(degen·자포자기한 도박꾼)이라 부르고, 이런 정서를 ‘금융 허무주의’라 칭한다.

미국 금융산업규제기구(FINRA) 조사에서 35세 미만의 62%가 재무 목표를 이루려면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고 답했다. 보험사 노스웨스턴뮤추얼 조사에서도 Z세대의 80%, 밀레니얼의 75%가 ‘재정적으로 뒤처졌다’고 느껴 투기성 투자에 끌린다고 했다. 대선·스포츠 경기 등의 결과에 돈을 거는 예측시장이 최근 급부상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안전하게 저축하고 차곡차곡 투자한 사람이 되레 손해 보는 시대라는 인식이, 정치에선 사회주의로 시장에선 도박으로 갈라져 분출되는 셈이다.

다만 이코노미스트는 이런 처방에 비판적이다. 임대료 규제는 투자를 위축시켜 공급을 줄이고 결국 임대료를 더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초 부유층 증세 역시 대상자가 많지 않은 데다 이들이 다른 지역으로 떠나 버리면 세수를 확보하기 어렵다고 짚었다. 그럼에도 “내 집세를 내려라”라는 단순하고 강력한 외침은 쉽게 잦아들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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