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정서원 작가] 정원도 중요한 일부다. 실내에서 작품을 보고 밖으로 나오면 관람의 속도가 조금 달라진다. 계절에 따라 야생화와 들풀, 수목이 어우러지는 야외 정원은 작품을 보고 난 뒤 머리를 식히는 공간이 된다. 미술관이 건물 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변 풍경까지 포함한다는 사실이 느껴진다. 작품을 해석하느라 조여 있던 감각이 정원에서 조금 풀리고, 다시 다음 공간으로 들어갈 힘이 생긴다.
요즘처럼 모든 것이 빠르게 지나가고, 화면을 통해 너무 많은 이미지와 정보가 밀려드는 시대에는 미술관에 가는 일도 조금 다른 의미를 갖는다. 거창한 지식을 얻기 위해서라기보다, 잠시 속도를 늦추고 눈앞의 사물을 오래 바라보기 위해서다. 그런 점에서 이곳의 방식은 지금의 피로감과도 연결된다.
작품을 일상과 분리된 특별한 대상으로만 세워두지 않고, 의자와 조명, 방과 정원 사이에 놓아두는 방식은 미술을 조금 덜 어렵고, 조금 더 가까운 감각으로 바꾼다.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예술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살고 있는 공간을 다르게 바라보기 위해서다.
방문을 마치면 좋은 미술관에 대한 기준도 조금 달라진다. 꼭 크고 압도적인 전시가 아니어도 된다. 작품을 많이 보았다는 만족보다, 어떤 공간에 머물렀다는 감각이 더 오래갈 때가 있다. 양평의 이 미술관은 그런 종류의 장소다. 집처럼 들어가지만 집에서는 보기 어려운 작품들을 만나고, 미술관처럼 나오지만 이상하게 누군가의 공간을 다녀온 듯한 기분이 남는다.
양평에 간다면 구하우스는 일부러 시간을 내서 들러볼 만한 곳이다. 작품을 하나씩 공부하듯 보아도 좋고, 방을 옮겨 다니며 공간의 분위기를 먼저 느껴도 좋다. 서도호의 문과 실, 노상호의 이미지와 허구를 지나고 나면, 이 미술관의 이름이 왜 ‘하우스’인지 조금 더 분명해진다. 구하우스에서 집은 단순한 건축 형식이 아니라, 예술을 바라보는 태도에 가깝다.
작품을 멀리 세워두는 대신 가까이 두고, 소유하는 대신 나누고, 감상하는 대신 함께 머무는 방식. 그 점에서 구하우스는 집처럼 편안한 미술관이라기보다, 미술관이 집의 형식을 빌려 우리에게 묻는 장소에 가깝다. 예술은 어디에 놓일 때 가장 오래 살아남는가. 구하우스의 답은 꽤 분명해 보인다. 일상 가까이, 사람이 머무는 공간 안에서.
Copyright ⓒ 문화매거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