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잠에서 깬 사이먼은 가장 먼저 사우나를 찾는다. 그는 땀을 흘려 몸속 독소를 배출하면 정자 기능이 향상된다고 믿는다. 하지만 사우나의 열로부터 고환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도 잊지 않는다.
"저는 '칠 너츠(Chill Nuts)'라는 아이스팩을 사용해요. 정자 수를 최대한 유지하기 위해 고환 위에 올려둡니다."
사이먼은 BBC 월드서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는 모두 정자 건강을 최적화하기 위해 그가 실천하는 관리법의 일부다. 다만 이러한 방법의 효과를 입증하는 의학적 근거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 거주하는 28세의 베네수엘라계 미국인인 그는 매일 햇볕을 쬐고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또 미세플라스틱을 걸러주는 정수기를 통해 물을 마시고, 독성 물질의 영향을 줄이기 위해 면 소재 복서 팬티를 입는다.
하지만 사이먼은 당장 아이를 가질 계획도 없고, 현재 연인도 없다. 그가 더 걱정하는 것은 정자 수가 적을 경우 자신의 건강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이다.
그는 "생식 능력이 낮으면 내분비 기능이나 테스토스테론 수치, 다른 호르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두렵다"고 말했다.
다만 내분비 기능은 정자 수에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생식 능력이 낮다고 해서 내분비 기능이나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직접적으로 저하되는 것은 아니다.
사이먼은 정자 수를 늘리는 데 관심을 기울이는 남성들 가운데 한 명이다. 전 세계적으로 '#malefertility(남성 생식력)', '#semenanalysis(정액 검사)', '#sperm(정자)' 등 남성 생식력 관련 해시태그는 틱톡과 인스타그램에서 수억 회의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으며, 남성 생식력을 주제로 한 최대 규모의 레딧 커뮤니티들도 올해 1월 이후 이용자가 3배 가까이 늘어났다.
세계 각국의 남성 생식 전문가들은 정액 검사를 받으려는 남성이 늘고 있으며, 미래의 생식 능력을 걱정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의 배경으로 테스토스테론 대체요법(TRT)과 스테로이드 사용 증가, 그리고 환경 유해물질에 대한 우려를 꼽는다. 이들 모두 생식과 관련된 호르몬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영국의 남성 생식 전문가인 석스 민하스 교수는 이러한 관심이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모두 지닌다고 말한다.
"남성 난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이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불필요한 불안까지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민하스 교수는 이어 이러한 불안을 이용해 수익을 얻으려는 인플루언서와 관련 제품 시장도 함께 성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이먼 역시 많은 사람들처럼 처음에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 문제를 접했다. 하지만 그는 아직 정액 검사를 받아본 적이 없으며, 자신의 건강 상태를 걱정할 만한 특별한 이유도 없다.
"막연한 두려움이 있어요. 그래서 생식 능력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거예요."
인플루언서 브라이언 존슨의 콘텐츠를 접한 것이 사이먼이 자신의 생식 능력에 "진지하게 관심을 갖게 된" 계기였다.
전 세계적으로 정자 수 감소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실리콘밸리 출신 억만장자인 존슨은 자신의 정자 수가 평균보다 4배 많다고 주장한다.
그는 테스토스테론과 정자 수를 늘리는 방법이라며 사우나 이용과 아이스팩 사용 등 이른바 '건강 관리법'을 소개하고 있으며, 사이먼도 이를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
600만 명이 넘는 팔로워를 보유한 존슨의 콘텐츠는 시청자들을 자신이 운영하는 웹사이트로 유도한다. 그는 이곳에서 각종 건강 보조제를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존슨만이 아니다. 의학적 근거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부 인플루언서들은 특정 영양제, 적색광 치료, 심지어 미세플라스틱을 걸러낼 수 있다며 헌혈을 권하기도 한다.
이 같은 건강 인플루언서들의 콘텐츠는 전 세계적인 출산율 감소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분위기 속에서 확산되고 있다.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인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도 최근 '생식력 위기'를 언급하며 "1970년 남성들의 정자 수는 오늘날 청소년들의 두 배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오늘날 청소년의 정자 수가 1970년 당시 남성보다 적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과학적 근거는 없다. 일부 대규모 연구 분석에서는 197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정자 수가 크게 감소했을 가능성을 제기했지만, 이 분야는 아직 연구가 충분하지 않은 실정이다. 따라서 정자 수 감소의 원인과 이것이 전체 출산율에 미치는 영향 역시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한편 '매노스피어(manosphere)'와 가까운 성향의 인플루언서인 앤드루 후버먼도 자신의 팟캐스트에서 남성 정자 수 감소를 주제로 다뤘으며, 팟캐스터 조 로건은 인류가 '인구 붕괴'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다만 출산율 감소에는 생물학적 생식 능력 외에도 다양한 요인이 작용한다. 생식 능력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약 7쌍 중 1쌍의 부부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경제적·사회적 부담 역시 사람들이 출산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주요 이유로 꾸준히 지목되고 있다.
영국 임페리얼칼리지런던의 생식내분비학자인 찬나 자야세나 교수는 일정 부분 우려할 만한 점은 있지만, 소셜미디어에서 제기되는 주장들은 실제보다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본다.
"분명 해결해야 할 과제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 원인이 무엇인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습니다."
자연요법 전문가인 루카스는 생식력 저하를 경고하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건강 인플루언서 중 한 명이다.
그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전 세계적으로 생식 능력이 전반적으로 감소하는 유행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는 "33년 안에 남성들이 불임이 될 것"이라는 근거가 부족한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루카스는 온라인 강의를 판매하고 일대일 코칭을 제공하는 한편, 테스토스테론 수치와 생식 능력을 높이려는 남성들을 대상으로 건강 보조제를 판매하고 있다.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일부 생식력 관리법을 소개하는 그의 소셜미디어 콘텐츠는 큰 관심을 끌며 확산됐다.
그는 "남성들에게는 속옷 위에 아이스팩을 대고 하루 두세 차례, 한 번에 10~15분 정도 유지하라고 권한다"며 "이를 실천한 뒤 배우자가 임신했다는 고객들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주장했다.
또 일부 추종자들은 적색광 치료 기기를 고환에 대거나 고환을 향하도록 비추기도 한다.
루카스는 "이 방법은 아직 초기 연구 단계에 있다"면서도 "개인에게 특별한 해가 없다면 시도해 볼 만한 전략이라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자신의 조언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 루카스는 고환을 냉각하는 방법이 "유망한 접근법"이라고 믿지만, 이를 뒷받침할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점도 인정했다.
한편 그는 건강한 식습관과 충분한 수면, 규칙적인 운동도 권장한다. 이러한 생활 습관은 실제로 효과를 뒷받침하는 과학적 근거가 충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생식력 관리 조언은 보디빌딩과 '룩스맥싱(looksmaxxing)' 열풍 속에서 테스토스테론을 높이는 약물을 복용하는 남성이 늘어나는 현상과 맞물려 확산되고 있다. 룩스맥싱은 외모를 최대한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온라인 트렌드다.
하지만 스테로이드와 테스토스테론 제제는 오히려 생식 능력을 저하시킬 수 있다.
이러한 부작용을 되돌리기 위해 일부 인플루언서들은 여러 약물을 함께 복용하는 이른바 '스택(stacks)' 요법을 홍보하고 있으며, 상당수는 자신이 운영하는 웹사이트에서 관련 제품도 판매하고 있다.
여기에는 사람융모성생식선자극호르몬(HCG)과 사람폐경성생식선자극호르몬(HMG) 등 생식력 치료제도 포함된다. 이들 약물은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생식 호르몬의 분비를 촉진하는 데 사용되지만, 의료진의 처방 없이 복용할 경우 위험한 부작용을 일으키거나 영구적인 건강 손상을 초래할 수 있다.
생식내분비학자인 찬나 자야세나 교수는 "이는 매우 위험한 일"이라며 "일부 약물은 혈전을 유발할 수 있고,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으면 외형에 영향을 줄 정도의 여성형 유방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BBC는 테스토스테론 대체요법(TRT)을 받은 뒤 생식 능력을 회복하기 위해 이른바 생식력 '스택'을 복용하고 있는 세계 각국의 남성 7명을 인터뷰했다. 스테로이드와 같은 약물을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것은 불법인 만큼, 이들은 신원 공개를 원하지 않았다.
인터뷰에 응한 한 남성은 HMG와 HCG를 "고용량으로 복용하면" 많은 아이를 가질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고 답했다.
'자말'(가명)은 보디빌딩을 위해 고용량의 테스토스테론과 스테로이드를 복용했고, 그 결과 생식 능력이 저하됐다. 그는 자신과 배우자가 아이를 갖는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지난해 말 약물 복용을 중단했다.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와 유튜브에서 자신과 같은 약물을 복용했던 남성들의 생식력 관련 조언을 접했고, 이들이 소개하는 '실패할 가능성이 없는' 생식력 '스택'을 알게 됐다.
자말은 "온라인에서는 '이렇게 복용하면 된다', '다들 이렇게 한다'는 이야기가 많았다"며 "내분비내과 전문의를 찾아가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라는 건 알지만, 실제로는 그런 게시물들을 보고 약을 구매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방법으로도 효과를 보지 못한 그는 결국 전문적인 도움을 받기로 했고, 찬나 자야세나 교수를 찾아갔다. 그전까지는 의료진의 관리 없이 생식력 '스택'을 복용하는 것이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고 한다.
현재 자말은 자야세나 교수의 권고에 따라 생식력 '스택'을 포함한 모든 약물 복용을 중단했다. 6개월이 지난 지금 그의 자연적인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정자 생성을 자극하는 호르몬 수치는 여전히 낮은 상태다. 다만 자말과 자야세나 교수 모두 앞으로 호전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자야세나 교수는 남성 생식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긍정적이지만, 그만큼 정확한 정보가 부족한 '정보 공백'도 커졌다고 지적했다. 전문가의 도움을 쉽게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자말과 같은 남성들이 인플루언서의 조언에 의존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좋게 보면 정말 도움이 될 수 있는 치료 시기를 놓치게 만들 수 있고, 최악의 경우에는 오히려 해로운 행동을 하도록 부추길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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