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본선에 처음 출전한 카보베르데가 새 역사를 썼다.
대한민국 축구국가대표팀 이강인이 지난 24일(현지시간) 멕시코 몬테레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A조 조별리그 3차전 대한민국과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경기에서 0대 1로 패배한 후 아쉬워하고 있다 / 뉴스1
인구 52만 명의 아프리카 소국 카보베르데는 조별리그를 무패로 통과하며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32강 진출을 확정했다.
본선 진출 자체만으로도 큰 이변으로 평가받았던 팀이 스페인, 우루과이, 사우디아라비아를 상대로 단 한 번도 지지 않고 토너먼트에 오른 것이다.
반면 한국은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에 패한 뒤 다른 조 결과를 지켜봐야 하는 처지가 됐다. 카보베르데의 돌풍은 자연스럽게 한국 축구의 현주소와도 비교되고 있다.
월드컵 첫 출전 카보베르데, 3무로 32강 확정
카보베르데는 27일 오전 9시(한국시간)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스타디움에서 열린 조별리그 H조 최종전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0-0으로 비겼다.
이날 무승부로 카보베르데는 조별리그 3경기에서 모두 비기며 승점 3점을 확보했다. 스페인, 우루과이, 사우디아라비아를 상대로 3무를 기록한 카보베르데는 조 2위로 32강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32강 진출...카보베르데 / 카보베르데 보지냐 인스타그램
결과만 놓고 보면 무승부였지만 의미는 컸다. 카보베르데는 이번 대회가 월드컵 본선 첫 출전이다. 국제 무대에서 이름값이 높은 팀도 아니었다. 대회 전만 해도 조별리그 통과를 예상한 시선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카보베르데는 첫 경기부터 예상을 뒤집었다. 스페인을 상대로 90분 동안 버티며 0-0 무승부를 거뒀다. 이어 우루과이와의 2차전에서는 2-2로 비기며 다시 한 번 세계 축구계를 놀라게 했다.
그리고 마지막 사우디아라비아전에서도 패하지 않았다. 결국 카보베르데는 월드컵 첫 출전 대회에서 무패로 32강에 오르는 대반전을 완성했다.
스페인·우루과이도 못 꺾었다…‘복병’ 넘어 돌풍의 주인공
카보베르데의 조별리그 통과가 더 놀라운 이유는 상대들의 면면 때문이다.
H조에는 스페인과 우루과이가 있었다. 두 팀 모두 월드컵 무대에서 오랜 전통과 경쟁력을 갖춘 팀이다. 카보베르데가 이들과 같은 조에 묶였을 때만 해도 조별리그 통과를 낙관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첫 경기부터 흐름이 달라졌다. 카보베르데는 스페인의 공세를 끝까지 막아냈다. 특히 골키퍼 보지냐의 선방이 빛났다. 스페인을 상대로 무실점 경기를 펼치며 본선 첫 경기에서 값진 승점을 챙겼다.
우루과이전에서는 더 강렬한 장면을 만들었다. 카보베르데는 전반 21분 케빈 피나의 득점으로 역사상 첫 월드컵 골을 기록했다. 이후 막시 아라우호와 아구스틴 카노비오에게 연속 실점하며 역전을 허용했지만, 엘리오 바렐라의 득점으로 다시 균형을 맞췄다.
결국 우루과이전도 2-2 무승부였다. 카보베르데는 강호들을 상대로 단순히 버틴 것이 아니라, 공격적으로 맞서며 승점을 따냈다.
사우디아라비아전에서도 주도권을 내주지 않았다. 카보베르데는 높은 점유율을 바탕으로 경기를 운영했고, 세메도와 몬테이로를 앞세워 여러 차례 기회를 만들었다. 후반에도 멘데스의 돌파와 몬테이로의 슈팅, 교체 투입된 두아르테의 결정적인 슈팅으로 골문을 두드렸다.
끝내 득점은 나오지 않았지만, 사우디의 측면 공격과 세트피스를 침착하게 막아내며 0-0 무승부를 지켰다. 같은 시각 스페인이 우루과이를 꺾으면서 카보베르데는 조 2위로 32강 진출을 확정했다.
“우린 작지만 꿈은 크다”…보지냐가 남긴 말
미친 선방쇼 보지냐 / 카보베르데 보지냐 인스타그램
경기 종료 후 카보베르데 선수들은 곧바로 환호했다. 일부 선수들은 가족들과 사진을 찍으며 역사적인 순간을 자축했다.
카보베르데의 돌풍을 상징하는 인물은 골키퍼 보지냐다. 그는 조별리그 내내 안정적인 선방을 보여주며 팀의 무패 통과를 이끌었다.
보지냐는 사우디아라비아전 종료 후 영국 공영방송 BBC를 통해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는 “우리는 작은 국가이지만 모두가 알듯이 월드컵에서 경쟁하고 있다”며 “카보베르데에는 수준 높은 선수들이 매우 많다”고 말했다.
이어 “카보베르데 선수들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볼 수 있지만 경쟁력이 충분하다. 빅리그든 어디서든 뛸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국민들을 향한 메시지도 남겼다.
보지냐는 “카보베르데 사람들에게 보답하고 싶다. 우리만의 열정을 보여주며 조국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 “월드컵에 카보베르데를 대표해서 왔다. 카보베르데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다. 우린 작지만 꿈은 크다”고 덧붙였다.
이 말은 카보베르데의 이번 월드컵을 압축한다. 작은 나라라는 한계를 앞세우지 않고, 오히려 그 한계를 넘어 세계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을 결과로 증명했다.
다음 상대는 아르헨티나…한국과 엇갈린 32강 희비
대한민국 축구국가대표팀 손흥민과 이강인이 27일(현지시간) 멕시코 과달라하라 인근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의 베이스캠프 훈련장인 치바스 바예 베르데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 뉴스1
카보베르데의 다음 상대는 디펜딩 챔피언 아르헨티나다.
카보베르데는 다음 달 4일 오전 7시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가든스의 마이애미 스타디움에서 아르헨티나와 32강전을 치를 예정이다.
상대는 리오넬 메시를 중심으로 뭉친 강팀이다. 전력 차는 분명하다. 하지만 카보베르데는 이미 조별리그에서 스페인과 우루과이를 상대로 패하지 않았다. 아르헨티나를 상대로도 쉽게 물러서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부비스타 감독도 역사적인 맞대결을 앞두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는 “무엇보다도 아르헨티나와 경기를 할 수 있게 되어 자랑스럽다”며 “역사적인 시기에 아르헨티나와 메시를 상대한다는 건 결과와 상관없이 조국에 매우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카보베르데의 기적 같은 32강 진출은 한국 축구와도 묘하게 대비된다.
한쪽은 월드컵 본선 첫 출전에서 무패로 토너먼트 무대를 밟았고, 다른 한쪽은 마지막까지 경우의 수에 매달리다 끝내 조별리그에서 멈춰 섰다.
대한민국 축구국가대표팀 손흥민이 27일(현지시간) 멕시코 과달라하라 인근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의 베이스캠프 훈련장인 치바스 바예 베르데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 뉴스1
홍명보호는 사흘간 이어진 ‘희망 고문’ 끝에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씁쓸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28일(한국시간) 조별리그 K조 경기 결과에 따라 조 3위 팀 간 경쟁에서 32강 진출 마지노선인 8위 밖으로 밀려났다.
남아 있던 J조 최종전 결과와 관계없이 한국의 탈락은 이 시점에서 확정됐다. 더 이상 경우의 수는 남지 않았다.
한국 축구가 월드컵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한 건 2018년 러시아 대회 이후 8년 만이다.
홍명보호는 2010 남아공 월드컵, 2022 카타르 월드컵에 이어 통산 세 번째 원정 16강 진출이자, 사상 첫 2회 연속 원정 토너먼트 진출에 도전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결과는 뼈아프다. 한국이 월드컵 본선에서 조별리그 탈락을 기록한 건 1954년 스위스, 1986년 멕시코, 1990년 이탈리아, 1994년 미국, 1998년 프랑스, 2006년 독일, 2014년 브라질, 2018년 러시아 대회에 이어 이번이 9번째다.
이번 대회는 참가국이 기존 32개국에서 48개국으로 확대된 첫 월드컵이다. 그럼에도 한국은 32강에도 오르지 못했다. J조 최종 결과에 따라 한국의 최종 순위는 33위 또는 34위로 정해질 전망이다.
종전 32개국 체제 기준으로 보면 사실상 본선 진출권 밖에 해당하는 순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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