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안에 바캉스 차리는 사람들[사(Buy)는 게 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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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안에 바캉스 차리는 사람들[사(Buy)는 게 뭔지]

이데일리 2026-06-28 09:11:58 신고

[이데일리 신수정 기자] 사(Buy)는 게 뭔지:사는(Live) 게 팍팍할 때면, 우리는 무언가를 삽니다(Buy). 경제지 기자가 영수증 뒤에 숨겨진 우리의 마음을 읽어드립니다. 도대체 남들은 뭘 사고, 왜 열광할까요? 물건의 스펙보다는 ‘그걸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합니다. 장바구니를 보면 시대가 보이고, 결제 내역을 보면 내 마음이 보이니까요. 소비로 세상을 읽는 시간, <사(buy)는 게 뭔지> 입니다.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입국장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입국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입국장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입국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휴가는 원래 떠나는 것이었다. 캐리어를 끌고, 공항버스를 타고, 낯선 침대에 몸을 던지는 일이었다. 그런데 요즘 휴가는 조금 다르다. 비행기표 대신 하이볼을 사고, 호텔 조식 대신 냉동 크루아상을 굽고, 리조트 수영장 대신 거실 바닥에 선풍기를 틀어둔다. 멀리 가진 못해도 여름 기분만큼은 포기할 수 없어서다. 집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집을 잠깐 휴가지처럼 꾸미는 소비가 여름 장바구니를 바꾸고 있다.

고물가 시대의 휴가는 생각보다 계산적이다. 항공권, 숙박비, 렌터카, 식비를 더하다 보면 출발하기도 전에 마음이 먼저 지친다. 주말 하루 쉬자고 몇십만원을 쓰기엔 통장이 너무 진지하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여름을 보내기엔 억울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절충안을 고른다. 멀리 떠나는 대신 집 안에 휴가의 일부를 들여놓는 방식이다.

이 장바구니에는 거창한 물건이 담기지 않는다. 편의점 RTD 하이볼, 논알코올 맥주, 컵얼음, 냉장 안주, 밀키트, 과일컵, 아이스크림, 냉동 디저트 정도다. 여기에 조명 하나, 향초 하나, 빔프로젝터 하나가 더해지면 방은 순식간에 ‘동남아 리조트풍 원룸’이 된다. 물론 창밖은 여전히 아파트 주차장이고, 침대 옆에는 빨래 건조대가 서 있다. 그래도 괜찮다. 집캉스의 핵심은 완벽한 휴가가 아니라, 휴가인 척하는 데 있다.

유통업계도 이 기분을 안다. 편의점과 마트는 여름마다 홈술, 간편식, 디저트 상품을 앞세운다. 최근에는 캔 하이볼과 논알코올 주류, 소용량 와인처럼 부담 없이 기분을 낼 수 있는 상품군이 넓어졌다. 냉장 안주도 단순한 마른안주에서 닭강정, 감바스, 타코야키, 회오리감자처럼 ‘밖에서 먹던 맛’을 집으로 옮기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소비자는 외식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외식의 장면만 집 안으로 가져오는 셈이다.

집캉스 소비가 단순한 절약만은 아니다. 오히려 작은 사치에 가깝다. 30만원짜리 숙소는 참아도, 3900원짜리 컵얼음과 6900원짜리 하이볼, 1만원대 안주 세트는 쉽게 산다. 큰돈을 쓰지 않았다는 안도감과 그래도 무언가를 즐겼다는 만족감이 동시에 온다. 여행을 통째로 사기 어려워진 사람들이 휴가를 조각내 사는 것이다. 바다 대신 파란 캔을 사고, 호텔 바 대신 편의점 얼음컵을 사고, 낯선 도시 대신 넷플릭스 배경 화면을 산다.

재미있는 건 이 소비가 꽤 적극적이라는 점이다. 집에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대충 먹는 게 아니다. 오히려 집에 있기 때문에 더 신경 쓴다. 예쁜 잔에 음료를 따르고, 접시에 안주를 옮겨 담고, 조명을 낮춘다. 배달 음식 포장 용기 그대로 먹으면 야식이지만, 그릇에 옮기고 얼음잔을 곁들이면 근사한 집캉스가 된다. 같은 돈을 써도 중요한 건 맛보다 연출이다. 요즘 장바구니는 배를 채우는 동시에 기분을 편집한다.

결국 집캉스 장바구니는 포기의 결과물이 아니다. 비싸서 못 떠난 사람들의 우울한 대체재도 아니다. 얇아진 지갑으로도 여름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겠다는 생활의 기술에 가깝다. 휴가의 전부를 살 수 없다면, 휴가 같은 순간이라도 사겠다는 마음이다. 떠나지 않아도 잠깐은 낯선 기분이 필요하고, 아무 일 없는 주말에도 괜히 얼음 부딪히는 소리는 듣고 싶은 법이다.

올여름 누군가는 공항 면세점에서 선글라스를 고르고, 누군가는 집 앞 편의점에서 컵얼음 두 개를 고를 것이다. 전자는 휴가고 후자는 일상이라고 말하기엔, 둘 다 결국 같은 마음에서 출발한다. 조금 덜 팍팍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 오늘 하루만큼은 내가 사는 방이 아니라, 내가 고른 휴가지에 머무는 기분을 갖고 싶다는 마음. 그래서 이번 주말에도 사람들은 장바구니를 편다. 멀리 떠나진 못해도, 여름을 그냥 보내진 않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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