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팝콘] 당하면 당연히 신고?...통계로 본 성폭력에 대한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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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팝콘] 당하면 당연히 신고?...통계로 본 성폭력에 대한 오해

투데이신문 2026-06-26 17:35:44 신고

3줄요약

본 기사는 데이터를 중심에 둔 인터랙티브 뉴스입니다. 취재 과정에서 확보한 통계와 수치를 독자가 직접 확인하고 해석할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단순히 결과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데이터 분석을 통해 현안을 구조적으로 짚고 그에 따른 정책적·사회적 대안을 도출하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래프와 도표는 마우스 클릭 또는 터치로 항목을 선택해 자세히 볼 수 있으며 특정 구간을 비교하거나 세부 수치를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투데이신문 이태환 정채원 인턴기자】성평등가족부가 지난 23일 발표한 ‘2025년 성폭력 안전실태조사’는 우리가 성범죄에 대해 당연하게 여겨온 인식을 데이터로 뒤집는다.

해당 조사는 지난해 8월부터 10월까지 만 19세 이상 64세 이하 성인 남녀 1만151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조에 따라 3년마다 실시하는 국가승인통계로, 성폭력 실태 파악과 관련 정책 수립의 기초자료로 활용된다.

이번 데이터 팝콘에서는 이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성범죄를 둘러싼 대표적인 오해 4가지를 데이터로 짚어본다.

 

“낯선 사람이 위험하다?” 사실은 가장 가까운 사람이 위험하다

성폭력 하면 흔히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어두운 골목, 모르는 사람의 갑작스러운 위협 등이다. 하지만 이번 조사 데이터는 전혀 다른 현실을 보여준다.

불법촬영물 및 허위영상물 피해를 경험한 여성 응답자를 대상으로 가해자 유형을 조사한 결과 전 애인에 의한 피해 비율이 2022년 13.8%에서 지난해 42.5%로 3년 만에 3배 이상 증가했다. 애인에 의한 피해는 10.3%에서 18.1%로, 배우자에 의한 피해는 6.0%에서 13.4%로 각각 늘어났다. 

불법촬영물 및 허위영상물 유포 피해에서도 배우자(18.8%), 전 배우자(13.4%), 애인(11.0%), 전 애인(10.3%) 순으로 친밀한 관계의 가해자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성추행 피해에서도 전 애인 가해자 비율이 5.6%에서 14.6%로 크게 늘었다. 전반적인 성폭력 피해율이 감소하는 추세 속에서도 애인이나 배우자 등 가까운 관계에서 발생하는 성폭력만큼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최란 부소장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성폭력 피해에 대해 많은 사람이 ‘낯선 사람으로부터, 어두운 밤길에’ 당하는 것을 전형적인 피해로 여긴다”며 “실제로는 아는 사람, 더 나아가 친밀한 관계에 있던 사람으로부터의 피해가 더 많이 보고되고 있다는 측면에서 교제 폭력에 대한 적극적인 입법적 노력이 필요한 상태”라고 말했다.

 

“동의 없으면 강간이다?”... 법은 아직 현실을 따라오지 못했다

동의하지 않은 성행위는 법적으로 강간일까. 현행 형법상 강간죄는 폭행 또는 협박을 수단으로 삼아 피해자를 항거불능 상태로 만든 뒤 간음을 해야 성립한다. 하지만 실제 피해 상황은 그 틀에 맞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다.

강간(미수 포함) 피해 당시 상황을 물은 결과 가해자의 ‘강요’가 84.4%로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이어 속임(47.7%), 협박(47.6%), 폭언(42.0%), 회유(31.0%), 폭행(25.5%) 순이었다. 법이 강간죄 성립 요건으로 삼는 폭행 및 협박보다 법적 요건 밖에 있는 강요와 속임을 경험한 피해자가 훨씬 많았다. 동의 없이 이뤄진 성폭력임에도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의미다.

최 부소장은 “실제 강간 피해 당시 폭행 및 협박보다 강요나 속임 등을 경험했다는 응답이 더 많았다”며 “이는 법과 현실의 괴리를 보여주는 결과”라고 짚었다. 이어 “강간죄를 동의 여부로 판단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피해자라면 당연히 신고하겠지?”...실제 신고율은 1.8%였다

성폭력 피해를 당하면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실제로 이번 조사에서 “성폭력 피해자라면 피해 후 바로 경찰에 신고할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38.4%에 달했다. 하지만 실제로 경찰에 신고한 비율은 1.8%(여성 2.4%, 남성 0.7%)에 불과했다. 대중의 통념과 피해자가 마주하는 현실 사이에 얼마나 큰 간극이 있는지 보여주는 수치다.

신고하지 않은 이유로는 여성의 71.0%, 남성의 76.8%가 ‘피해가 심각하지 않아서’라고 답했다. 피해 자체가 가벼웠다는 의미보다 “이 정도는 참아야 하는 일”이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피해자 자신의 판단에 영향을 미친 결과로 해석해야 한다. 여성의 31.6%, 남성의 23.4%는 ‘신고해도 소용없을 것 같아서’를, 여성의 31.5%, 남성의 24.9%는 ‘확실한 증거가 없어서’를 이유로 꼽았다. 피해를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는 부담과 사법 절차에 대한 낮은 신뢰도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최 부소장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모두 경찰에 신고하지는 않는다”며 “특히 가해자가 친밀한 관계의 사람이라면 법적 고소를 선택하는 데까지 굉장히 긴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는 점을 사람들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인식은 좋아졌다”는데 2차 피해는 오히려 늘었다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분명 개선되고 있다. “노출이 심한 옷차림 때문에 성폭력이 발생한다”, “술에 취한 피해자에게도 책임이 있다” 같은 인식에 동의하는 비율은 해마다 줄고 있다. 그런데 정작 피해자들이 실생활에서 겪는 현실은 제자리다.

성폭력 피해 여성의 2차 피해 경험은 오히려 늘어났다. “피해 사실을 말해봐야 너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경험은 2016년 3.1%에서 지난해 16.0%로 5배 이상 증가했다. “네가 그런 행동을 할 여지를 줬다”며 피해 원인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경험을 한 비율도 같은 기간 3.8%에서 12.6%로 3배 이상 늘었다. 성폭력을 나쁘게 보는 공감대는 형성됐지만 실제로 피해자 곁에 있는 사람들의 반응은 여전히 2차 피해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최 부소장은 “주변에 성폭력 피해를 경험했다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판단도 하지 말고 그 사람이 겪고 있는 어려움에 공감하는 것만으로도 2차 피해는 충분히 예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성폭력 상담 기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오해 불식시키려면...공동체적 노력 필요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이번 조사는 우리 사회가 지니고 있던 편견과 오해를 여실히 드러낸다.

어긋난 사회 통념은 하루아침에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오해에서 비롯되는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과 교육, 캠페인 등의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해야 한다. 이러한 국민 인식 개선과 더불어 정부 차원의 대응 역시 필요할 것이다.

성평등가족부 관계자는 본보에 “대국민 인식개선 홍보를 추진 중에 있다”며 “오는 7월과 9월에 불법촬영과 관련된 예방 포스터와 가이드를 배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기관 담당자들의 2차 피해 대응을 돕기 위해 ‘성희롱·성폭력 예방 및 2차 피해 방지 지침’ 표준안을 마련해 중앙행정기관, 지방 정부, 교육기관 등에 배포하고 있다”며 “또 언론 보도 시에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지난해 개정된 ‘여성폭력방지기본법’에 따라 ‘여성폭력 사건보도 권고기준’을 오는 7월부터 시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성폭력 안전실태조사는 내년부터 가정폭력·스토킹 실태조사와 통합돼 ‘여성폭력 실태조사’로 개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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