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단속 넘어 현지 주민 자립 도와…연간 9.4t 불법 생산 억제 기대
(서울=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 국경을 넘어온 뒤에 쫓으면 이미 늦다. 북미 지역의 강력한 마약 단속에 막힌 중남미 마약 밀매 조직들이 대한민국을 새로운 표적으로 삼으면서, 사후 적발 위주의 기존 단속 방식이 한계에 다다랐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지구 반대편 코카인 생산지 한복판으로 들어가 마약 재배 자체를 억제하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의 선제적인 생산지 차단 전략이 26일 '세계 마약 퇴치의 날'을 맞아 주목받는다.
현재 바다를 통해 국내로 몰래 들어오다 적발된 마약의 21%는 콜롬비아, 페루 등 중남미 지역에서 출발했다. 마약 밀매 조직들은 전 세계 주요 항구를 복잡하게 거치며 출발지를 철저하게 숨긴다.
따라서 국내로 들어온 마약을 찾아내는 데도 막대한 혈세와 수사력이 소모될 수밖에 없다.
코이카는 이런 악순환을 끊기 위해 불법 코카인 밭을 품질 좋은 커피 농장으로 바꾸는 '대체개발'(Alternative Development·AD)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대체개발은 마약 작물을 재배하던 농민들에게 합법적이고 소득이 보장되는 고부가가치 대체 작물의 재배 기술을 지원하고 판로를 개척해 줌으로써, 불법 마약 생태계를 근본적으로 해체하는 개발협력 방식이다.
마약이 한국행 배에 오르기 전 현지 생산지를 먼저 없애버림으로써 우리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국익형 공적개발원조(ODA)'인 셈이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의 '세계 마약 보고서 2025'에 따르면 안데스산맥 3개국(콜롬비아·페루·볼리비아)의 코카인 재배지 면적은 30만㏊(3천㎢)에 달한다. 볼리비아는 세계 코카인 공급량의 약 12.5%를 차지한다.
UNODC는 볼리비아 차파레 지역에서 대체작물 지원을 통해 5년간 코카 재배면적을 3만500ha에서 2만3천ha로 32% 줄여 성과를 낸 바 있다. 이 기간 마약 작물 제거 활동 규모는 7천237㏊에서 1만1천174㏊로 증가했다.
코이카는 이 성과를 바탕으로 UNODC, 볼리비아 정부와 함께 라파스 주 융가스 지역에서 '혼농임업 기반 커피 생산성 향상 및 상업화를 통한 코카잎 불법 재배 감축 및 지역경제 활성화 지원사업'을 진행 중이다.
효과는 숫자로 뚜렷하게 증명되고 있다.
현재까지 코카 재배지에서 커피 등 대체 작물로 전환이 완료된 토지는 총 197㏊다. 이 규모의 전환만으로도 연간 약 2톤의 코카인 생산이 억제되는 것으로 분석된다.
코이카와 UNODC가 설정한 사업의 최종 목표인 888㏊ 전환이 달성될 경우, 연간 약 9.4t(톤)에 달하는 잠재적 코카인 생산량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된다.
이 사업은 마약 통제를 넘어 현지 주민의 실질적 자립과 식량안보 강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현재 223명의 현지 농민(여성 29.6%)이 사업에 참여 중이며, 15개 사업 대상 공동체에 26개의 커피 묘목장과 61개의 가정 채소정원이 새롭게 조성됐다.
생산된 고품질 스페셜티 커피는 한국 기업 '카페 온 더 플랜'(Caffe On the Plan)과의 연계를 통해 국내 시장 직접 유통도 추진되고 있어, 향후 유통이 가시화한다면 현지 농민들에게 안정적인 판로를 제공할 것으로 예상된다.
융가스 지역 농민 프란츠 산토스 아파사 씨는 "조부모 시절 병충해와 시장 침체 등 때문에 많은 농가가 코카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며 "가격 변동이 심해 수입이 불안정한 코카 대신 유기비료를 사용한 친환경 커피를 재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누군가 내가 마음으로 키운 커피를 마실 때, 볼리비아 로스 융가스에서 온 제품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좋겠다"며 "언젠가 이 커피가 한국에도 수출되기를 꿈꾼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차은주 코이카 볼리비아 사무소장은 "과거 새마을운동을 통해 농촌개발을 추진한 우리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며 "생산자 조직 스스로 유기농·공정무역 인증을 획득하고, 국제 시장에서의 유리한 가격 협상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커피 가치사슬 내에서 제약받던 여성들의 리더십을 키우고 있다"며 "청년들이 고품질 커피를 생산하고 디지털 마케팅·바리스타 등 전문성을 쌓아 고향을 떠나지 않고 새로운 일자리를 얻을 수 있도록 미래 세대에 투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서영 코이카 부소장도 "마약 밀매와 빈곤 문제는 한 국가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국제적 사안"이라며 "단순한 물리적 단속을 넘어, 주민들에게 지속 가능한 경제적 대안을 주는 개발 중심의 접근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rapha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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