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투데이 이상원기자] 수백조 원 규모의 반도체 클러스터 입지를 둘러싸고 정치권과 지방자치단체 간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정부가 호남권을 중심으로 한 제2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영남권과 호남권은 물론, 호남 내부에서도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양상이다.
정부는 29일 청와대에서 열리는 국토 공간 대전환(지방균형국가) 민관 합동회의에서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및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의 호남 및 충청지역 투자 계획을 공개할 예정이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25일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과 청와대 만찬을 통해 삼성전자의 호남 반도체 투자 계획을 조율했으며, 지난 19일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만나 관련 논의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가 광주. 전남을 중심으로 새로운 반도체 클러스터를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영남권 정치권이 반발하고 나섰다.
국민의힘 영남권 의원들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산업 정책이 균형발전이라는 명분 아래 정치 논리에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며 "반도체 클러스터 관련 정책 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기업의 투자 판단에 정치적 개입이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가 전략산업은 경제성과 산업 경쟁력을 중심으로 육성해야 하며, 특정 지역 집중이 아니라 지역별 강점을 활용하는 균형 발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 이만희 의원은 SNS를 통해 "반도체 산업은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핵심"이라며 "광주·전남 통합은 순조롭게 추진되는 반면 대구·경북 통합은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또다시 '호남 특혜, 영남 소외'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무소속 한동훈 의원 역시 "반도체 공장 입지 결정이 정치권 내부 갈등의 소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김장호 구미시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구미 국가산업단지는 반도체 산업의 미래와 국가 균형발전을 위한 최적의 입지"라며 제5국가산업단지 2단계 부지에 대해 평당 1,000원 수준의 토지 공급을 포함한 파격적인 지원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호남권 내부에서도 광주 집중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더불어민주당 김의겸 의원은 "호남 반도체 투자 유치는 적극 환영하지만 '용인 올인'이 '광주 올인'으로 바뀌는 부작용은 막아야 한다"며 분산 투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전북에 한 기업, 광주와 전남에 각각 다른 기업을 배치하는 방식이 가장 효과적일 수 있다"고 제안했다.
전북 정치권에서도 광주에만 투자가 집중되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호남 내부에서도 지역 간 경쟁이 본격화되는 분위기다.
반면, 당사자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아직까지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현재까지 호남 투자설과 관련해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9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니케이포럼 이후 기자들과 만나 "전력과 용수, 인력, 토지 등 인프라가 충분히 갖춰진 곳이라면 투자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국내에서 여건이 맞지 않는다면 해외 투자도 검토할 수 있다"며 특정 지역보다 투자 여건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재계에서는 정치권이 지역 논리에만 집중하면서 산업 경쟁력의 본질이 가려지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재계 관계자는 "반도체 클러스터는 전력과 용수뿐 아니라 공급망, 물류, 전문인력 등 복합적인 요소가 갖춰져야 한다"며 "용인 클러스터 역시 오랜 준비 끝에 추진된 사업인데 이번 논의에서는 이러한 산업적 조건보다 정치적 논리가 앞서는 것 같아 우려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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