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의 아티라우는 북위 47도로 위도가 한국보다 매우 높다. 고위도 지역의 아침 기온이 17도로 우리의 가을 날씨 비슷하다. 8월 중순 카자흐 초원의 풍경은 가을로 변하는 황갈색이다.
카자흐스탄 국민은 세계에서 1인당 육류 소비량이 가장 많은 민족이라고 자랑한다. 이들은 스스로 늑대 다음으로 고기를 많은 먹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세계 아홉 번째로 영토가 넓은 카자흐스탄은 영토 대부분이 광활한 초원으로 돼 있다. 카자흐 초원은 지역마다 자라는 풀의 종류가 달라 풀을 먹고 자라는 소, 양의 고기맛이 지역마다 다르다고 한다. 카자흐인들이 특히 말고기를 가장 좋아한다는 사실에 놀랐다. 황무지를 닮은 황량한 초원은 구름이 낮게 깔려 더욱 을씨년스럽다.
영국의 유명한 시인 T S 엘리엇의 ‘황무지’ 시를 떠올린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며/기억과 욕망을 뒤섞어/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한 줌 먼지 속의 공포를 보여주리라.”
차가운 바람이 황량한 평야를 스쳐 지나간다. 단순하고 고요한 자연경관을 바라보며 지나가고 있다. 가까이에 산은 전혀 없고 남쪽 저지대에 카스피해가 있다. 우리는 카스피해 북쪽을 지나 곧 러시아 국경으로 들어갈 것이다.
카자흐스탄 국경에 도착했다. 카자흐스탄 출국 수속은 20여분 만에 끝났다. 며칠 전 큰 고생을 생각할 때 운이 좋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10㎞를 이동하면 우랄강 다리가 있다. 우랄강이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국경선이다. 우랄강을 건너면 러시아 병사가 총을 들고 서 있는 경비초소를 지나간다. 러시아 세관 통과를 기다리는 동안 역시 통관을 기다리는 카자흐스탄 트럭 기사와 도로 위에서 실없는 농담을 한다.
카자흐 트럭 기사는 우리 차에 부착된 지도를 보면서 한국에서 왔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나타낸다. 내가 트럭 기사에게 어디로 가는지 물어보니 러시아 볼가강 중류의 도시로 화물을 싣고 간다고 말한다. 우리는 서로 나이를 묻는다. 트럭 기사가 60세라고 한다. 내 나이를 알려주면서 트럭 기사에게 나를 형이라고 불러라 말하고 함께 웃는다. 다행히 러시아 입국 절차가 두 시간 만에 끝났다.
지리학에서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선은 우랄산맥이 기준이다. 우랄산맥 서쪽은 유럽 대륙, 동쪽은 아시아 대륙이다. 지리학자들은 유럽과 아시아를 합쳐 유라시아 대륙이라 부른다. 드디어 자동차로 아시아 대륙을 지나 유럽 대륙의 남러시아에 진입했다. 카스피해 북쪽의 지형은 저지대로 남러시아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다. 유라시아 대륙의 초원 은 동쪽부터 만주벌판–몽골초원–카자흐 초원–남러시아 초원 순서로 연결돼 있다.
기원전 7세기에서 기원전 3세기까지 카자흐 초원의 유목민 강자는 스키타이족이다. 고대 그리스인이 사카족이라고 불렀던 스키타이족은 흑해 북부, 카스피해 북쪽 남러시아 초원과 카자흐 초원에서 활동했던 종족이다. 스키타이문화의 특징은 사슴뿔 양식 등 동물 문양의 정교한 금세공이다. 1만㎞ 이상 멀리 떨어진 아시아 대륙의 동쪽 끝 신라 고분의 왕관에서 스키타이 금세공 양식이 발견됐다.
스키타이 금세공문화가 신라에 전달된 경로는 두 가지 학설이 있다. 하나는 스키타이족이 몽골고원을 통일한 흉노족에게 금세공문화를 전달하고 흉노족이 전수받은 스키타이 금세공문화를 중앙아시아와 만주 지방을 거쳐 한반도 동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와 신라의 계림으로 전달됐다는 학설이다.
다른 하나는 흉노족의 일파인 남흉노족이 기원전 한 무제에게 투항했다. 한 무제는 흉노족 족장에게 김일제라는 이름을 내렸다. 기원전 108년 한 무제는 낙랑군 등 한사군을 평양에 설치했다. 한나라는 항복한 흉노족을 군대로 차출해 변방의 낙랑군으로 보냈다. 서기 313년 낙랑군이 고구려에 멸망 당한 후 낙랑군에 살던 흉노족 출신 귀족들이 스키타이문화를 가지고 아직 부족 국가 상태인 신라로 이주, 스키타이문화를 전달했다는 설이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 문무왕 묘비에 ‘나의 조상은 투우 김일제’라는 비문의 발견으로 흉노족 후손과 경주김씨 연관성이 학계의 관심사다. 어느 학설이 맞는지 알 수 없지만 유럽 쪽 흑해 북부 러시아 초원의 스키타이문화가 오랜 세월에 걸쳐 신라의 경주로 온 것은 틀림없다. 우랄강을 통과한 후 몇 시간을 이동하면 러시아인들이 어머니 강이라고 부르는 볼가강 하류가 나타난다. 볼가강 하류는 삼각주 지역이라 많은 지류의 강으로 나뉘어 카스피해로 흘러간다.
볼가강 하류의 많은 지류에 콘크리트 다리가 설치돼 있는데 유독 한 곳은 전생 영화 세트에 나올 것 같은 출렁다리 부교(浮橋)가 설치돼 있다. 출렁다리 부교 건너는 요금이 차 한 대당 500루블(7천500원)이다. 약 100m의 강폭을 지나는 요금인데 매우 비싸다. 이 부교는 인구 52만명의 아스트라한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꼭 지나가야 하는 다리다. 아마 러시아 마피아 또는 공산당 실력자가 통행료 수입을 챙기려고 일부러 다리를 만들지 않는 것은 아닐까 추측하며 다리를 건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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