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사는 풍경] 강남 빌딩 숲에 홀로 누운 중종… 정릉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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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사는 풍경] 강남 빌딩 숲에 홀로 누운 중종… 정릉의 비밀

뉴스컬처 2026-06-25 18:25:2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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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왕과 사는 풍경> 은 1600만 관객을 모은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떠올리며 출발했다. 조선 왕릉은 우리 일상생활권에 있지만, 막상 선뜻 발걸음이 닿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왕릉을 낯선 유적으로만 두지 않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찾을 수 있는 장소로 다시 살펴보려 한다. [편집자주]

잔디 언덕 위 산릉을 정면에서 바라본 모습. 좌우 석호와 문인상이 호위하고 팔각 장명등이 중앙부를 지킨다. 사진=국가유산청 궁릉유적본부
잔디 언덕 위 산릉을 정면에서 바라본 모습. 좌우 석호와 문인상이 호위하고 팔각 장명등이 중앙부를 지킨다. 사진=국가유산청 궁릉유적본부

[뉴스컬처 이상완 기자] 서울 강남구 삼성동 빌딩 숲 사이로 낮은 담장과 울창한 송림이 모습을 드러낸다. 홍살문 안쪽 박석길은 정자각을 향해 곧게 뻗고, 뒤편 언덕에는 조선 제11대 임금 중종(中宗·1488년 4월 25일~1544년 12월 9일)의 정릉이 홀로 자리한다. 세 왕비를 맞았으나 어느 배우자 곁에도 눕지 못한 군주다. 생전에는 반정 공신과 사림, 외척 사이에서 흔들렸고 사후에는 천장과 침수, 왜란 도굴까지 겪었다. 화려한 강남의 속도와 달리 능역에는 왕권의 불안, 가족의 분리, 전쟁의 상흔이 겹겹이 남아 있다.

◇반정이 올린 임금, 선택권 없던 왕좌

중종은 1488년 성종과 정현왕후 윤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진성대군 이역은 1506년 연산군 폐위 직후 새 국왕으로 추대됐다. 왕좌는 승계 순서가 낳은 산물보다 박원종·성희안·유순정 등 거사 주도층의 정치적 계산에 가까웠다. 즉위 첫머리부터 사적인 의지는 밀렸다. 반정 세력은 연산군의 처남 신수근의 딸이라는 이유로 단경왕후 신씨 폐출을 압박했다. 국왕은 반대했으나 뜻을 지키지 못했다. 장경왕후 윤씨는 인종을 낳은 뒤 산후병으로 숨졌고, 문정왕후 윤씨가 새 중전이 됐다.

훈구를 견제하려 조광조 등 사림을 불러들였지만 급진 개혁은 기묘사화로 꺾였다. 뒤이어 김안로와 외척 세력이 권력을 나눠 가졌고, 동궁 저주 사건과 옥사가 궁중을 뒤흔들었다. 39년 재위는 긴 세월이었지만 주도권은 좀처럼 안정되지 않았다. 국가 운영은 혼란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홍문관 기능 강화, 구리활자 주조, '속삼강행실도'·'신증동국여지승람'·'대전후속록' 편찬은 제도와 지식의 틀을 다듬었다. 문화적 성과 뒤에는 사화와 숙청이 공존했다. 정릉을 걷는 일은 무능한 왕 또는 개혁 군주라는 한쪽 평가를 고르기보다 상반된 성취와 실패가 한 몸에 겹친 통치자를 만나는 경험이다. 왕의 무덤 역시 생전의 불안정한 처지와 닮았다.

울창한 송림이 감싼 중종 정릉 능침. 둥근 봉분 뒤로 곡장이 둘러서고 문석인·석마·장명등·망주석이 층위별 질서를 드러낸다. 사진=국가유산청 궁릉유적본부
울창한 송림이 감싼 중종 정릉 능침. 둥근 봉분 뒤로 곡장이 둘러서고 문석인·석마·장명등·망주석이 층위별 질서를 드러낸다. 사진=국가유산청 궁릉유적본부

 

◇세 왕비 곁을 모두 비켜 간 산릉

1544년 창경궁 환경전에서 숨을 거둔 중종은 이듬해 장경왕후(章敬王后 尹氏·1491년 8월 19일~1515년 3월 26일) 희릉 오른편에 안장됐다. 인종에게 어머니 곁은 부왕을 모실 가장 자연스러운 자리였다. 왕 생전 희릉 인근을 원했다는 뜻도 작용했다. 능호는 한때 희릉을 따랐으나 예법 논의 끝에 정릉으로 고쳐졌다. 안식은 오래가지 않았다. 문정왕후(文定王后 尹氏·1501년 12월 12일~1565년 5월 15일)는 풍수상 불길하다는 논리를 내세워 천장을 추진했고, 1562년 삼성동 선릉 동쪽 언덕으로 옮겨졌다. 공식 명분은 지세였으나 사관은 다른 속내를 적었다. 문정왕후가 사후 남편과 나란히 묻히려 했다는 비판이었다.

새 터는 중종의 부모인 성종·정현왕후 능침과 가까웠지만 계비의 소망은 성사되지 못했다. 문정왕후는 태릉에 따로 묻혔고, 단경왕후(端敬王后 愼氏·1487년 2월 16일~1558년 1월 6일)는 온릉, 장경왕후는 희릉에 남았다. 세 차례 혼인과 세 갈래 매장지는 왕실 혼사가 애정만으로 굴러가지 않았음을 드러낸다. 왕비의 친정, 세자 계승, 외척 이해관계가 죽은 사람의 주소까지 정했다. 정릉은 부부의 묘보다 조정 정치가 새긴 지형에 가깝다.

◇길지라 옮겼지만 장마에 잠긴 터

풍수를 앞세운 천장은 역설을 낳았다. 삼성동 새 자리는 지대가 낮아 큰비가 오면 물이 정자각 섬돌 밑까지 밀려들었다. '선조실록'에는 재실에서 배를 타고 오갔다는 기록도 남는다. 왕릉 입지는 산세와 수맥, 제례 동선, 배수 조건이 복합적으로 작동하는 거대한 토목 계획이었다. 관념적 길흉에 치우친 선택은 실제 지세 앞에서 약점을 드러냈다.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뻗은 향어로는 혼령과 참배자의 길을 높이로 구분한다. 왼편 향로가 조금 높고, 오른쪽 어로는 낮다. 박석 위를 걷다 보면 몸의 자세가 자연스레 조심스러워진다.

연꽃과 구름무늬가 새겨진 석등. 지붕처럼 솟은 개석 아래 화창이 뚫렸으며 뒤편 혼유석과 푸른 봉토가 깊이를 더한다. 사진=국가유산청 궁릉유적본부
연꽃과 구름무늬가 새겨진 석등. 지붕처럼 솟은 개석 아래 화창이 뚫렸으며 뒤편 혼유석과 푸른 봉토가 깊이를 더한다. 사진=국가유산청 궁릉유적본부

 

정자각 뒤 신계와 신교는 제향을 마친 혼백이 봉분으로 돌아간다는 상징을 담았다. 언덕 경사는 약 25%에 달해 오르는 사람에게 허리를 낮추도록 요구한다. 건축은 말없이 예법을 가르치고, 높낮이는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를 새긴다. 정청과 배위청이 합쳐진 丁자형 건물은 출입 방향까지 엄격히 나눈다. 혼백은 가운데 신문을 이용하고, 헌관은 동쪽 계단으로 올라 예를 올린 뒤 정해진 쪽으로 내려온다. 제례가 끝나면 지방과 제물을 태우거나 묻는 예감으로 이동한다. 방문자는 구조를 따라 걷는 동안 왕실 의식의 순서와 몸가짐을 자연스레 익힌다.

도심 개발은 초입의 기억을 크게 지웠다. 연지와 재실, 금천교, 수라간, 수복방은 현재 확인하기 어렵다. 1970년대 항공사진에 남았던 흔적마저 도로와 건물 아래 사라졌다. 지금 보이는 정문 안쪽만으로 옛 제례 여정을 온전히 상상하기 힘든 까닭이다. 옛 참배길은 궁궐에서 뚝섬을 거쳐 청담리, 봉은사, 재실, 연지, 금천교를 차례로 지났을 가능성이 크다. 봉은사는 정릉 제향에 필요한 물품과 인력을 마련한 조포사였다. 선릉 의식도 맡았던 사찰인 만큼 왕실 산릉과 깊은 관계를 맺었다.

현대 관람객은 입구에서 곧장 홍살문을 만나지만 과거 행렬은 물길과 절, 살림채를 지나며 속세의 리듬을 낮췄다. 사라진 시설은 제사를 준비시키는 시간의 장치였다. 복원 논의도 건물 숫자를 채우는 데서 멈추면 부족하다. 옛 길의 방향, 연못 규모, 지형 경사, 식생까지 묶어 읽어야 장소의 감각이 되살아난다.

◇왜란이 파헤친 광중, 주인을 잃은 시신

1592년 왜군이 도성을 점령한 뒤 선릉과 정릉은 가까운 위치 탓에 모두 도굴 피해를 입었다. 1593년 봉심에 나선 관리가 광중에서 옷이 벗겨진 육신을 발견했다. 문제는 몸이 중종인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는 점이다. 원로 대신, 종친, 환관, 궁녀까지 불려왔다. 생전 얼굴을 기억하던 사람들은 이미 늙었고, 전해진 외모와 발견된 신체도 일치하지 않았다. 조정은 끝내 왕의 유해로 확정하지 못했다. 의대만 다시 묻고, 신원 미상 육신은 근처 깨끗한 땅에 매장했다.

무덤은 왕권의 영속성을 상징하지만 전쟁은 이름과 몸의 관계마저 끊었다. 죽은 군주의 신체를 식별하려 궁중 기억을 총동원한 과정은 묘역 훼손이 건축 손실에 국한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왕조의 기억, 제례의 정당성, 혈통의 표지가 한꺼번에 흔들린 사건이었다. 복구 뒤에도 상처는 지워지지 않았다. 개장 절차를 거쳐 현재 자리에 봉안했으나 정릉은 국왕의 옥체를 모셨다고 확언하기 어려운 능묘가 됐다. 이름은 남았지만 주인의 육신은 불분명하다. 왕실 권위가 가장 서려있어야 할 공간에서 정체성의 공백이 생긴 셈이다.

정자각에서 왕의 무덤까지 길게 펼쳐진 제향 영역. 넓은 초지 양옆을 소나무 군락이 에워싸며 도심 속 성역의 규모를 보여준다. 사진=국가유산청 궁릉유적본부
정자각에서 왕의 무덤까지 길게 펼쳐진 제향 영역. 넓은 초지 양옆을 소나무 군락이 에워싸며 도심 속 성역의 규모를 보여준다. 사진=국가유산청 궁릉유적본부

 

◇돌사람의 과장된 몸, 중기로 향한 조각

능침에 오르면 둥근 봉분 둘레로 병풍석과 난간석이 감싼다. 면석에는 십이지신상이 새겨졌고, 구름무늬와 연꽃 장식이 돌 표면을 채운다. 문석인과 무석인은 키 3m 안팎의 육중한 체구를 드러낸다. 15세기 석상이 아담하고 평면적인 선을 택했다면 16세기 조형은 굵은 윤곽, 부풀린 신체, 과감한 비례를 선호했다. 성종의 선릉, 장경왕후 희릉, 문정왕후 태릉 석물과 닮은 양식은 비슷한 시기 장인 집단이나 감독 체계의 연관 가능성을 떠올리게 한다.

봉분 주변 석양과 석호는 수호자 역할을 맡고, 장명등은 중계 중앙에서 의례 공간의 중심을 잡는다. 상계에는 혼유석과 망주석, 중계에는 문인상과 석마, 하계에는 무인상이 자리한다. 계단식 높이는 신분과 기능을 돌로 번역한 설계다. 가까이 살펴보면 표정은 엄숙하지만 몸집은 다소 과장돼 있다. 권위는 섬세한 사실성보다 규모와 질량에서 발생한다.

오랜 풍우 탓에 면석 마모가 심하고, 일부 인석은 근대 복원품이다. 병풍석 12면에 새긴 십이지신은 공복과 관모를 갖춘 인신형이다. 홀을 쥔 모습은 무덤 아래 세계에도 조정의 질서가 지속된다는 관념을 전한다. 난간석 기둥에는 연봉, 앙련, 복련, 연주문이 촘촘히 새겨졌다. 부드러운 식물 문양과 거대한 무인상의 대비는 엄숙함 속 장식 취향을 드러낸다. 보존은 낡은 부분을 새것처럼 바꾸는 작업보다 원재료, 손상 흔적, 후대 수리의 층위를 읽어내는 태도에 가깝다. 숲 또한 역사의 일부다. 능침 둘레 송림은 성역의 위엄을 세우고 토양 유실을 막는다.

갈참나무, 졸참나무, 서어나무, 복자기 등이 층을 이루며 근대 사방사업 과정에서 들어온 아까시나무와 리기다소나무도 남아 있다. 외래 수종 제거만 서두르기보다 토질, 일조량, 지피식생, 경사면 안정성을 고려한 관리가 필요하다. 지나치게 빽빽한 수관은 햇빛을 막아 땅을 헐겁게 하고 폭우 때 흙이 깎이는 원인이 된다. 왕릉 숲은 오랫동안 돌본 문화경관이다. 손을 놓는 방식만으로 원형을 지킬 수 없다.

붉은 목재와 녹색 창호가 선명한 정자각. 열린 신문 너머로 가파른 사초지와 중종의 능묘가 한눈에 들어온다. 사진=국가유산청 궁릉유적본부
붉은 목재와 녹색 창호가 선명한 정자각. 열린 신문 너머로 가파른 사초지와 중종의 능묘가 한눈에 들어온다. 사진=국가유산청 궁릉유적본부

 

◇빌딩 숲 옆 고요, 낯선 유적을 생활권으로

삼성동 정릉은 도시 한가운데 자리한 성역이다. 지하철과 업무지구, 주택가, 상업시설이 둘러싼 강남 중심부에서 소나무 숲과 잔디 언덕이 갑자기 나타난다. 일상의 속도는 담장 안에서 낮아지고, 걷는 발걸음은 왕의 생애보다 사후 여정을 오래 생각하게 한다. 반정으로 왕좌에 오른 중종은 살아서도 주도권을 온전히 쥐지 못했다. 죽은 뒤에도 세 왕비 누구와도 한 능에 들지 못했다. 풍수는 무덤을 옮겼고 장마는 새 터를 덮었으며 전란은 광중을 파헤쳤다. 남은 돌과 길, 사라진 연지와 재실은 권력이 영원하다는 믿음에 조용한 반문을 건넨다.

방문객에게 필요한 준비는 거창한 지식보다 천천히 걷는 시간에 가깝다. 홍살문에서 정자각을 거쳐 언덕을 올려다보면 중종의 정치는 교과서 속 정쟁에서 몸과 땅의 문제로 변한다. 왕과 사는 풍경은 죽은 군주를 떠받드는 구경과 거리가 멀다. 도심 속 묘역을 거닐며 현재 삶의 주변에 남은 왕조의 흔적을 읽는 일이다. 멀리 떠나는 답사만 역사를 만나는 방법은 아니다. 점심시간의 짧은 산책, 주말 나들이, 퇴근길의 작은 우회도 과거와 마주하는 계기가 된다. 정릉은 생활 반경에 자리한 문화유산이 얼마나 깊은 이야기를 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강남의 화려한 상가 뒤편에서 중종은 여전히 홀로 누워 있다.

뉴스컬처 이상완 prizewan2@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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