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6년 아관파천 당시 고종 황제를 지근거리에서 보필했던 밀사의 친필 병풍이 먼 타국을 떠돌다 재미동포 부부의 헌신으로 고국에 돌아왔다.
재단법인 문화유산회복재단은 최근 미국 뉴욕의 재미동포 단체인 ‘앤드류 김 & 완균 라 재단(Andrew Kim & Wankyun La Foundation)’으로부터 구한말의 서예가이자 문장가인 석운(石雲) 권동수(1842~?)의 ‘행초서 7언 배율 병풍’을 기증받아 국내로 환수했다고 26일 밝혔다.
이번에 돌아온 작품은 격동의 정국 속에서 고종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던 밀사 권동수가 관직에서 물러난 뒤 만년에 작성한 6폭 규모의 병풍이다. 특히 황실이나 최고위 관료층만 사용할 수 있었던 최고급 종이인 ‘용문지(龍紋紙)’ 위에 거침없고 유려한 필치로 쓰여 예술적,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 구한말의 대표적 서화 비평가인 위창 오세창 역시 자신의 저서에서 권동수의 글씨를 극찬한 바 있다.
병풍 속 시구에는 “다섯 수레 책은 이미 아이에게 물렸고, 두 이랑 밭은 응당 학들을 위해 남겨두었네”라며 혼탁한 세상을 등지고 자연 속에서 평온함을 찾는 지사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파란만장했던 밀사의 삶을 내려놓은 노년의 쓸쓸함과 청빈함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이 유물이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결정적 배경에는 재미동포 부부의 남다른 고국 사랑이 자리하고 있다. 이번 기증을 주도한 라완균 씨는 국내 해부학의 개척자인 고(故) 나세진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의 자녀다. 기증된 병풍은 충남 아산시에 위치한 국내 유일의 ‘환수문화유산기념박물관’에 영구 안착되며, 박물관 내에 마련된 ‘나세진 홀’에 전시돼 한국 문화예술을 묵묵히 후원해 온 부친의 뜻을 함께 기릴 예정이다.
이상근 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은 “해외 동포들의 자발적인 기증은 유실된 우리 역사의 공백을 메우는 가장 위대한 원동력”이라며 “앞으로도 재외동포 네트워크를 촘촘히 구축해 국외 소재 한국 문화유산의 실태 파악과 환수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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