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영혼의 왈츠' 출간…'프랑스 주빈국' 서울국제도서전 방문
"한국·한글 존재 자체가 기적…AI, 불처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서울=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 "지금도 인간을 노예 상태로 만들려는 세력과 인간을 해방하려는 진영이 싸우고 있습니다. 이런 대립은 인류 역사에서 항상 반복돼왔죠."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전생을 통해 인류 문명사를 추적하는 장편소설 '영혼의 왈츠' 출간과 서울국제도서전을 계기로 다시 한국을 찾았다.
베르베르는 25일 서울 코엑스 서울국제도서전 행사장 내 프랑스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인간을 전쟁 도구로 삼고 노예처럼 예속시키려는 몽매주의, 우리를 과거로 회귀시키려는 야만에 맞서는 계몽주의의 대립이 역사에서 계속돼왔다"고 말했다.
그는 '몽매주의'를 세상을 위협하는 세력으로 규정하고, 이들로 인해 인류의 종말이 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베르베르는 "몽매주의 세력을 우리가 확실하게 인식해야 한다는 점을 이번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했다"며 "일부 국가와 종교 광신주의가 인류를 다시 어둠으로 몰고 가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란 종교 지도자들이 구시대적 사고에 갇혀 핵무기로 전쟁을 일으키려고 하죠.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어린 여자아이가 강간당하고, 여성이 얼굴과 몸을 가리지 않으면 외출할 수도 없죠. 노예제와 뭐가 다른가요. 북한에서도 독재자가 강요하는 전체주의가 전 국민을 노예화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혼의 왈츠'는 선사 시대와 고대 문명, 오늘날에 이르는 여정을 통해 문명을 지키려는 이들과 무너뜨리려는 자들 사이에 반복되는 대결을 그린다.
세상에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는 경고로 소설은 시작된다. 주인공은 파국을 막기 위해서는 과거의 여러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말을 듣고, 전생 체험을 통해 시간 여행을 떠난다. 인류가 불을 발견한 선사시대, 문자가 만들어진 수메르와 이집트, 수학과 철학이 탄생한 그리스 등 여러 시대 전생이 펼쳐진다.
주인공은 이를 통해 인간이 어떻게 문명을 일궜으며, 무슨 힘이 그 세계를 무너뜨리려 했는지 목격하고 인류 종말을 막을 방법을 찾아간다.
소설에서 문명을 지키는 핵심 요소는 지식의 기록과 보존이다. 주인공은 기록을 남기는 일을 인생의 과업으로 삼는다.
작가는 소설 서문에 "책과 도서관, 서점의 존재 의의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든 분들께 이 책을 바친다"고 적었다.
간담회에서 그는 "나는 역사광이라고 할 만큼 역사를 좋아하지만, 책에서 보는 것과 실제로 일어난 일 사이에는 간극이 있을 수 있다"며 "역사를 전공하는 주인공은 전생으로 돌아가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된다"고 소개했다.
주인공이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판타지를 가능하게 한 장치는 전생 체험이다. 한 영혼이 여러 몸을 거치면서 생을 여러 번 산다는 가정이 소설의 중요한 뼈대다.
오래전부터 전생 체험에 빠져있다는 베르베르는 "내가 만난 영매는 내가 111개의 전생을 거쳤다고 했다"며 "사실인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소설의 좋은 재료가 됐다"고 했다.
그는 "소설 속에 이집트 여성이 나오는 장면은 내가 실제로 전생 체험한 것"이라며 "전생을 겪으면서 역사와 과거와 이야기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베르베르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지만, 특히 한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는 "한국 역사에 관심을 가지면서 찬찬히 보니 많은 침략을 받은 한국이 현재 존재하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느낀다"며 "일본어나 한자와는 다른 한글이라는 고유 문자가 있다는 것도 기적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한국은 고통스러운 과거 때문에 오히려 더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하고자 하는 열망이 강한 나라라고 느끼고, 그래서 한국에 오는 걸 좋아합니다. 한국이야말로 몽매주의를 어떻게 타파해야 하는지 알고 있으며, 어두운 세상 속에서도 빛이 존재하고 희망이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베르베르는 이번 도서전의 주제이기도 한 인공지능(AI) 시대와 인간에 대해서는 "AI는 단순한 도구일 뿐이며 두려워할 것은 없다"며 "마치 잘 사용하면 고기를 맛있게 구울 수 있고, 잘못하면 큰 화재를 낼 수 있는 불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어떤 도구나 기술 자체에는 선악이 없고,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렸다"며 "인간에게는 과학을 권력의 도구로 사용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간담회를 마치며 그는 "실제로 일어난 일을 잊지 않기 위한 것이 내가 글을 쓰는 가장 중요한 이유"라며 "나는 진실을 잊지 않기 위해 글을 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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