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서가③] 해금서가, 책과 음악으로 삶을 큐레이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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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의 서가③] 해금서가, 책과 음악으로 삶을 큐레이션하다

투데이신문 2026-06-25 14:56:0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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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가톨릭대학교 독립서점팀 김다현 김진서 오주은 이지원 이혜인 황정아】

어떤 공간은 들어서는 순간 설명이 필요 없다. 서울 서초구의 독립서점 해금서가가 그렇다. 해금 선율이 흐르고, 책이 있고, 사람이 있다.

해금 연주가이자 작가인 천지윤 서점지기가 직접 가꾼 이곳은 단순히 책을 진열하는 공간이 아니다. 삶의 기로에 선 사람들이 잠시 머물며 자신과 마주하는 곳이자, 음악과 인문학, 그리고 사람이 아날로그 방식으로 연결되는 공간이다. 

가톨릭대학교 독립서점팀은 천지윤 서점지기를 만나 해금서가가 품고 있는 철학과 공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해금서가의 외부 전경. [사진 촬영=가톨릭대학교 독립서점팀]<br>
해금서가의 외부 전경. [사진 촬영=가톨릭대학교 독립서점팀]

어려운 시간을 지나 탄생한 공간

해금서가의 시작은 화려하지 않았다. 천지윤 서점지기는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절, 책을 통해 위로와 지혜, 용기를 얻었다고 말한다. 그 시간을 버텨낸 경험이 결국 지금의 공간으로 이어졌다.

“너무 죽고 싶었던 날들, 너무 견디기 힘들었던 날들은 책 속 작가들의 목소리가 저를 살아내게 했습니다.”

약 15년 동안 대학에서 해금을 가르치며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살아온 그는 어느 날 완전히 새로운 삶을 선택했다.  아이의 손을 잡고 독립서점과 북스테이를 돌아다니며 느꼈던 것들 — 다양한 삶의 방식들이 큐레이션돼 있는 그 공간에서의 해방감과 자유로움 — 을 자신의 공간 안에도 담아내고 싶었다.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아보자고 결심했을 때 가장 오래도록 제게 영향을 준 공간이 서점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결국 서점을 열게 된 것 같습니다.” 

수많은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서점 안에서 느꼈던 그가, 직접 그런 공간을 만드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해금서가의 철학은 서점지기의 삶에서 직접 길어올린 것이다. 과거 자신을 붙잡아 준 책처럼, 이제는 이곳을 찾는 누군가에게도 위로와 용기, 삶의 지혜를 건네고 싶다는 바람이다.

천 서점지기는 음악가로서 무대에서 감동을 전하고, 서점지기로서 책을 통해 사람들과 삶의 지혜를 나누는 일은 결국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고 말한다.

해금 연주자이자 작가인 천지윤 서점지기. [사진 제공=해금서가(신선회)]<br>
해금 연주자이자 작가인 천지윤 서점지기. [사진 제공=해금서가(신선회)]

음악이 채우고, 고요가 다독이다

해금서가에서는 두 가지 결로 사람들을 만난다. 음악과 이야기가 살아 숨쉬는 콘서트의 결, 그리고 찾아온 이가 조용히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공간의 결.

콘서트 프로그램 안에는 북콘서트와 뮤직콘서트가 있다. 문학 분야의 시인과 작가들이 주축이지만, 뇌 과학자나 웰니스 전문가 등 장르적 경계는 점점 넓어지고 있다. 뮤직콘서트는 서점지기가 해금 연주가라는 정체성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국악, 재즈, 클래식까지 다양한 장르의 연주자들이 이 작은 공간을 채운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오히려 그만큼 연사와 관객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소통의 밀도도 높아진다. 연사와 연주자들의 만족도가 높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음악이 들어왔을 때 공간의 분위기가 얼마나 달라지는지, 찾아오는 이들은 몸으로 느낀다.

해금서가만의 대표 프로그램인 ‘나의 서재’도 눈길을 끈다. 방문객이 일정 시간 공간을 빌려 머무르면 서점지기는 이직과 이별, 직장 문제 등 각자의 사연을 듣고 그에 맞는 책을 추천한 뒤 손편지를 함께 건넨다.

“여기 오면 엄선된 좋은 책을 읽고, 좋은 음악을 듣고, 조용히 자기 자신과 함께 있는 거예요. 나 자신과 친해지는 시간이죠.”

그는 하루 종일 타인의 이야기와 디지털 콘텐츠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시간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북스테이와 ‘나의 서재’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관심사가 곧 큐레이션이 되다

해금서가의 분위기를 만드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큐레이션이다. 서점지기의 취향과 호기심과 관심사를 따라 연사와 뮤지션이 초청되고, 책이 선별된다. 

대형서점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책은 의도적으로 들이지 않는다. 대신 해금서가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책들 — 도록, 그림책, 해외에서 직접 들여온 책들 — 이 이 작은 공간을 채운다.

어린 시절부터 국악을 수련하며 길러온 감각 역시 자연스럽게 공간의 색깔이 됐다.

“대형서점은 요즘 잘 팔리는 책을 중심으로 구성하지만, 이곳의 책들은 제 관심사를 따라 모인 책들이에요.”

해금서가의 내부 전경. [사진 제공- 해금서가 (신선회)]
해금서가의 내부 전경. [사진 제공- 해금서가 (신선회)]

공간에서 다시 연결되는 사람들

천지윤 서점지기는 최근 확산하는 ‘텍스트힙’ 현상을 단순한 유행으로 보지 않는다. 디지털 환경에 지친 사람들이 진짜 휴식을 찾아 나선 결과라는 것이다.

“쇼츠나 유튜브를 보는 것이 쉬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책을 읽으면 뇌를 사용하는 방식도, 마음을 쓰는 방향도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는 이제 서점은 단순히 책을 판매하는 공간을 넘어 사람과 사람이 오프라인에서 연결되는 장소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 북콘서트와 공연이 끝난 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대화와 만남, 그 속에서 형성되는 연대감은 온라인에서는 쉽게 경험하기 어려운 풍경이다.

활자를 읽으러 왔다가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만나러 왔다가 책을 만나는 곳. 해금서가는 그 두 경험이 자연스럽게 교차하는 공간이다.

자신을 만나는 가장 조용한 방법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묻자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을 건넸다.

“20대는 모든 게 열려 있기 때문에 오히려 선택지가 너무 많아서 힘들기도 한 것 같아요. 아직 완전히 확고해지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더 힘들기도 하고요.”

그 말은 그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그가 20대에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과 함께 작업하며 느꼈던 자부심과 영향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훌륭한 어른들을 곁에 두고 매일같이 부대끼며 일했던 그 시간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결국 옆에 누구를 두고 살아가느냐가 그 시절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런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면, 그의 답은 단호하다.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좋은 생각과 좋은 사람을 만난다는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보세요. 큰돈을 들이지 않아도 좋은 데이트가 될 수 있고, 좋은 친구를 만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으며, 무엇보다 자기 자신과 만나는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책이 자신을 살렸고, 그 경험이 해금서가를 만들었다. 음악을 연마하며 쌓아온 감각, 힘든 시절을 버티게 해준 책들, 그리고 그것을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이 공간에 스며 있다.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한 공간이기에,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그 온기를 몸으로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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