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25일인 오늘은 6.25전쟁이 일어난 지 76년이 되는 날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25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6·25 전쟁 제76주년 기념식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6·25 기념 노래를 제창하고 있다. / 뉴스1
6.25전쟁 발발과 전개 과정
6.25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 공산군이 38선 전역에서 불법으로 남침하면서 시작된 한반도 전쟁이다. 북한군은 암호명 '폭풍 224' 작전에 따라 선전포고도 없이 기습 공격을 가했다. 이 전쟁은 소련 스탈린의 동의와 중국 마오쩌둥의 지지를 받은 김일성이 직접 주도했으며, 한반도를 무력으로 공산화하려는 구상에서 비롯됐다.
기습을 당한 국군은 사흘 만에 서울을 내주고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려났다. 북한은 남침 사실을 숨기려고 그날 오전 평양방송을 통해 오히려 남측이 먼저 침공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후 소련과 중국, 북한이 사전에 전쟁을 계획했다는 자료가 공개되면서 이 주장은 거짓으로 밝혀졌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의 남침을 침략 행위로 규정하고 회원국에 군사 지원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프랑스, 터키, 필리핀, 태국, 콜롬비아, 벨기에,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그리스, 에티오피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16개국이 전투병을 보냈고, 스웨덴, 인도, 덴마크, 노르웨이, 이탈리아 5개국은 의료 인력을 지원했다. 전투병과 의료지원국을 합치면 모두 21개국이 참전한 셈이다. 한미 연합작전이 이뤄지면서 한국군의 작전 지휘권은 그해 7월 18일부터 유엔군 사령관에게 넘어갔다.
인천상륙작전과 중공군 개입
전세를 뒤집은 건 그해 9월 15일 맥아더 장군이 지휘한 인천상륙작전이었다. 보급이 끊긴 북한군은 와해됐고, 국군과 유엔군은 2주 만인 9월 28일 서울을 되찾았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이승만 대통령의 통일 의지에 따라 국군 선두부대가 10월 1일 38선을 넘어섰고, 10월 7일 유엔총회가 한반도 통일 결의안을 통과시키면서 국군과 유엔군은 압록강 인근까지 북진했다.
하지만 미군의 북한 점령을 우려한 마오쩌둥이 10월 8일 동북변방군을 인민지원군으로 개편해 한반도에 투입했다. 중공군의 대규모 공세에 밀린 유엔군은 1951년 1월 4일까지 한강 이북 부대를 모두 철수시켰는데, 이를 1·4후퇴라 부른다. 서울은 곧 다시 중공군 손에 넘어갔다. 당시 미국은 유엔군 철군과 제주도 임시정부 이전까지 비밀리에 검토했지만 한국 정부에는 이를 알리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위기에 놓인 한국 정부는 무장한 청년 100만 명을 끌어모아 중공군에 맞서려 했다.
휴전협상부터 정전협정 체결까지
이후 전선은 38도선 일대에서 교착 상태에 빠졌고, 전력 손실과 장기전을 우려한 양측은 휴전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휴전 협상은 1951년 7월 10일 개성에서 처음 열린 뒤 같은 해 10월 25일부터는 판문점으로 장소를 옮겨 계속됐는데, 그 사이 전투가 끊이지 않으며 2년 가까이 지지부진하게 이어졌다. 포로 처리 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이 과정에서 이승만 정권은 미국의 동의 없이 반공포로를 석방하며 휴전 자체에 반대 의사를 강하게 드러내기도 했다.
길었던 협상은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판문점에서 열린 제159차 본회의에서 마침표를 찍었다. 유엔군 대표 클라크, 북한 대표 김일성, 중공군 대표 펑더화이가 정전협정에 서명했고, 한국군 대표는 서명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날 밤 10시를 기점으로 한반도 전역의 포성이 멈췄다. 발발부터 휴전까지 걸린 기간은 3년 1개월 2일, 총 1129일이었다.
이 전쟁으로 국군 전사자는 약 14만 명, 부상과 실종, 포로 피해까지 합치면 약 49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된다. 민간인 사망자도 25만 명을 넘었고, 수백만 명에 달하는 이산가족이 생겨났다. 한반도는 20세기 들어 가장 처참한 전장 중 하나로 남았다.
76년째 이어지는 정전 상태
정전협정 체결 이후에는 협정 이행 여부를 감시하는 군사정전위원회가 설치됐다. 다만 이 협정은 전쟁을 끝내는 평화조약이나 강화조약이 아니라 전투 행위만 중단시키는 성격의 문서였다. 그래서 국제법상으로는 한국전쟁이 종결된 게 아니라 일시 중단된 상태로 남아 있다. 법적으로는 지금도 남북이 전쟁 상태에 있다는 뜻이며, 7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6.25전쟁은 '끝나지 않은 전쟁'으로 불린다. 정전 직후인 1953년 10월 1일에는 한반도 안전 보장을 위해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됐고, 이를 계기로 미군 주둔이 허용되면서 한미 연합방위체제와 한미주둔군지위협정 등 안보·군사협정의 기틀이 마련됐다.
태극기 다는 방법(조기 게양)
6.25전쟁기념일은 현충일(6월 6일)과 달리 법정 공휴일로 지정돼 있지 않다. 그러나 6월이 호국보훈의 달인 만큼, 이날에도 전국적으로 태극기 조기 게양이 권고된다. 게양 방식은 현충일과 동일한 '조기' 방식을 따르는데, 국경일에 쓰는 '만기'처럼 깃봉 끝까지 올리는 게 아니라 깃봉에서 태극기 세로 길이만큼 내려서 달아야 한다.
태극기를 다는 위치는 집 밖에서 봤을 때 대문 중앙이나 왼쪽이 원칙이다.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이라면 베란다 난간의 중앙이나 왼쪽에 달면 되고, 국기 꽂이가 따로 없다면 각 동 출입구에 게양하거나 창문이나 현관문에 부착해도 무방하다. 게양 시간은 관공서와 공공기관은 오전 7시부터 자정까지, 일반 가정과 민간기업·단체는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가 원칙이며 가급적 자정까지 달아두는 것을 권장한다. 비바람이 심해 태극기가 훼손될 우려가 있을 때는 게양하지 않는 것이 맞고, 날씨가 풀리면 다시 달면 된다.
태극기 조기게양법 / 행정안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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