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배 탄 세 선원과 악연 맺은 검사, 이희권의 '납북어부 잡는 전국 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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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배 탄 세 선원과 악연 맺은 검사, 이희권의 '납북어부 잡는 전국 순회'

프레시안 2026-06-25 10:08:24 신고

3줄요약

화가의 손으로 그린 그림, 검사의 손으로 쓴 기소장

2026년 봄, 영국에서 『반헌법행위자열전』 4권을 펼쳤다. 이희권(李羲權, 1943~) 항목의 부제를 보고 잠시 멈췄다.

"한배 타고 납북된 승해호 선원 3인과 각각 악연 맺어."

같은 배를 타고 같은 날 같은 바다에서 납북됐다가 함께 돌아온 세 사람, 김이남·김춘삼·김성학. 이 세 사람의 인생을 검사 이희권이 차례로 망가뜨렸다. 1976년에는 김이남의 1심 검사, 1983년에는 김춘삼의 2심 검사, 1987년에는 김성학을 고문한 이근안에게 면죄부를 준 검사. 한 어선의 선원들과 한 검사 사이에 이렇게 끈질긴 악연이 있을 수 있을까.

1943년 전북 부안 출생, 군산고에서 서울법대까지

이희권은 1943년 9월 11일 전라북도 부안에서 태어났다. 1962년 군산고등학교(35회)를 졸업하고 1967년 서울법대를 졸업했다. 1968년 9월 제9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는데, 합격자 발표 당시 언론에는 이름이 '이희건'으로 잘못 보도되기도 했다. 사시 동기로는 최병국(1942~), 강신욱(1944~) 등이 있다. 군산고 출신 검사로는 이희권 외에도 김성남(1942~), 신상규(1949~) 등이 나란히 『반헌법행위자열전』에 이름을 올렸다.

1973년 대전지검 검사로 시작해 1975년 광주지검 목포지청, 1978년 서울지검 성동지청을 거쳤다. 그리고 그가 평생을 보낸 곳은 목포, 춘천, 전주, 인천, 대구, 광주 등 지방이었다. 바로 그 지방 근무지에서 그는 납북귀환어부 간첩조작사건들을 차례로 만나게 된다.

세계사 속의 동류, '본보기 사건'의 설계자들

영국에서 이 장면을 들여다보면 비슷한 구조가 떠오른다. 매카시즘(1950년대) 시기 미국에서 첫 번째 '공산주의자' 기소사건이 만들어지면, 그 사건이 본보기가 돼 비슷한 사건들이 줄줄이 만들어졌다. 첫 사건의 검사가 만든 논리와 절차가 이후 모든 유사사건의 틀이 됐다.

이희권이 1976년 기소한 김이남 사건이 바로 그런 '본보기'였다. 『반헌법행위자열전』은 이를 명확히 한다.

"김이남 사건이 납북귀환어부 간첩조작사건이 줄줄이 발생하고 하나같이 중형이 선고되는 하나의 분기점이 됐던 것은 이 사건 1심 검사였던 이희권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검사의 기소 하나가 이후 수십 명의 운명을 결정하는 틀을 만든 것이다.

1976년 김이남 사건, 무기징역이라는 이례적 중형

이희권의 반헌법 행위의 정점은 1976년 김이남 사건이다. 김이남은 1971년 8월 제2승해호를 타고 오징어잡이를 하던 중 북한 경비정에 납치돼 1년간 억류됐다가 1972년 귀환했다. 처음에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으로 평범하게 끝났다. 그런데 1976년 4월, 목포경찰서 정보과가 김이남을 영장도 없이 강제 연행해 69일간 불법감금한 뒤 간첩으로 조작했다.

고문의 양상이 끔찍하다. 담뱃불로 지지고, 재떨이로 뒷머리를 치고, 각목으로 십자와 엑스자 모양으로 등을 때렸다. 물고문도 자행됐다. 더 충격적인 것은 수사관들이 김이남을 두고 "이놈 나에게 주라, 너는 많이 했잖냐"며 실적 경쟁을 벌인 장면이다. 김이남은 그것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진술했다. 사람이 아니라 실적 점수로 흥정된 것이다.

이희권은 1976년 7월 12일 검찰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하면서 김이남이 4월 7일부터 불법구금 돼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기소를 강행했다. 그 결과 1976년 12월, 김이남은 납북귀환어부 간첩조작사건으로서는 이례적인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2010년 진실화해위원회가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지만, 재심을 신청한 김이남은 2011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2013년에야 재심무죄가 선고됐다. 재판부는 명확하게 적시했다.

"검사가 지금까지 그 임의성에 관한 의문점을 없앨 만한 입증을 하지 않고 있으므로,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에 기재된 자백은 유죄의 증거로 쓸 수 없다."

검사 이희권의 잘못을 법원이 공식적으로 지적한 것이다. 2015년 대법원은 국가가 14억 원의 위자료를 지불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그 돈을 받을 사람은 이미 이 세상에 없었다.

1983년 김춘삼 사건, 같은 배, 다른 재판, 같은 검사

이희권은 1983년 춘천지검 재직 중 같은 승해호를 타고 납북됐던 김춘삼의 항소심 검사로 다시 등장한다. 당시 16세였던 김춘삼은 첫 처벌을 받은 뒤에도 1983년 다시 고무찬양 혐의로 구속됐다. 해양경찰의 고문에도 끝까지 간첩혐의를 부인하자 수사기관은 간첩조작을 포기하고 고무찬양으로 타협했다.

2013년 김춘삼은 30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런데 검찰의 태도가 충격적이었다. 이희권의 후배검사들이 사죄는커녕 항소했다. 항소심도 무죄였지만 검찰은 또 상고했다. 김춘삼은 분노했다.

"왜 검찰 선배들이 잘못한 일을 오늘날까지 질질 끌고 가는지 개탄스럽기 짝이 없다."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친 잘못이 세대를 건너 계속 부인되고 있었다.

1987년 김성학 사건, 이근안에게 면죄부

승해호의 세 번째 인연은 1987년이다. 이희권은 수원지검 성남지청 부장검사로 재직하며 김성학을 고문했던 '고문기술자' 이근안(1941~2026)에 대해 기소유예 처분을 내려 봐주기 수사를 했다. 김성학은 1985년 12월 경기도경 대공분실로 연행돼 이근안의 모진 고문을 받고 간첩으로 조작됐으나 1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고문 가해자 이근안은 고발당했지만, 이희권의 기소유예로 면죄부를 받았다.

같은 배를 탔던 세 사람, 김이남, 김춘삼, 김성학, 모두가 검사 이희권의 손을 거쳐 갔다. 한 사람에게는 무기징역을 안기고, 다른 한 사람에게는 항소로 끝까지 괴롭히고, 또 다른 한 사람을 고문한 가해자는 풀어줬다.

화가가 된 검사, 그림은 평화로웠다

이희권의 이력에서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그는 광주지검 목포지청 검사로 재직하던 1975년부터, 즉 김이남을 기소하던 그 무렵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1993년 강릉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이후에도 여러 전시회를 열었으며 한국미술협회 회원으로 활동했다. 검사로서 무기징역을 구형하던 손이, 화가로서 평화로운 캔버스를 채웠다. 이 두 손이 한 사람의 것이었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묘한 여운을 남긴다.

퇴임 후에는 강릉시 고문변호사, 군산 YMCA 사회개발부 이사, 환경운동연합 군산지부 이사 등 시민사회 활동도 했다. 1994년 변호사 개업 이후 여러 법무법인을 거쳐 지금도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국에서 2026년을 생각한다

영국에서 '길퍼드 4인' 사건처럼 첫 번째 잘못된 기소가 이후 유사사건의 틀을 만든 경우, 그 첫 사건의 담당자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가혹하다. 첫 번째 도미노를 쓰러뜨린 사람의 책임이 그 뒤에 줄줄이 쓰러진 도미노 전체에 대한 책임으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이희권은 그 '첫 도미노'를 쓰러뜨린 검사였다. 김이남 사건 이후 오형근, 안장영, 안희천, 김흥수, 태영호, 박우룡 등 수많은 납북귀환어부들이 같은 방식으로 간첩이 됐다. 이희권 개인이 그 모든 사건을 만든 것은 아니지만, 그가 만든 첫 사례가 이후의 틀이 됐다는 것이 『반헌법행위자열전』의 평가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1960~)의 비상계엄 선포를 영국에서 생중계로 보며 나는 이희권을 떠올렸다. 한 검사의 결정이 본보기가 돼 비슷한 비극이 줄줄이 만들어지는 구조. 그 구조가 다시는 작동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역사를 기억하는 이유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그리고 그 법정의 방청석에는 우리가 앉아 있다.

▲이희권 ⓒ반헌법행위자열전

참고문헌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2026, 『반헌법행위자열전 1-4』, 사회평론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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