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폰에 깔려 있는 수많은 앱들 중 AI는 몇 개나 있는가? 기본적으로 ‘챗GPT’와 ‘제미나이’ 정도는 있을 것이다. 그냥 두괄식으로 결론부터 써놓고 출발해보자.
AI에 인지 활동을 내맡기면 그 어떤 뇌 발달도 일어나지 않는다.
AI가 인간의 사고력과 뇌 활동을 약화시키고 있다. <그래픽=챗GPT AI>
2009년 12월 대한민국에 도달한 스마트폰(아이폰 3GS)이 전국민을 ‘스마트폰 중독자’로 만드는 데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는데, 이제는 AI가 인간의 생각할 기회를 앗아가고 있다. 특히 이미 성인이 되어 마주한 ‘AI 세계’보다 청소년기에 일상적으로 접하게 된 AI의 파괴력이 훨씬 더 심각하다. 소아청소년 정신건강의학과 정연경 전문의는 “성인들도 많이 쓰지만 청소년들에게는 단순히 어른들처럼 있으면 편하고 없으면 아쉬운 것이 아니”라며 “숙제할 때도 거의 필수적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친숙도나 사용 빈도가 비교도 안 되게 높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애착 대상’에 집착하기 쉬운 청소년기에는 더더욱 그렇다.
이제 청소년기는 애착 대상이라는 것이 원래 부모에서 또래 등 외부 대상으로 이동하는 시기다. 그래서 워낙 엄마와 아빠 바라기였던 자녀가 친구들만 줄창 쫓아다니고. 이러다가 이제는 아이돌만 쫓아다니게 되는 나이가 이 나이다. 이미 자아 정체성이 확립돼서 어떤 문제에 대해서 판단을 스스로 내리고 애착 대상 없어도 스스로 안정감을 찾는 성인보다 훨씬 관계 의존성이 높고 그렇기 때문에 AI에 대한 영향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AI 사용해봐서 알지 않은가. 거절이 없다. 엄마나 아빠한테 물어보면 이따 물어봐! 아니면 애들한테 물어보면 약간 핀잔 받을 것들. 이런 것들이 없다. 항상 반응해주고 즉각 공감해주며 비난하지도 않는다. 우리도 AI와의 대화에서 적어도 위안을 많이 받는데 아직 애착 대상이 삶에서 중요한 소아 청소년 입장에서는 AI가 더 없는 자유로운 부모상처럼 여겨져서 실제 관계처럼 영향을 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정 전문의는 지난 2월26일 방송된 KBS 라디오 <세상의 모든 정보 윤인구입니다>에 출연해서 ‘청소년과 AI’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을 들려줬다. 정 전문의는 요즘 AI에게 사적인 고민을 유독 많이 털어놓고 극단적으로 의존하는 청소년들의 양태에 대한 질문을 받고 중요한 전제를 뒀다.
AI와의 대화 자체가 위험하다고 보기에는 과도한 면이 있다.
특정 대상과의 ‘일방적인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AI 말고 대화를 나눌 대상이 없다면 그것이 위험하다는 싸인일 것이다. 이 AI와의 관계가 아니고서라도 그렇다. 일반적으로 우리 삶 속에서 관계라는 것이 제한돼 있고 일방향성이라면 언제라도 인지 왜곡의 위험성이 도사린다. 사이비 종교에서도 어떻게 하는가? 다른 관계와의 연결성을 다 차단시키고 교단에서 제공하는 정보만 일방적으로 제시한다. 그러면 판단력은 심하게 훼손이 될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AI가 매우 우수한 정보 제공 수단이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단일 통로가 된다면 비판적 사고 없이 AI가 제공하는 정보를 그대로 흡수할 수밖에 없게 된다. 더군다나 AI는 자동적으로 내가 원하는 정보를 유추(알고리즘)해서 추가적으로 계속 정보를 제공해준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자기 생각이나 감정의 몰입이 더욱 심화될 수 있기에 주의가 필요하다.
AI 자체가 몰입을 유도하고 의존성이 강화되도록 설계된 측면이 있다. 정 전문의는 “관계 시작과 종료에도 나 혼자 통제권을 갖고 있다”면서 “(AI와의 대화 과정에서 추가 질문을 듣고) 그냥 로그인만 하고 바로 답변을 안 해도 된다”고 묘사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는 안녕하세요. 사실. 이런 고민 있는데요. 아니면 다 듣고 나서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이런 것들이 굉장히 귀찮기도 하면서 의외로 어려운 과정이다. 그런데 이런 관계가 AI랑은 없으니까 오히려 일반적인 관계에서의 소통은 점점 더 AI에 몰입할수록 어려워지게 되는 것 같은 것도 하나의 문제다.
청소년이 AI에 무분별하게 노출되는 게 위험한 이유는 따로 있다. 규제 없는 AI의 만연이 ‘인지 퇴보’를 야기할 수 있는데 발달 단계상 청소년에게 너무나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김재인 교수(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는 경향신문 칼럼에서 “AI는 이미 성장한 사람을 돕는 기술”이라면서 아래와 같이 역설했다.
아직 성장할 사람을 성장시키지는 않는다. AI는 역량을 증강하고 증폭하는 기술이다. 그런데 주니어는 애초에 밑천이 별로 없다. AI가 인터뷰 녹취를 풀어준들, 기사 작성 능력이 부족한 신입 기자는 중견 기자보다 도움을 덜 받는다. 인간 지능을 잘 쓰는 사람이 AI도 잘 쓴다. 이런 문제는 특히 한창 배움의 과정에 있는 학생에게 더 크게 나타나고 있다.
머리 싸매고 고민해보고 사색해보는 일종의 ‘생각의 과정’을 거쳐야 온전히 주체적인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는데 AI는 그런 과정을 생략해버릴 수 있다. 그래서 생각할줄 모르는 바보로 만들거나, 1차원적인 사고만 하게 된다. ‘생각 훈련’을 할 기회를 앗아가기 때문이다.
AI에 글을 쓰게 하면서 새로 얻을 수 있는 인지 능력은 무엇일까? 단언컨대 전혀 없다. 왜냐하면 학생 시절에 하는 글쓰기는 인지 훈련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글쓰기가 ‘인지 훈련’ 혹은 ‘생각 훈련’과 별개의 작업이라고 여기는 것은 큰 오해다. 고생하며 글을 써본 사람은 누구나 알고 있다. 글쓰기는 정리된 생각을 줄줄 뽑아내는 과정이 아니다. 글쓰기는 생각을 짜내고 숙성시켜 새로운 경지로 올리는 고된 작업이다. 그래서 글쓰기는 생각의 근력을 키우는 훈련 과정이다. 체육 시간에 프로 스포츠 경기를 관람한다고 체력이 향상되는 게 아니듯 챗GPT에 글을 쓰게 내맡기고 정작 자신은 생각 활동을 멈추면 생각의 체력은 저하될 뿐이다.
박지현 교수(서원대 교육학과)도 AI 의존도가 심화됨에 따라 현대인들이 “생각이라는 것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을 제기하며 아래와 같이 풀어냈다.
챗GPT로 사주를 봤어요. 사업을 하면 대운이 열린다네요. 친구에게 책을 선물하려고 하는데 메모에 무슨 말을 쓰면 좋을지 물어봤어요. 정말 잘 가르쳐줘요. 이제는 거의 비서죠. 최근 생성형 AI를 접하고 있는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몹시 흥분하며 이야기한다. 사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사소한 쓰레기 분리수거 방법부터 여행 계획, 기념일 축하 영상 제작까지 생성형 AI의 도움을 받곤 한다. 어느새 AI는 검색 도구를 넘어 우리의 일상과 가장 가까운 조언자가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바라보며 문득 걱정이 든다. 이러다 나는 생각이라는 것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닐까?
AI는 인간이 아니다. 인간도 AI가 아니다. AI와 인간은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다. 박 교수는 “AI는 사람과 섞여서 집단을 만나지 않는다”면서 “반면 인간은 실제 사람을 만나고 대상의 특성과 상황을 고려하며 때로는 예상치 못한 상황까지 준비해야 한다”고 정리했다.
AI는 수많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가장 그럴듯한 답을 제시할 뿐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AI를 사용하느냐 사용하지 않느냐가 아니다. 어떻게 사용하느냐다. 생성형 AI는 훌륭한 조력자이며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 친구는 새로운 생각을 제안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준다. 그러나 친구가 우리의 삶을 대신 살아주지는 않는다. 최종적인 판단과 책임은 언제나 자신의 몫이 아닐까 싶다. AI 시대에 더욱 필요한 능력은 정답을 찾는 능력이 아니라 정답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더 나은 질문을 던지는 능력이라고 한다. AI와 함께 성장하되 ‘생각하는 힘’ 만큼은 결코 AI에게 맡기지 말아야지. 오늘도 다짐해본다.
강혜련 명예교수(이화여대)도 “인간의 뇌는 스마트폰이나 PC 화면보다는 사람들의 상호작용과 사고를 통해 학습하도록 진화해왔다”는 점을 환기했다.
아이들이 달콤한 기술에 빠져 생각과 상상력의 근육이 퇴화한다면 다음 세대의 혁신은 AI가 주도할지 걱정된다. AI 기술은 배워야겠지만 읽기, 쓰기와 같은 인간의 아날로그 소양 교육은 학교와 가정에서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김 교수가 제안하는 AI 정책의 방향성도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일단 AI로 혜택을 받는 기성세대와, 부작용에 시달릴 미래세대를 명확히 구분해서 인식해야 한다.
생산성 향상과 지능 퇴화가 같은 사람한테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심각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빛이 그늘을 가릴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한편에는 AI를 활용해 업무 생산성을 향상하는 시니어(숙련자)가 있지만 다른 한편에는 AI에 일을 떠맡기며 능력이 퇴화하는 주니어(학생과 신입)가 있다. 주니어한테서 벌어지는 일에 당장 주목하지 않으면 시니어의 빛에 가려져 주니어의 그늘은 더 짙어질 것이다. 직장 신입도 그렇지만 학생은 더하다. 학생 때는 밑천이 될 역량을 쌓고 언어력과 수리력을 훈련해야 한다. OECD가 발표한 보고서도 이 점을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AI는 고생스럽게 이겨내야 하는 훈련 과정을 생략하고, 안 하고도 한 척하게 해준다. 겉으로는 내가 해낸 것 같지만, 실제로 나는 새로 할 줄 알게 된 것이 없다.
노르웨이는 학교 현장에서의 AI 사용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초등학교 때까지(6~13세)는 전면 금지, 중학생(14~16세)은 감독 하에 부분적 사용, 고등학생(17~19세)은 AI 활용법 교육을 받도록 한다. 스퇴르 총리는 아래와 같이 말했다.
AI 사용은 어린이들이 교육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할 중요한 단계를 건너뛰도록 할 위험을 높인다.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어린이들이 읽고, 쓰고, 셈하는 걸 배우는 일이다.
김 교수도 “발달 단계에 맞게 도구를 쥐여주어야 마땅하다”면서 연령별 AI 허용의 시점을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소년들에게) AI를 무조건 쓰게 하거나 AI를 잘 쓰게 하자는 것이 아니다. AI를 써야만 하는 영역, AI를 쓰지 않아도 되는 영역, AI를 쓰면 안 되는 영역부터 정밀하게 구별해야 한다. 속도보다 신중함이 필요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학생들의 희생은 누적될 수밖에 없다. 교육은 무를 수 없다. 교육에는 시기가 있다. 다 큰 성인의 관점에서는 어릴 때 무엇이 필요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발달 단계에 맞게 도구를 쥐여주어야 마땅하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교육제도의 접근법 말고도 지금 당장 시행할 수 있는 간단한 조치들도 있다. 정 전문의는 아래와 같은 것들을 제시했다.
①AI가 자살이나 자해 관련 질문을 감지하면 “주변 어른이나 친구와도 얘기해보세요”와 같은 현실 관계 ‘유도 문장’을 삽입하도록 하거나 “저는 감정을 느끼지 않는 데이터 프로그램입니다”와 같은 ‘안내 문구’가 삽입되도록 한다.
②감정의 증폭이 심해지고 물리적으로 타인과의 관계가 고립될 가능성이 높은 심야시간에는 특정 질문들에 한해 ‘제한 모드’가 무조건 실행되도록 한다.
③진지한 고민이 있을 때 AI와 상담을 하더라도 반드시 실제 사람 한 명 이상과 그 고민을 나누도록 가르쳐주기.
무엇보다 ③에 대해 정 전문의는 “계속 반복하고 있는데 실제 관계 속에서 고민을 털어놓는 건 여러 어려움이 존재하니까 AI가 편하다”면서 “그런데 어떤 방식으로 이 고민을 털어놓을까 생각하는 과정 속에서 성장이 이뤄지고 해결 방법도 스스로 마련된다”는 점을 부각했다.
진료실에서도 환자들을 보면 나한테 설명을 하면서 아 이렇게 하면 되겠네요. 하고 스스로 자문자답하는 경우들이 많다. 그래서 타인에게 털어놓는 과정 자체가 문제를 객관화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AI에게 먼저 털어놓는 것은 좋지만 정말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반드시 한 명 이상의 사람에게 꼭 털어놓는 연습을 우리 모두가 해야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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