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폰을 충전하던 케이스가 회의를 녹취하고, 마주 앉은 외국인과 통역까지 해내는 세상이 됐다. 앤커(Anker)의 음향 브랜드 사운드코어가 내놓은 신형 무선 이어폰 리버티 5 프로 맥스(Liberty 5 Pro Max) 얘기다. 무엇보다 이 제품은 이어버드 자체보다 케이스가 먼저 눈에 띄는, 흔치 않은 제품이다.
손에 쥐면 케이스 뚜껑을 위로 밀어 올리는 슬라이드 구조부터 눈에 띈다. 흔한 플립 방식이 아니라 한 손으로 밀어 여는 맛이 다르다. 덮개 안쪽에는 1.78인치 아몰레드(AMOLED) 터치 화면이 박혀 있다. 점멸하는 발광다이오드(LED) 몇 개로 배터리를 짐작하던 기존 케이스와 달리, 이어버드와 케이스의 배터리 잔량이 숫자로 또렷이 표시되고, 스마트폰을 꺼내지 않고도 케이스만으로 대부분의 조작이 끝난다.
가장 먼저 눈이 가는 건 케이스 화면 그 자체다. 사운드 코어 전용 앱에서 사진을 올려 배경으로 지정할 수 있는데, 정지 이미지뿐 아니라 움직이는 라이브 배경화면도 지원한다. 짱구나 마리오 같은 친숙한 캐릭터를 띄우거나 회사 로고를 넣는 식으로 케이스를 개인 소장품처럼 꾸밀 수 있다. 화면을 위로 쓸어올리면 설정·밝기·볼륨을 비롯한 핵심 기능이 직관적인 아이콘으로 펼쳐진다.
케이스 액정 화면 하나에 압축된 기능들
케이스 화면에서 바로 다룰 수 있는 기능은 여러가지다. 주변 소리 듣기 모드는 외부 소음 허용 정도를 케이스에서 직접 손본다. 화면을 좌우로 쓸거나 화살표를 눌러 단계를 바꾸는 방식이라, 걸음을 멈추고 휴대폰을 들여다볼 필요가 없다. 노이즈 캔슬링은 환경에 맞춰 자동 조절되는 적응형(Adaptive ANC 4.0)과 함께, 강도를 1단계부터 5단계까지 수동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돌비 오디오(Dolby Audio)는 머리 움직임을 따라가는 헤드 트래킹을 지원해 영화·영상에서 화면 쪽으로 소리가 고정되는 공간감을 살린다. 음향을 자기 귀에 맞추는 장치도 촘촘하다. 청력을 측정해 맞춤형 음장을 만드는 히어아이디(HearID) 5.0, 압축으로 손실된 소리를 실시간 복원한다는 AI 사운드 향상 기능이 들어간다. 다만 AI 사운드 향상을 켜면 고음질 코덱(LDAC)과 돌비, 음성 제어가 함께 비활성화돼, 어떤 조합으로 쓸지는 사용자가 골라야 한다.
대면 번역은 한 사람이 케이스를, 다른 사람이 스마트폰 앱(사운드코어)을 들고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면 화면과 앱에 번역 문장이 먼저 뜬 뒤 음성이 재생되는 방식이다. 충전기를 상대에게 건네면 그 사람이 곧장 자기 언어로 말하고 들을 수 있다는 점이 직관적이다. 마이크가 30초 뒤 자동으로 멈춰 긴 대화보다 짧은 교환에 맞다.
원격 촬영은 스마트폰 카메라 앱을 켜둔 뒤 케이스 버튼으로 멀리서 셔터를 끊는 기능으로, 약간의 지연은 있지만 셀카봉 없이 단체 사진을 남길 때 쓸모가 있다. 이 밖에 음악 컨트롤, 최대 3대 멀티포인트 연결, 이어버드 찾기, 언어·밝기·볼륨 설정까지 케이스 안에서 해결된다.
취재 현장이라면 눈여겨볼 녹음기
특히 인터뷰가 잦은 직군이라면 케이스가 곧 녹음기라는 점이 크게 다가온다. 내장 마이크로 대면 회의·강의·인터뷰를 녹음하면 앱이 자동으로 전사하고, 핵심 요점과 할 일을 추린 요약까지 만들어준다. 녹음한 음성은 앱에서 다시 들을 수 있고, 문장 단위로 잘게 쪼개져 훑어보기 편하다. 이동 중에는 앱으로, 책상 앞에서는 웹 포털의 AI 비서 '애스크 앵카(Ask Anka)'로 정리할 수 있어 작업 흐름이 끊기지 않는다.
보안 장치도 갖췄다. 녹음 파일은 기기 내 AES-256 암호화로 보호되며, 사운드코어는 ISO 27001·SOC 2·HIPAA 등 보안 표준 준수를 내세운다. 클라우드 동기화를 끄면 전사 결과를 받는 즉시 임시 파일이 지워진다. 다만 한계도 분명하다. 녹음은 대면·실내 음성에 한정돼 온라인 회의나 전화 통화는 담기지 않는다. 무료 분량은 월 120분이며, 더 쓰려면 프로(월 1,200분·월 15.99달러)나 무제한(연 239.99달러) 구독이 필요하다. 음성 명령(20종) 역시 영어·독일어·일본어·중국어만 지원해 한국어는 빠져 있다.
통화 품질...지하철 굉음 구간에서 드러나는 차이
통화품질은 이 제품이 가장 힘을 준 부분이다. 이어버드 유닛은 2026년 4월 TWS 이어버드 통화 음질 부문에서 기네스 세계기록(G-MOS) 인증을 받았다. 마이크 8개와 골전도 센서 2개, 앤커가 자체 개발했다는 '디스(Thus)' AI 칩이 목소리를 분리하고 배경 소음을 걷어내는 구조다. 100데시벨이 넘는 시끄러운 환경에서도 상대에게 또렷이 전달된다는 게 회사 설명인데, 해외 리뷰들도 바람 부는 거리나 소음이 심한 공간에서의 통화 선명도를 강점으로 꼽았다.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직장인에게 소음 제어는 사실상 필수다. 주변 소리 듣기 모드로 두면 바깥소리를 적당히 흘려보내 안내 방송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또렷한 청취가 가능했다. 진가는 라디오 목소리가 묻힐 만큼 폭음이 쏟아지는 구간에서 나온다. 케이스 화면으로 강도를 5단계까지 올리자 주변 소음이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 회사 설명으로는 8개 센서와 디스 칩이 초당 38만 개 이상의 소음 신호를 처리해 이전 플래그십(리버티 4 프로)보다 차단 성능이 두 배가량 좋아졌다. 인파가 몰려 소음 압박이 심한 교토 가와라마치 거리를 걸을 때도 스마트폰 영상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먼저 말을 걸면 자동으로 음량을 낮추고 주변 소리를 들려주는 기능도 편리하다. 골전도 센서가 입을 여는 순간을 감지해 음악을 줄이고 외부음을 열어주다가, 대화가 끝나면 원래 상태로 돌아간다. 커피를 주문하는 짧은 순간에 이어버드를 건드리거나 휴대폰을 꺼낼 필요가 없다.
착용감도 만족스럽다. 격하게 달려도 귀에서 빠지지 않고 단단히 고정됐다. 비결은 이어캡 위쪽으로 작게 돋은 날개 모양 플라스틱(이어윙)이다. 귀 안쪽 콘카에 부드럽게 맞물리며 외부 소음을 물리적으로 한 번 더 막아주고, 흔들림 없는 고정력을 만든다. 핀이 귀 모양과 맞지 않으면 평평한 교체용 부품도 들어 있어 취향껏 바꿀 수 있다. 본체는 이전 세대보다 38% 작아져 귀에 가해지는 압박이 줄었고, IP55 등급으로 땀과 생활 방수에도 대응한다.
정리하자면....현 시점 1티어 무선 이어폰
가성비 브랜드로 통하던 앤커는 이번 229.99달러짜리 플래그십으로 프리미엄 라인업을 넓혔다. 9.2mm 양모-종이 다이어프램 드라이버로 소리를 내고, ANC를 켜고 6.5시간(케이스 포함 28시간), 5분 충전으로 4시간을 쓴다. 모든 스마트 기능을 켜면 4시간(케이스 17시간)으로 줄지만, 케이스가 무선 충전도 지원해 거치만 해두면 부담이 덜하다. 색상은 티타늄 골드와 미드나잇 블랙 두 가지다.
물론 따져볼 점도 있다. 고음질 코덱(LDAC)은 안드로이드에서만 지원돼 아이폰은 AAC로 연결되고, 세 기기를 동시에 물리면 LDAC가 꺼진다. 화면을 얹은 만큼 케이스 부피도 평범한 제품보다 크다. 그럼에도 오픈형의 개방감과 인이어의 차단력, 거기에 녹취·통역·촬영까지 화면 달린 케이스 하나로 오가게 한 완성도는, 현시점 1티어 무선 이어폰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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