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 최소라 기자] 코스피가 9000선을 돌파한 직후 단기간에 10% 가까이 급락하며 극심한 변동성을 드러냈다. 장중 ‘서킷브레이커(거래 일시 중단)’와 ‘사이드카(프로그램매매 호가 효력 일시 정지)’가 잇따라 발동했고, 한국형 공포지수인 ‘코스피200 변동성지수(VKOSPI)’는 올해 최고치를 기록했다. 반도체 중심의 지수 구조에 레버리지 자금과 기관의 대규모 매도가 겹치면서 변동성이 확대됐다.
다만 금융투자업계는 코스피 펀더멘털에는 큰 변화가 없는 만큼 이번 조정을 단기 과열에 따른 되돌림으로 평가하며 상승 흐름을 점치고 있다.
◇반도체 쏠림에 기관 매도까지…시장 흔든 변동성
2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VKOSPI는 장중 95.27을 기록하며 올해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날 코스피는 장중 최고점과 최저점의 차이가 496.53포인트(p)에 달하는 등 극심한 변동성을 나타냈다. 저가 매수세가 유입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반등했고, 코스피도 장중 8500선을 회복했지만 기대했던 ‘1만피’는 멀어졌다.
전날 코스피는 하루 만에 910p 넘게 급락했다. 지수 하락폭이 900p를 넘어선 것은 처음이다. 코스피가 전일 대비 8% 이상 하락하면서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돼 유가증권시장 거래가 일시 중단됐고, 매도 사이드카도 발동되면서 프로그램 매도호가 효력이 5분간 정지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에 가장 큰 낙폭을 기록했다. 두 종목을 기초자산으로 한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도 평균 25% 안팎 급락했다.
최근 국내 증시는 주요국보다 상승과 하락 모두에서 변동폭이 크게 나타나고 있다. 연초 이후 코스피 상승률은 주요국 증시를 크게 웃돌았지만 상승 속도가 빨랐던 만큼 차익 실현 압력도 그만큼 커졌다.
금융투자업계는 반도체 중심의 지수 구조를 변동성을 키운 요인으로 지목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시가총액 상위 종목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일부 종목의 주가 변화가 지수 전체를 좌우하는 구조가 굳어졌다.
또, 기관의 매도세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올해 급등과 급락 국면 모두 금융투자의 매매 영향력이 컸다”며 “23일에도 금융투자가 3조1800억원을 순매도하면서 시장 전반의 하락 압력을 키웠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특별한 이유를 찾을 수 없이 ‘그냥’ 떨어졌다고 본다.
조병현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급락은 하나의 촉발 요인을 특정하기 어렵다”며 “펀더멘털이나 거시경제 여건이 훼손된 것이 아니라면 심리와 수급이 안정될 경우 회복도 빠를 수 있다”고 말했다.
◇레버리지·빚투 확대…대외변수도 낙폭 키워
개인투자자의 공격적인 투자도 변동성을 키운 요인으로 꼽힌다.
최근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거래가 급증했고 신용거래융자 잔고도 37조원대로 연초 대비 10조 이상 빠르게 늘었다. 상승장에서는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지만 하락장에서는 반대매매와 차익 실현 매물이 동시에 쏟아지면서 낙폭을 키우는 구조다. 실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는 급락장에서 기초자산보다 두 배 가까운 하락률을 기록하며 손실이 확대됐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워치리스트 편입 불발, 국민연금의 리밸런싱 등 대외 변수도 거론된다.
MSCI는 23일(현지시간) 발표한 ‘2026년 연례 시장 분류’에서 한국을 선진국지수 워치리스트에 포함하지 않았다. 역외 외환시장에서 원화 환전이 여전히 제한적이라는 이유다.
다만 금융투자업계는 이들 악재가 “펀더멘털을 훼손할 정도는 아니다”고 평가했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MSCI 워치리스트 편입 불발은 시장이 이미 예상했던 시나리오였던 만큼 직접적인 충격은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 리밸런싱 우려도 과도하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국민연금은 이미 6개월째 국내 주식을 순매도하고 있다”며 “6월 말 대규모 매도가 예정돼 있었다면 이미 시장에서 상당 부분 반영됐어야 한다. 일시에 매도 물량이 쏟아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실적·밸류에이션 유효…“조정은 매수 기회”
올해 코스피 시장에서는 이번을 포함해 네 차례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됐다. 앞선 세 차례 급락 이후에는 모두 빠른 반등이 이어졌다. 당시에도 기업 실적 모멘텀이 유지된 가운데 지정학적 리스크 완화와 실적 개선이 맞물리며 코스피는 결국 9000선을 돌파했다.
코스피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지수 급락으로 7배 중반까지 낮아지며 밸류에이션 부담이 상당 부분 해소됐다. 반면 선행 주당순이익(EPS)은 상승세를 이어가며 기업 실적 개선 기대를 뒷받침하고 있다.
외국인 수급도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된다. 급락장 막판 외국인이 선물시장에서 대규모 순매수로 돌아섰고, 금융투자의 프로그램 매도가 마무리되면 고객예탁금과 머니마켓펀드(MMF) 등 대기성 자금이 유입될 가능성이 크다.
코스피 8000선을 1차 지지선, 7700선을 2차 지지선으로 제시하며 변동성을 활용한 분할매수 전략이 권고된다.
나정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조정은 펀더멘털 훼손에 따른 하락이 아니다”라며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실적 개선이 이어지는 만큼 중기 상승 추세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 반도체 기업의 실적 발표와 SK하이닉스 ADR 상장, 외환시장 24시간 개방 등 상승 모멘텀이 남아 있는 만큼 단기 변동성을 거친 뒤 지수는 다시 우상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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