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전세윤 작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르네상스’라는 단어를 꺼낼 때는 상당한 주의가 필요하다.(‘디깅 #31’에서 말했듯) 사실 이 용어는 미술사 전공자들이 지향하는 엄밀한 학술적 표현이 아니다. 대중에게는 찬란한 문화적 부활의 상징처럼 익숙할지 몰라도, 학술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는 지나치게 헐렁하고 모호하여 자칫 역사의 진실을 가릴 위험이 있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예술을 정교하게 읽어내기 위해서는 이 거창한 단어 뒤에 숨은 도상과 역사의 맥락을 구체적으로 파고드는 수고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이미지를 해석함에 있어 도상학(Iconography)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디깅 #31’에서 논했던 이야기로 예를 들어보자. 3세기 고대 로마 시대의 유물 중 사자를 들쳐 업고 있는 건장한 남자의 형상을 본다면, 그리스 로마 신화의 맥락에서 우리는 그를 단연 최고의 영웅 헤라클레스로 읽는다. 그런데 이와 똑같은 형상의 남자가 신성한 성당 한복판에 조각되어 있다면 우리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당시의 모든 예술적 행위는 기독교 도상이라는 엄격한 틀 안에서 움직여야 했으며, 모든 서사는 성경의 이야기로 귀결되어야만 했다. 여기서 도상해석학의 핵심이 드러난다. 겉모습은 헤라클레스와 판박이인 남자일지라도 성경 속에 존재하는 그와 유사한 인물의 맥락을 빌려와 기독교적으로 수용하고 재해석한 결과물인 것이다. 이처럼 그림의 형태가 똑같더라도 그 도상이 품고 있는 역사와 맥락을 모른다면 우리는 미술을 완전히 잘못 읽게 된다. 이러한 심층적인 연구야말로 고전적인 미술 연구의 근간이다.
우리가 흔히 ‘르네상스’라는 표현을 경계해야 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중세를 바라보는 왜곡된 시각 때문이다. 과거에는 중세를 모든 것이 기독교에 매몰되어 마녀사냥이나 일삼던 ‘암흑시대(Dark Ages, 다크 야제)’라고 불렀으며, 그 어둠을 뚫고 갑자기 빛이 나타난 것처럼 르네상스를 규정했다. 그러나 중세 문화는 그렇게 한마디로 퉁쳐 버리기엔 너무나 입체적이고 풍부한 유산들을 품고 있었다. 기독교 중심 사회이긴 했지만 그 안에서 꽃피운 예술과 사유는 결코 평면적이지 않았다. 이를 단순히 ‘죽어있던 시대’로 치부하고 그 뒤에 문화가 조금씩 부활했다며 르네상스라 부르는 것은 올바른 역사 해석이 아니다. 또한 르네상스는 유럽 전역에서 일어난 광범위한 탈기독교적 운동 전체를 포괄하는 너무 큰 범주라, 미술사학의 구체적인 논의 안에서는 오해를 발생시킬 여지가 다분하다.
따라서 미술사학계 학자들은 ‘르네상스’라는 느슨한 용어 대신 ‘1400년대 북부 이탈리아’처럼 구체적인 시기와 지역명을 붙여 표현하는 것을 일종의 약속으로 삼는다. 이 시기 북부 이탈리아 미술은 결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부활의 빛이 아니라, 중세의 입체적인 토대 위에 당대 첨단 과학과 고전의 재발견이 결합된 지극히 정교한 맥락의 산물이다. 피렌체를 중심으로 발현된 선원근법(Linear Perspective)은 인간의 눈을 중심에 두고 소실점을 향해 3차원 공간을 재편성함으로써 세계를 바라보는 주체를 인간으로 설정했으며, 해부학적 지식은 단순히 겉모습을 베끼는 수준을 넘어 근육과 골격의 구조를 파악해 인간 신체의 실재감을 극대화했다.
또한 지역적 특수성에 따라 논리적인 선과 질서를 중시한 피렌체 화풍과 빛과 색채의 질감을 강조한 베네치아 화풍이 뚜렷한 대비를 이루며 발전했다. 여기에 교황청뿐만 아니라 메디치 가문과 같은 신흥 자본가 계층이 강력한 후원자로 등장하면서, 예술은 종교적 숭배의 대상을 넘어 후원자의 권위와 인문주의적 가치를 담아내는 세련된 매체로 탈바꿈했다. 결국 전공자 입장에서 르네상스라는 말은 이러한 복잡한 기술적 성취와 사회적 변동, 지역적 색채를 담아내기에 너무나 헐렁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술과 이미지를 대할 때 관습적인 용어에 기대기보다, 그 지역과 시기가 맺고 있는 구체적인 약속들을 읽어내려 노력해야 한다. 그 엄밀한 과정에서만 비로소 예술의 참모습을 마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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